[인터뷰+] 박인환 "'나빌레라'로 딸에게 처음으로 칭찬 받아"

입력 2021-04-21 13:40   수정 2021-04-21 13:42


배우 박인환의 도전에 시청자들도 감동했다.

tvN 수목드라마 '나빌레라'는 은퇴 후 어릴 때부터 꿈꿔왔던 발레를 배우고 싶은 노인 덕출(박인환)과 방황하는 청춘 발레리노 채록(송강)의 우정을 다룬 작품이다. 박인환은 어릴 적 발레리노의 공연을 보고 발레를 배우고 싶었지만, 생업에 쫓겨 그 꿈을 가슴에 묻어야만 했던 덕출 역을 연기했다. 천재적인 능력은 갖췄지만, 사회에 상처받아 까칠하기만 했던 채록을 따뜻하게 보듬는 동시에 나이와 상관 없이 발레에 대한 열정을 뽐내며 극을 이끌고 있다.

"크로스백을 맨 뒷모습만 봐도 슬프다", "덕며들었다"(덕출의 매력에 스며들었다), "채록에 보려 켰다가 덕출에게 입덕했다(빠졌다)" 등 박인환에 대한 찬사가 이어지고 있다. 76세 나이, 벌써 데뷔 56년인 연기자이지만 6개월 동안 발레 레슨을 받고, 대본을 손에서 놓지 않았던 박인환의 노력 덕분이다. 1989년 KBS 2TV '왕룽일가' 이후 32년 만에 미니시리즈 주인공을 연기하게 됐다는 박인환은 "나도 연기에 재능이 없어서 '잘하고 싶다'는 꿈을 꾸며 지금까지 달려온 거 같다"고 말했다.

▲ '나빌레라'에 대한 호평이 이어지고 있어요.

그런데 시청률이 안 나와서. 제가 케이블 방송 드라마는 이번이 처음이에요. 전작이었던 KBS 일일극도 20%가 넘었거든. 요즘 젊은 친구들은 TV로 본방을 안 본다고 하고, 칭찬은 많이 받는데 시청률이 안나와 걱정이에요. 평이 좋다고 해도 위로가 안 돼요. 방송국에나 제작사는 얼마나 시청률에 예민하겠어. 나만 좋은 작품할 수 없잖아요. 이런 드라마가 계속 나오려면 시청률도 좋아야지.

▲ 그래도 덕출에 대한 칭찬을 보고 하면 기분이 좋진 않으신가요?

젊은 사람들이 이 정도로 관심을 가져줄진 몰랐어요. 원래 작품을 할 때 댓글이나 이런 걸 찾아보지 않았어요. 그런데 '나빌레라'는 찾아보게 되더라고요. 모르는 말이 많았어요. '덕며들었다' 이런 거. 그게 무슨 단어인지 찾아보고 그랬죠. 아무래도 채록이 덕분인 거 같아요. 채록이가 넷플릭스 '스위트홈'을 하면서 많이 알려져서. 채록이는 이거 말고 다음에 그 다음꺼까지 작품이 많더라고.

▲ 차기작 촬영 중이라 들었는데요.

난 '나빌레라' 보고 연락왔다는 건 없어. 지금 찍는 건 이전에 정해졌어요. 허진호 감독의 '인간실격'인데, "출연해줬으면 좋겠다"고 연락이 왔더라고. '나빌레라' 스케줄 때문에 힘들 거 같다고 했는데, 정리해 줄테니 끝나고 오라고요. 그래서 요즘 거기 나가고 있어요.

('인간실격'은 JTBC 새 드라마로 올해 하반기 방송이 예고됐다.)

▲ '나빌레라'도 처음엔 출연을 망설이셨다고요.

탐이 나는데, 망설였죠. 내가 해낼 수 있을까 싶었어요. 한편으로는 내 나이에, 앞으로 이런 좋은 작품, 좋은 배역이 안 올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이걸 놓치면 후회하겠다는 생각에 무리해서 하게 된거죠.

▲ 발레를 배우는 게 쉽지 않았을 거 같아요.

6개월 정도, 일주일에 2번씩 발레 강습을 받았어요. 처음엔 우습게 봤어요. 그런데 시간이 필요하더라고요. 별로 어려운 동장을 하는 것도 아닌데 땀이 나고, 아프고, 집에 가서 연습하지 않으면 또 안 되고. 파스도 붙이고, 몸이 시큰시큰하고. 다리에 쥐도 나고 그랬지.

▲ '나빌레라'에서는 덕출이 발레하는 걸 보고 아내 최해남(나문희)가 반대하는데요. 집에서 연습하는 걸 본 아내의 반응이 궁금해요.

와이프는 작품으로 하니까 그런가보다 했지. 손자 손녀가 좋아했어요. 애들이 초등학생인데, 드라마는 재미없는데, 발레는 재밌다고 따라하더라고. 손을 이렇게 들면서.(웃음)

▲ 자신이 발레하는 모습을 드라마로 보니 어떻던가요?

송강은 길쭉길쭉하고 카메라만 잡으면 그 자체가 그림이야. 나랑 똑같이 발레를 배워 시작했는데, 그 친구는 전문 발레리노고, 선생님 역할이니 더 열심히 하고 뭔가 동작도 더 세련되더라고. 난 일부러 배를 잡는 거 같고. 근사하게 보여지기 보다는 도전의 과정을 보여주는 거라 생각해요. 그걸 예쁘게 봐주시는 거 같아요. '저 나이에도 저렇게 열정을 갖고 산다'고.

▲ 발레복을 처음 입어보셨을 텐데요.

너무 민망했지. 난 '안 입겠다'고 했어요. 노인네가 잠수복 같고, 이걸 어떻게 입나 싶었지. '그냥 발표회 때만 입으면 안되겠냐'고도 했어. 그런데 '연습 때도 입어야 한다'고 하더라고. 그 옷을 입으니 몸매가 나오는데, 채록이랑 더 비교가 되지. 난 배도 불뚝하고.

▲ 덕출이 알츠하이머라는 설정에 많은 시청자들이 울었어요.

잔인한 병이라고 하죠. 기억을 잃는다는 게. 연기를 표현할 때 어떻게 할지 고민이 됐어요. 알츠하이머는 저에게도 먼 병은 아니에요. 얼마 전에 자동차 면허를 이번에 갱신하러 가는데, 75세 이상이 되면 (유효기간이) 3년짜리 밖에 안줘요. 교육도 받아야 하는데, 온라인으로 받으라고 해서 아들한테 부탁해서 이수하고. 치매 센터에 가서 테스트도 받았죠. 그걸 합격증을 가져가야 3년짜리 면허증이 나오는 거예요.


▲ 덕출의 버킷리스트는 발레였는데, 인간 박인환의 버킷리스트가 있을까요?

글쎄요. 일을 그만두고 뭔가 하고 싶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어요. 오히려 이전엔 50까지 연기하면, 60까지 연하면 그만해야겠다 싶었는데 신구, 이순재 선배들 보면 여든까지도 가능할 거 같고.(웃음) '손절'아 안될 거 같아요. 무대 앞에서, 카메라 앞에서 설 수 있을 때까지 하고 싶어요. 전 사실 재능이 없어요. 동네 친구들 따라 연극영화과 시험을 봤는데, 저만 합격했고, 전과를 하려고 했는데 연극배우로 먹고 살 수 있다고 해서 극단에 간 게 지금까지 왔어요. 재능이 없는 걸 아니까 더 열심히 대본을 봤고, 어딜 가도 대본을 보고 그랬죠.

▲ 연기를 오래 하기 위해 따로 건강 관리를 하실까요?

테니스를 쳐요. 다른 운동도 했는데, 다시 테니스로 돌아왔어요. 가니까 노인네들도 많아요. 실버 테니스는 젊은 애들처럼 팍팍하게 하지 않아요. 빠른 공은 포기하고.(웃음) 그걸 일주일에 2~3번씩 하고, 동네 공원에 가서 아내랑 30분씩 운동하고. 제가 술을 좋아해서 운동을 안하면 안되요.

▲ 65년째 작품을 쉼 없이 하셨어요.

연기자는 뽑혀야 해요. 선택받는 직업이죠. 연극만 하다가 TV로 갔을 때 실수도 많이 했어요. 제가 원래 소심하고, 너무 덜덜 떨어서 청심환 먹고 그랬어요. 연극이랑 환경도 다르고 낯서니 긴장도 하고, 연기는 개판으로 했지. 모 선배는 '연기는 아무나 하냐'고 하고 가고. 그래서 TV를 안하려 했는데 아내가 '다른 선배들은 그런 일을 안 겪었겠냐'고, '그렇게 못하면 관둬야지'라고 하더라고. 그 말이 맞았지. 그래서 버스승객A 이런 것부터 했어요. 조금씩 역할이 커지면서 지금까지 온거지.

▲ 연기 인생에서 '나빌레라'는 어떤 작품일까요?

며칠 전에 우리 딸이 그러더라고. '아버지가 한 것 중에 가장 즐겁게 봤다'고. '편하게 봤다'고 했어. 우리 딸이 그런 칭찬하는 걸 처음 들어봐요. 나도 내가 연기하는거 보면 '왜 저러나' 싶을 때가 있어요. 그런데 '나빌레라'는 편안했어요. 그런 기분을 처음 안겨준 작품이었어요.

▲ 앞으로 연기자로서의 목표가 있을까요? 아내로 나온 나문희 배우도 여우주연상을 받았고, 윤여정 배우도 아카데미에 가는 등 요즘 시니어 배우들의 활약이 돋보이니까요.

상을 받으려 연기하지 않아요. 윤여정도 '미나리'를 할 때 이렇게 상을 받을 줄 알았을까? 나문희도 '아이캔스피크'로 상을 받을 거라고 생각 못했을 거야. 나도 그냥 잘하고 싶어요. 계속 불러주면 고맙고.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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