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욱의 독서 큐레이션] 위기의 대학, 답은 '교육의 본질'에 있다

입력 2021-04-22 17:30   수정 2021-04-23 02:44

어느 순간부턴가 ‘대학의 위기’가 구호에서 현실로 성큼 다가왔다. 학령인구 감소 여파로 지방대학들은 ‘벚꽃 피는 순서’와 관계없이 대규모 미달 사태를 겪었다. 수도권 대학이라고 사정이 다르지 않다. 취업난이 상시화한 대학가에 ‘학문의 전당’이란 미사여구는 사치스런 빈말일 뿐이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격인 고등교육의 현실을 되돌아볼 책 세 권이 새로 나왔다. 소책자이지만 다루는 내용이 결코 가볍지 않은 점도 공통적이다.

《대학의 탄생》(찰스 호머 해스킨스 지음, 연암서가)은 저명한 중세사학자이자 미국 하버드대의 글쓰기 교육 시스템을 확립했던 저자가 중세 대학의 성립 과정과 학문 공동체로서 대학의 본질을 분석한 책이다. 나온 지 100년 가까이 됐지만 여전히 뜨끔한 구석이 적지 않다.

저자는 대학이 출발점부터 “사람들로 이뤄진 조직”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기꺼이 배우고 가르치려는 열의에 찬 젊은이들이 산과 물을 건너 몰려들어 학문 조합(guild)을 결성한 게 대학의 시초이자 본질이라는 설명이다. 학생들의 거주공간을 의미했던 칼리지(college)나 닥터(doctor), M.A.(석사·Master of Arts) 같은 용어부터 시간과 교과목을 명시해 놓고 시험을 통해 학위를 수여하는 학제까지 곳곳에 800년 이상을 버텨온 전통이 서려 있다. 학문에는 담을 쌓은 채 사랑에 빠지고, 부모에게 돈 달라고 손만 내미는 학생의 모습도 시공을 초월한다.

《조건 없는 대학》(자크 데리다 지음, 문학동네)은 세계적 철학자인 저자가 1998년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대학의 본령을 주제로 강연했던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대학이 항복하고, 때로는 매각되고, 간단히 점령되고, 탈취될 위험에 노출된 시대”다. 하지만 ‘진리를 직업으로 삼는’ 대학의 본질은 결코 변할 수 없다.

저자는 “대학은 학문의 자유라 불리는 것 말고도, 문제를 제기하고 제안하는 일에서 무조건적인 자유를 누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노동의 종말’이 언급되는 시대의 ‘지식 부문’ 종사자의 돌파구는 진리에 관한 연구, 진리에 대한 앎과 관련한 모든 것을 공개적으로 말할 권리에서부터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고백하고, 공언하고, 가르치는 교육의 ‘근본’에서 내일의 대학이 나아갈 길을 모색한다.

《파시스트 되는 법》(미켈라 무르자 지음, 사월의책)은 파시스트의 시각과 화법을 통해 역설적으로 파시즘의 위험성을 전달하는 책이다. 대학 교육, 비판적 지성이 위기에 처한 틈을 거침없이 파고드는 파시즘의 위협을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배울 수 없었던 사람들’을 자극해 “자신의 무지에 대한 부끄러움을 버리고, 수십 년 동안 자신을 얕잡아본 배운 자들을 깔보도록 하라”는 ‘지침’의 위험성은 현대 한국 사회도 가벼이 넘길 수 없다. “진짜로 중요한 것은 인생 학교이며, 대졸자라고 해서 딱히 나을 것도 없다는 메시지를 반복하라”는 문구는 시공을 초월해 섬뜩하게 다가온다. 파시스트가 우선해 쓰러뜨리고자 하는 대상이 도덕적·과학적 권위를 지닌 전문가라는 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정보가 진실인지는 중요치 않고, 대중에게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해시키는 것은 시간 낭비”라는 말만큼 역설적으로 고등교육의 필요성을 증명하는 사례가 과연 있을까.

kimd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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