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회사가 투기 의심 대출을 보고하라는 건 모든 토지담보대출 정보를 넘기라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정부와 여당의 부동산거래신고법 개정안을 확인한 한 은행 고위 관계자는 25일 “은행이 대출 심사를 하는 땅이 향후 어떤 가치를 지니게 될지 어떻게 아느냐”며 이같이 토로했다. 금융사들이 토지담보대출을 중단하라는 압박을 느낄 것이라는 반응도 보였다. 은행 등에 투기 의심 토지대출 신고를 의무화하는 조항을 넣은 건 현실을 무시한 규제라는 지적도 나왔다.
당정이 토지담보대출 규제를 외치고 나선 것은 LH(한국토지주택공사) 투기 사태와 같은 부동산 투기를 막기 위해서다. 현재 토지 매입자는 이를 담보로 대출을 받을 때 주택담보대출에 적용되는 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등의 규제를 느슨하게 적용받는다. 주택담보대출보다 많은 대출이 가능한 것이다. 최근 LH 사태에서 LH 직원들이 광명시흥지구의 땅을 사들이기 위해 북시흥농협에서 대규모 토지담보대출을 받은 것도 토지담보대출의 이런 조건 때문이다.
상호금융권에서는 토지대출 실수요자인 농민의 대규모 반발을 우려하고 있다. 이들은 대출받는 고객이면서 동시에 상호금융의 조합원이라는 이중적 지위를 갖고 있다. 이들에게 ‘투기가 의심된다’는 이유로 대출을 중단하면 농민단체 등의 집단행동도 나올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 상호금융 관계자는 “금감원조차 토지담보대출의 정확한 현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법을 개정해 금융사를 통해 감시하겠다는 것은 실효성이 의심된다”고 지적했다.
금융회사를 직접 감독하는 금융위원회와 금감원도 ‘처벌은 없다’는 입장이다. 한 금융당국 관계자는 “투기 식별 의무에 금융사가 부담을 느끼는 걸 이해한다”며 “투기 의심 토지의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일정 요건을 기계적으로 판단해 통보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금융권에서는 향후 법 개정 진행 상황과 시행령을 확인해봐야 할 것이라며 우려를 거두지 않고 있다.
전범진/정소람/빈난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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