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기의심 거래' 모두 신고하라니…은행들 "토지대출 말라는 얘기"

입력 2021-04-25 17:40   수정 2021-05-03 18:22


“금융회사가 투기 의심 대출을 보고하라는 건 모든 토지담보대출 정보를 넘기라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정부와 여당의 부동산거래신고법 개정안을 확인한 한 은행 고위 관계자는 25일 “은행이 대출 심사를 하는 땅이 향후 어떤 가치를 지니게 될지 어떻게 아느냐”며 이같이 토로했다. 금융사들이 토지담보대출을 중단하라는 압박을 느낄 것이라는 반응도 보였다. 은행 등에 투기 의심 토지대출 신고를 의무화하는 조항을 넣은 건 현실을 무시한 규제라는 지적도 나왔다.

투기 의심 땅 가려낼 방법 없어
금융권 관계자들은 신도시 부지의 사례를 들어 비현실성을 꼬집었다. 정부 발표 이전까지 신도시 위치나 규모를 알지 못하는데, 은행이 어떤 땅을 투기성으로 의심해야 할지 알 길이 없다는 주장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10년 전부터 일부 부동산 자산가들은 하남 교산신도시 부지에 토지담보대출을 끼고 대량의 토지를 구매했는데, 이들은 교산신도시 추진 계획이 나오기 전에 하남 개발에 따른 수혜를 기대하고 땅을 샀다”며 “이런 토지대출까지 다 은행이 감시하라는 것은 책임 전가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추후 문제가 생겨 임직원이 보고 미이행으로 처벌받는 사태를 피하기 위해 토지담보대출을 중단할 수도 있다는 주장이다.

당정이 토지담보대출 규제를 외치고 나선 것은 LH(한국토지주택공사) 투기 사태와 같은 부동산 투기를 막기 위해서다. 현재 토지 매입자는 이를 담보로 대출을 받을 때 주택담보대출에 적용되는 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등의 규제를 느슨하게 적용받는다. 주택담보대출보다 많은 대출이 가능한 것이다. 최근 LH 사태에서 LH 직원들이 광명시흥지구의 땅을 사들이기 위해 북시흥농협에서 대규모 토지담보대출을 받은 것도 토지담보대출의 이런 조건 때문이다.
실수요 농민이 피해 볼 수도
금융사가 토지담보대출을 중단·축소하면 이에 따른 불똥은 농민에게 튈 전망이다. 농지 구입이나 생활자금 마련을 위해 농민들이 주로 상호금융(농협과 신협, 수협 및 산림조합)에서 토지담보대출을 받기 때문이다.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상호금융의 비주택 부동산담보대출 규모는 257조5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상호금융 전체 대출의 64.2%에 달한다. 이 중 농지 등을 기반으로 한 토지담보대출 비중이 대부분일 것으로 금융권에서는 보고 있다.

상호금융권에서는 토지대출 실수요자인 농민의 대규모 반발을 우려하고 있다. 이들은 대출받는 고객이면서 동시에 상호금융의 조합원이라는 이중적 지위를 갖고 있다. 이들에게 ‘투기가 의심된다’는 이유로 대출을 중단하면 농민단체 등의 집단행동도 나올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 상호금융 관계자는 “금감원조차 토지담보대출의 정확한 현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법을 개정해 금융사를 통해 감시하겠다는 것은 실효성이 의심된다”고 지적했다.
“처벌은 않겠다” 진화 나선 당정
여당과 금융당국에서는 금융권의 불안을 잠재우려는 모습도 감지되고 있다. 개정안을 발의한 조응천 의원실 관계자는 이 같은 반발에 “금융정보분석원(FIU)이 은행과 증권사에서 의심 거래를 보고하도록 한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며 “일부 미진함이 있더라도 도입 초기 처벌 규정을 마련할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금융회사를 직접 감독하는 금융위원회와 금감원도 ‘처벌은 없다’는 입장이다. 한 금융당국 관계자는 “투기 식별 의무에 금융사가 부담을 느끼는 걸 이해한다”며 “투기 의심 토지의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일정 요건을 기계적으로 판단해 통보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금융권에서는 향후 법 개정 진행 상황과 시행령을 확인해봐야 할 것이라며 우려를 거두지 않고 있다.

전범진/정소람/빈난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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