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 벗는 나라 나오는데…'디지털덫' 日, 세번째 긴급사태 [정영효의 인사이드 재팬]

입력 2021-04-26 08:40   수정 2021-04-26 10:37



도쿄에 3번째 긴급사태가 선포된 첫날인 25일 점심 시간대. 유명 백화점이 몰려 있는 긴자는 여느 휴일과 다름없이 북적였다. 정부의 휴업 요청에 따라 와코, 미쓰코시, 마쓰야 등 긴자 지역의 백화점은 식료품 매장을 제외하고 일제 휴업에 들어갔다.

마쓰야백화점의 일식도시락 전문점 유시마 오기에서 일하는 나쓰카와씨는 "전혀 손님이 줄지 않았다"며 "이미 세번째 긴급사태이다보니 다들 위기감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백신접종률, 한국의 1/3
긴급사태를 선포하기 전부터 전문가들이 대상지역과 기간을 늘리지 않으면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우려한 이유다. 노무라종합연구소는 17일간의 긴급사태로 도쿄도 4110억엔(약 4조2580억원)을 포함해 총 6990억엔의 경제적손실이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다이이치생명연구소는 3개월후 실업자가 2만5000명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긴급사태 선포지역이 수도권 3개현으로 확대되고 기간이 2개월로 늘어나면 손실규모는 3조8650억엔으로 불어날 전망이다. 1분기 국내총생산(GDP)의 역성장이 확실시되는 가운데 2분기도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미국과 영국, 이스라엘 등 백신 접종률이 50%를 넘는 나라의 국민들은 마스크를 벗고 봄을 즐기고 있다. 반면 일본이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각오하고 또다시 긴급사태를 선포한 것은 코로나19 백신 후진국이기 때문이다.

아워월드인데이터에 따르면 22일 기준 일본의 백신 접종률은 1.21%로 주요 7개국(G7) 가운데 압도적인 꼴찌다. 두번째로 낮은 이탈리아의 접종률도 19.09%로 일본보다 16배 높다. 세계 평균(6.77%)과 우리나라(3.71%)보다도 훨씬 낮다.

세계 3위의 경제대국이자 세계 최고 기술력을 자부하는 일본은 미국과 영국은 물론 중국, 러시아, 인도도 성공한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실패해 체면을 구겼다.

반면 백신 확보 상황은 나쁘지 않은 편이다. 화이자와 7200만명분, 아스트라제네카와 6000만명분, 모데르나와 2500만명분의 공급계약 체결을 마쳤다. 하지만 승인심사가 난 백신은 화이자 제품 뿐이다.

이 때문에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는 지난 19일 미국 방문길에 화이자로부터 2500만명분을 추가로 확보했다. 오는 9월까지 16세 이상의 일본 국민이 접종할 화이자 백신은 전량 확보했다는 게 일본 정부의 설명이다.

일본은 의료종사자(480만명), 65세 이상 고령자(3600만명), 기초질환자(1030만명), 15세 이상 일반인의 순서로 백신을 접종한다. 의료종사자 접종은 지난 2월17일 시작됐다. 우리나라보다 9일 빨랐다. 고령자 접종도 4월12일부터 시작했다.

접종을 시작한 지 두 달이 지났는데도 480만 의료종사자 가운데 1회 접종을 마친 인원은 110만명, 2회까지 접종을 모두 마친 의사와 간호사는 49만명에 불과하다.



확보한 백신을 공급하는게 늦었기 때문이다. 고령자는 5월10일까지 백신 공급을 진행해 6월 중순까지 접종을 완료할 계획이었으나 7월말까지로 한 달 이상 늦어졌다. 접종을 실시하는 지방자치단체에 전달된 백신이 9%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러다보니 기초질환이 있는 사람과 일반인의 접종은 언제 시작할 지 가늠조차 할 수 없다.
'매뉴얼 사회'의 약점 이번에도
가장 큰 문제는 확보한 백신마저 제대로 공급하고, 접종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디지털화에 뒤처지고 전대미문의 재해 앞에서도 매뉴얼을 고집하는 일본의 약점이 백신 접종과정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났다.

일본 정부는 전국민에게 동등하게 접종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원칙에 집착한 결과 4월 확보한 백신을 전국 1741개 기초 지방자치단체에 최소 1상자 이상 전달하기로 했다. 백신 1상자에는 487명이 접종할 수 있는 백신이 들어있다.

그 결과 인구 91만명의 세타가야구는 3상자를 받아 고령자의 0.8%만 접종이 가능했다. 반면 같은 도쿄도지만 인구 170명의 낙도인 아오가시마는 모든 주민이 접종하기 위해 필요한 백신의 2.9배가 전달됐다.

하루 1000명 안팎의 확진자가 쏟아지는 도쿄와 오사카 등 대도시는 백신이 없어 아우성인데 전국 76개 기초 지자체는 백신이 남아서 고령자 이외의 일본 주민에게도 접종을 시작할 계획이다.

487명분인 백신 한상자를 인구수에 맞춰 나눠서 공급하는 방안도 나왔지만 온도관리와 운송시간 등 매뉴얼에 갇혔다. 정부는 백신을 2~8도로 냉장수송해도 문제가 없다고 밝혔지만 지자체의 70%가 냉동배송법을 고수했다.

백신이 있어도 백신을 놓아줄 인력이 없는 것도 문제다. 고령자 54만명을 접종할 계획인 삿포로시가 확보한 의료진은 필요인력의 30% 수준이다. 지자체의 20%가 백신을 놓아줄 의사와 간호사를 구하지 못해 접종에 애를 먹고 있다.

영국은 주사 접종 훈련을 받은 일반인도 백신을 접종하도록 해 의료진 부족 문제를 해결했다. 일본은 의사와 간호사만 주사 접종을 할 수 있도록 정한 규제에 발목을 잡혔다. 간호사가 남는 지역이 부족한 지역에 파견하는 것 조차 규제에 묶여있다가 지난 1일에야 특례가 인정됐다.

결국 일본 정부가 예외를 인정해 치과의사와 의료자격증을 가진 자위대까지 접종현장에 투입하기로 했지만 의료진 부족을 해결할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아날로그 방식을 고수하는 사회 시스템도 코로나19의 빠른 수습을 어렵게 하고 있다. 일본은 백신 접종대상자가 우편으로 받은 접종권을 보건소에 제출하면 보건소가 전용 태블릿PC 단말기로 접종권의 바코드를 판독해 자격을 확인하는 방식이다. 보건당국이 접종대상자의 핸드폰에 보낸 접종자격 문자메시지로 모든 과정이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이스라엘, 싱가포르 등과 대조적이다.
우편으로 접종대상자 통보
화이자 백신은 3주 간격으로 2회 접종하기 때문에 접종 데이터 관리가 필수다. 일본 정부는 개인의 백신 접종 기록을 실시간으로 관리할 수 있는 'VRS'라는 시스템을 긴급하게 도입했다. 일본 지자체들이 아날로그 방식으로 관리해 온 예방접종대장으로는 전국의 접종 정보를 공유하는데 2~3개월이 걸리기 때문이었다.

18일 현재 시즈오카, 시가, 효고 등 일부 지역은 고령자 접종 실적이 '0'이다. 시스템 입력 방식이 너무 복잡해 접종을 하고도 의료진이 입력을 포기한 탓이다. 단말기가 구겨지거나 오염된 접종권을 판독하지 못해 의료진이 수작업으로 입력하는 사례도 빈번하다.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확산한 지난해 초 일본인들을 한숨 짓게 했던 '허시스(HER-SYS)의 악몽'이 고스란히 재현되고 있는 셈이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환자 발생 현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는 허시스 시스템을 도입했지만 입력 항목이 60개에 달해 의료진의 외면을 받았다. 지금까지도 지자체와 보건소 직원들이 환자 정보를 일일이 팩스로 주고받아 관리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백신의 배송 및 재고 관리시스템인 V-SYS는 접종실적 데이터에 오류가 발생해 2주일 가량 가동이 중단되기도 했다.

원칙적으로 주민등록을 한 기초 지자체에서 백신을 접종하도록 한 규정도 허점으로 지적된다. 주민등록상의 주소와 실제 주소가 다른 사람은 백신을 맞기 위해 주민등록지로 이동해야 한다.
의료진 확보와 접종장소 설치 등을 기초 지자체가 담당하기 때문이다. 일본 예방접종법은 백신접종을 정부의 지시로 광역 지자체의 협력을 받아 기초 지자체가 실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결국 일본 정부가 직접 나서 도쿄와 오사카에 1일 1만명을 접종할 수 있는 대규모 접종장소를 설치하고, 이 지역에서 근무하는 사람도 접종받을 수 있도록 허용할 계획이다. 하지만 지금과 같이 사회 전체가 아날로그와 매뉴얼의 덫에 갇혀서는 백신 접종을 완료하기까지 과제가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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