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에 투자해 손실이 난 것까지 정부가 보호할 순 없다.”(은성수 금융위원장) “손실을 책임지라는 얘기가 아니지 않느냐.”(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
지난 22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벌어진 정부와 여당 국회의원 간 이례적인 설전은 3년 넘게 헛바퀴만 돌리고 있는 암호화폐 정책 논의의 현실을 보여준다. 국내 법체계상 암호화폐의 실체는 딱 두 군데에서만 인정된다. 거래소에 자금세탁 방지 의무를 지운 ‘특정금융정보법’과 암호화폐 수익에 22%를 과세하는 ‘소득세법’이다. 다만 두 법은 국제기구 권고나 해외 과세사례를 수동적으로 따랐을 뿐이다. 그 밖의 영역에서는 암호화폐에 대한 정의 자체가 이뤄지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투자자 보호 장치’가 나올 리 없다.
박수용 서강대 컴퓨터공학과 교수(한국블록체인학회장)는 “3~4년 전에는 한국만 비트코인 열풍이 극심한 면이 있었지만 지금은 해외가 중심이 됐고 선진국에서 코인 기반의 새로운 서비스와 상품이 쏟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암호화폐를 제도권으로 받아들일 것인지에 대한 입장을 분명하게 정리하고 넘어가야 하고,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제도 마련에도 관심을 둬야 한다는 주장이다.
최근 문제가 된 ‘김치 프리미엄 환치기’의 사례도 법적으로 관련 해외송금을 막을 규정이 마땅찮아 생긴 일이라는 지적이 많다. 은행들은 암호화폐와 관련된 것으로 의심되는 해외송금 거래를 제한하고 있다. 하지만 외국환거래법은 암호화폐 거래 목적의 해외 송금이 가능한지, 가능하다면 어떤 신고 절차를 따라야 하는지가 분명하지 않다. 특금법에도 이런 해외송금을 거절할 근거는 적혀 있지 않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법무부가 무조건 불법이라고 못 박아버리니 다른 부처에서 별다른 연구와 논의가 진전되지 못했고, 사기죄 정도를 제외하면 법으로 규율할 방법을 잃어버렸다”고 했다.
한국과 법체계가 비슷한 구석이 많은 일본은 암호화폐거래소에 대해서는 촘촘한 규제를 마련해 전혀 다른 길을 가고 있다. 국내의 전자금융법 격인 자금결제법에 ‘암호자산교환업’이라는 업종을 구체적으로 정의했다. 암호화폐거래소는 1000만엔 이상 자본금을 갖추고 당국에 등록해야 하며 투자자에게 성실한 설명 의무도 진다. 암호화폐를 거래소에 상장할 때 금융청의 화이트리스트 코인 심사를 거치도록 한 점도 눈에 띈다. 거래소 자율로 ‘깜깜이 상장’이 이뤄지는 한국과 달리 ‘불량 코인’ 차단에 발벗고 나섰다.
가장 급진적인 선택을 내린 나라는 프랑스다. 프랑스는 ‘기업성장변화법’을 만들어 암호화폐 관련 규제를 당국과 업계 자율로 이원화했다. 불특정 다수에게서 자금을 모으는 공모형 암호화폐공개(ICO)에 나서는 업체에 당국의 규제를 적용받을지 여부를 선택하도록 했다. 주식과 비슷한 증권형토큰공개(STO)에는 기존 증권법을 적용한다. 펀드가 암호화폐에 투자할 때 적용하는 요건과 투자자 보호장치도 법에 담았다.
근본적으로 젊은 층이 암호화폐로 몰리는 이유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일부 젊은 층은 “주식시장은 기관이 개미를 터는데, 코인은 오히려 공정한 시장”이라고 주장한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전문위원은 “암호화폐를 완전히 제도권에 편입하지 않더라도 관리는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현우/이인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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