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1등? 그런 말 너무 싫어" 노장 윤여정의 위트와 품격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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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1-04-26 14:33   수정 2021-05-26 00:04

"최고? 1등? 그런 말 너무 싫어" 노장 윤여정의 위트와 품격 [종합]


"오늘 밤, 저는 다른 후보들보다 운이 너무 좋았습니다."

배우 윤여정(74)이 한국 배우 최초로 오스카 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26일(한국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 (LA) 유니언 스테이션에서 진행된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윤여정이 영화 '미나리'의 순자 역으로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시상식 후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윤여정은 "글렌 클로스가 타길 바랐다"며 못다한 소감을 전했다.

그는 "2000년대 글렌 클로스의 연극을 보고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주변에선 '미나리'로 상을 받을 거라고 했는데 제가 인생을 오래 살고 보니 그런 거 바라지도 않았다"며 수줍게 말을 이었다.

그러면서 윤여정은 "내가 커리어를 쌓기 위해 노력했고, 갑자기 일어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서 "우리 업계의 경쟁을 믿지 않는다"면서 "모두 다른 영화, 역할이다. 다른 후보들보다 운이 더 좋았다"고 했다.

브래드 피트의 호명으로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그에게 '브래드 피트와 작품을 한다면 어떤 장르로 만나고 싶느냐'라는 질문이 나왔다. 윤여정은 웃으며 "나이와 영어 실력을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며 "나는 불가능한 꿈은 꾸지 않는다"라고 단호히 말했다.

또 "그가 내 이름을 틀리지 않기 위해 많은 연습을 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며 감격했고, "나를 안내해주고 이름을 불러줬다는 게 믿을 수 없었다"고 감사의 마음을 드러냈다.

'아카데미 수상이 최고의 순간이라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에 "최고의 순간은 없을거다. 그런 말이 너무 싫다"며 손사레를 쳤다.

윤여정은 이어 "1등 같은 말 하지 말고 우리 다 '최중'하면 안되냐, 같이 살면 안되느냐. 아카데미가 전부는 아니지 않느냐"라고 소신을 드러냈다.

할리우드 다양성 확대와 관련해 "무지개도 7가지 색이 있다. 남성과 여성, 백인과 흑인, 황인종으로 나누거나 게이와 아닌 사람을 구분하고 싶지 않다. 우리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평등한 사람"이라고 밝혔다.

윤여정은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 매우 좋다고 생각하며 서로를 끌어 안아야 한다"고 말했다.

또 "아카데미는 동양인들에게 높은 벽이지만, 제 생각엔 최고가 되지 말고 다 동등하게 살면 안되나 싶다"고 덧붙였다.

수상을 예상했느냐는 질문에 "수상할 거라곤 생각 못 했다"며 "영화 '미나리'는 진심으로 만들었고 진심으로 통한 것 같다"고 강조했다.

위트있는 수상 소감에 대해서 "오래 살았고 수다를 하다보니 입담이 생겼다"며 미소를 지었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한 질문에 윤여정은 "늙으니까 대사 외우는게 힘들다. 남에게 민폐 끼치는건 싫으니까 민폐가 되지 않을 때까지 이 일을 하다가 죽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은 했다"고 귀띔했다.

윤여정의 아카데미 연기상 수상은 한국 영화 102년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아시아계 전체를 통틀어서는 '사요나라'의 우메키 미요시 이후 64년 만에 두 번째 수상이다.

지난해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4개 부분을 싹쓸이 했던 것에 이어 윤여정의 여우조연상 수상으로 충무로는 또 다른 경사를 맞았다.

영화 데뷔 50년, 배우 데뷔 55년차인 윤여정은 미국배우조합상부터 영국아카데미상까지 30여 개의 상을 휩쓸었다. 윤여정의 아카데미 수상은 예견된 일이라는 것이 현지 분위기다.

'미나리' 제작사 설립자이자 지난해 아카데미 조연상 수상자인 브래드 피트의 호명으로 윤여정이 시상대에 올랐다.

그는 할리우드 명배우 글렌 클로즈를 언급하며 "내가 운이 더 좋아 이 자리에 있는 것"이라며 "어떻게 글렌 클로스와 같은 대배우와 경쟁하느냐"고 겸손히 말했다.

1947년 생인 윤여정은 1966년 TBC 3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했다. 그는 1971년 MBC '장희빈'에서 악녀 장희빈 역을 맡아 대박을 냈다. 그해 김기영 감독의 영화 '하녀'로 스크린 데뷔, 본격적인 스타덤에 올랐다. 윤여정은 김 감독의 '충녀'에도 출연하며 '김기영의 페르소나'로 불리기도 했다.

전성기였던 1975년 가수 조영남과 결혼해 배우 생활을 쉬고 미국에서 생활했다. 여배우가 결혼하면 은퇴가 당연하던 시절이어서 그는 긴 공백기를 갖게 됐다. 하지만 미국 생활은 그가 외신들과 영어로 인터뷰를 할 수 있었던 이유가 됐다.

결혼 13년 만에 조영남과 이혼한 뒤 슬하의 두 아들을 양육하기 위해 연예계에 복귀했다. 90년대 드라마 '사랑과 야망', '사랑이 뭐길래', '목욕탕집 남자들', 2000년대 '굳세어라 금순아', '넝쿨째 굴러온 당신', '디어 마이 프렌즈' 등 작품에서 주조연을 가리지 않고 열연했다.

특히 영화 '죽여주는 여자'에서 종로 일대의 가난한 노인을 상대하는 박카스 할머니를 연기해 '명불허전'이란 평가를 받았다.또 나영석 PD의 예능 '꽃보다 누나', '윤식당', '윤스테이' 등에 출연해 세대를 뛰어 넘는 쿨한 입담, 모던하고 세련된 패션센스를 뽐내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윤여정은 애플 플러스의 드라마 '파친코' 촬영을 했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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