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료의 한계 고건…'한방' 없던 안철수…1일 1실수 반기문

입력 2021-05-03 17:32   수정 2021-05-04 01:35

정치권 바깥의 인물이 제3지대 돌풍을 기반으로 대권까지 차지한 사례는 ‘한국 대선사(史)’에 단 한 차례도 없었다. 고건 전 국무총리, 안철수 전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현 국민의당 대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등은 17~19대 대선 국면 초기에 바람을 일으켰지만 결국 중도에 포기했다.

17대 대선(2007년 12월) 1년6개월 전까지 지지율 1위는 고건 전 총리였다.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권한대행 역할을 수행하며 단숨에 대권 후보로 올라섰다. 하지만 관료 출신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채 정치적 역량 부족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2006년 12월 노무현 전 대통령이 고 전 총리 기용을 “실패한 인사”라고 하면서 지지층에 분열이 나타났다. 30%를 웃돌던 지지율은 10%를 위협했고, 고 전 총리는 대선 출마를 포기했다.

2012년 12월 18대 대선을 앞두고는 ‘안철수 신드롬’이 불었다. 예능 프로그램과 토크 콘서트 등을 기폭제로 대선 선두주자로 부상했다. 안 전 원장은 대세론이 불었던 박근혜 후보까지 따돌리며 지지율 1위에 올랐다. 하지만 정치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이면서 지지율이 빠지기 시작했다. 지나치게 신중한 모습에 경쟁자들로부터 ‘간철수’라는 공격을 받았다. ‘정치 감각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안 전 원장은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의 단일화 과정에서 대선 야권 단일후보 자리를 양보했다.

19대 대선 때 반 전 사무총장 역시 관료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낸 사례로 꼽힌다. 평생 외교관 출신으로 정치인 특유의 유연함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평가다. 반 전 총장은 임기 말인 2016년 9월 30% 이상의 지지율로 1위를 달렸다. 하지만 총장 퇴임 후 귀국해 본격적인 정치행보에 나서면서 정치인으로서 밑천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정치권의 ‘파상공세’를 이겨내지 못했고 ‘1일 1실수’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동생과 조카의 비리 의혹 역시 지지율 하락을 가속화했다. 결국 귀국한 지 20일 만에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성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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