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길 대표의 발언이 아슬아슬하다" [여기는 논설실]

입력 2021-05-18 08:50   수정 2021-05-18 08:55


“송영길 (더불어민주당)대표의 발언이 아슬아슬하다.”

송 대표가 지난 2일 대표 취임 이후 내놓는 발언들을 두고 한 민주당 고위 당직자가 한 말이다. 송 대표가 지난 14일 청와대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 새 지도부 간담회에서 한 말이 특히 그렇다. 대통령 앞에서 좀체 하기 힘든 말을 쏟아냈다. 원전과 부동산, 수도권 철도 등 주제도 민감했고, 발언 시간도 대통령보다 훨씬 길었다.

대통령 면전에서 “모든 정책에 당의 의견이 많이 반영될 필요가 있다”며 ‘당 주도’를 언급한 것은 청와대는 뒤로 빠지라는 말로 들릴 수 있다. 아무리 대통령 임기 말이라고 하더라도 쉽사리 나오기 힘든 말이다. 원전 관련 발언은 더 아슬아슬했다. 그는 “대통령이 강조해 온 2050년 탄소중립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해상풍력을 비롯해 쭉 해나가야 한다”면서도 “SMR(소형모듈원자로) 분야나 원전 폐기 시장 같은 것을 한·미 간에 전략적으로 협력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어 “미국이 원전 분야에서 SMR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있고, 두산중공업이 전략적 협력을 하고 있다”며 “중국, 러시아가 지배하는 세계 원전 시장에 대해 한·미 간 협력을 통해 견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여당 지도부가 ‘한·미 협력, 중국 견제’를 언급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SMR은 전기 출력 300MW 이하 전력을 생산하는 소규모 원자로로, 해외에서 탄소 중립의 대안으로 활발하게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송 대표의 이런 발언은 문 대통령에게 탈원전 정책 수정을 요구한 것으로 비칠 수도 있다. 물론 민주당은 간담회 뒤 탈원전 정책 수정이 아니라 보완책으로 송 대표가 그런말을 했다고 해명했으나, 정치권은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송 대표는 이른바 ‘검찰 개혁’에 대해선 “2차(검찰 개혁으로) 수사권·기소권 분리의 속도조절을 어떻게 해 갈 것인지를 청와대와도 긴밀히 나중에 상의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친문 강경파가 검찰 수사권 완전 배제까지 추진하는 데 대해 제동을 걸겠다는 뜻이다. 비주류인 송 대표와 강경파 사이의 갈등을 예고한 대목이다.

송 대표가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D 노선’ 재검토까지 거론한 것에 대해 여권 일각에선 ‘반기’까지 들먹이고 있다. 정부가 확정해 발표한 주요 정책에 대해 여당 대표가 대통령에게 직접 재검토 요구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지난달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GTX-D 노선안에 따르면 서울 강남 연결은 없어지고 김포~부천만 연결하는 것으로 확정되면서 해당 여당 지역구 의원들이 반발하고 있다. 그러자 정부는 GTX-D노선의 일부 열차를 서울 여의도 및 용산까지 연장 운행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송 대표는 취임 이후 부동산 문제도 당 특위를 출범시키고 당 주도로 세제 문제 등 보완 작업에 착수했다. 종부세 문제도 논의 테이블에 올리겠다고 했으나, 이호승 청와대 정책실장은 신중해야 한다고 견제구를 날린 상태다.

송 대표의 청와대 발언에 대해 청와대 내부에선 불쾌하다는 반응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의 한 고위 관계자는 “대통령과 신임 여당 지도부의 상견례 성격의 자리에서 여당 대표가 대통령보다 훨씬 말을 많이 하고, 기존 정부의 주요 정책 기조에 대해 사실상 대놓고 수정 요구한 것은 보기 드문 광경”이라며 “청와대 내부에선 매우 당혹스러워하고 있다”고 했다. 청와대 참모 출신의 민주당 의원은 “송 대표가 굳이 상견례 성격의 자리에서 청와대에 마치 ‘앞으로 정국은 당이 맡고, 청와대는 뒤로 빠져라’는 식의 발언은 대통령을 뒷방으로 모는 듯한 매우 불쾌하기 짝이 없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송 대표 측의 생각은 다르다. 민주당의 한 고위 당직자는 “임기 2년의 송 대표는 내년 대선에서 정권 재창출을 이뤄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게 됐다”며 “정권 재창출 주역은 대통령이 아니라 당이 돼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당 주도’를 얘기한 것이지 대통령을 뒷방으로 내몰려는 의도는 절대 아니다”고 했다.

송 대표가 강성 친문과는 선을 긋고 가겠다는 의도는 분명해 보인다. 이 당직자는 “4·7 재·보궐선거에서 나타난 민심은 명확하다. 강성 친문들이 당의 주도권을 계속 쥐고 갈 경우 내년 대선도 가망없는 것으로 송 대표는 파악하고 있다”며 “검찰 개혁 속도조절, 부동산 대책 수정 등을 추진하는 것도 그런 차원”이라고 했다.

주목되는 것은 송 대표가 문 대통령 임기 초·중반이라면 이럴 수 있겠느냐다. 그런 측면에서 대통령 레임덕 징후로 봐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우리 정치사에서 임기 말 대통령 레임덕 현상은 익숙한 풍경이다. 대통령 지지율이 떨어지면 여당부터 차기 대선 승리를 위해 대통령에게 당을 떠나달라는 요구를 했다. 김영삼 민자당 후보는 1992년 3월 총선에서 관권선거 논란이 일자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선거관리 중립내각과 탈당을 요구했다. 대선 직전 노 전 대통령은 민자당을 떠난 뒤 거국내각을 선포하고 현승종 한림대 총장을 총리로 임명했다.

1997년 대선을 앞두고선 이회창 신한국당 후보는 아들 비리 문제로 궁지에 몰린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탈당을 요구했다. 김 전 대통령의 이인제 후보 지원과 ‘김대중 비자금’ 수사유보 결정도 계기가 됐다. 결국 대선 한달 앞둔 11월 김 전 대통령은 여당을 떠났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임기 말 세 아들 비리 의혹과 ‘이용호 게이트’등으로 지지율이 급락하자 여당 지도부의 요구를 받아들여 2002년 5월 여당인 새천년민주당을 떠났다.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 모두 명실상부한 여당의 ‘오너’였지만 차기 대선을 앞두고 위기를 느낀 ‘미래권력’뿐만 아니라 직계 의원들로부터도 가차없는 공격을 당하면서 버텨낼 재간이 없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2007년 2월 열린우리당을 탈당했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 참패하는 등 각종 선거에서 연전연패하고, 지지율이 급락하자 열린우리당 친노무현계를 제외한 대부분의 의원들이 탈당 요구를 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만 예외였다. 소속정당이던 한나라당 내 친박(친박근혜)계의 견제로 국정운영에 애를 먹었지만 미래 권력이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은 대통령의 탈당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은 ‘최순실 사태’로 여당을 탈당한 것은 물론 탄핵까지 당하는 불명예를 안았다.

송 대표 체제에서도 역대 정권 말에 으레 일어났던 당·청 간 극한 상황으로 치달을 것인지에 대해 여권 관계자들의 의견은 엇갈린다. 친문계 고위 당직자는 “최고위원 등 친문계가 당 주류를 형성하고 있고, 친문 강성파들이 당 여론을 장악하다시피 한 상황에선 대통령 탈당을 불러오는 당·청 간 극단적 갈등 상황은 일어날 가능성이 낮다”고 말했다.

다른 전망도 있다. 한 비주류 중진 의원은 “대통령 지지율이 일부 30% 밑으로 내려오는 현상이 굳어지고 부동산 등 국민이 민감하게 느끼는 정책들이 강성 친문의 반발로 별 다른 성과를 얻지 못해 여론이 더 악화한다면 송 대표도 내년 대선을 위해 달리 선택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문 대통령이 간담회에서 여러 번 ‘원팀’을 강조했지만, 송 대표의 ‘당 주도’에 더 힘이 쏠리고 강성 친문들이 반발 강도가 더 세지면 극단적 갈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전망이다.

홍영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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