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형순의 과학의 창] 저온냉동고와 호기심의 쓸모

입력 2021-05-19 17:12   수정 2021-05-20 00:05

지난 17일 유럽의약품청이 일반 냉장고 온도에서 화이자 백신 보관 기간을 기존의 닷새에서 31일로 연장해도 안전하다고 발표했다. 일반 냉장고에서 보관할 수 있는 기간이 늘어난 만큼 백신의 유통이 상당히 용이해지고 그만큼 접종 접근성도 좋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화이자 백신을 장기 보관하기 위해서는 영하 60~80도 정도의 온도를 유지해야 한다. 이 정도 온도는 우리가 좀처럼 경험할 일이 없는 낮은 온도이다 보니 백신 수입 단계에서 이런 특수 냉동 시설을 충분히 확보 가능한지도 중요한 쟁점이었다.

그런데 혹시 이런 걸 의아하게 생각한 적이 있는가? 영상 70도 정도는 우리가 주변에서 얼마든지 경험할 수 있는 온도다. 집에서 차를 마시기 위해 물만 끓여도 100도에 도달하니까 우리는 하루에도 수차례 영상 70도나 그 이상의 온도에 있는 물질을 접한다. 이뿐만 아니라 물을 끓일 때 가스레인지를 사용한다면 이때 도시가스의 불꽃은 1000도를 넘기기도 한다. 인간이 불을 사용한 100만 년 이상의 역사를 감안하면, 영상 70도는 인류 역사와 항상 함께해왔다고 할 수 있다.

그에 반해서 영하 70도는 어째서 이렇게 경험하기 어려운 걸까? 여담이지만 인류가 정확한 기록을 남긴 이래로 지구상에서 발견된 가장 낮은 온도가 1982년 6월 23일에 남극에서 기록된 영하 82.8도라고 한다. 대한민국에 사는 우리가 영하 70도를 자연에서 발견할 일은 절대로 없고, 이 정도로 낮은 온도에 도달하자면 특수 냉동고가 반드시 필요하다. 영상 70도에 도달하듯 손쉽게 영하 70도에 도달할 수 있다면, 화이자 백신을 관리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을 텐데, 아쉽다면 아쉬운 일이다.
화이자 백신 영하 60~80도 유지 필요
이 질문에 정확한 답을 하자면 열역학 법칙에 대해 장황한 강의를 해야겠지만, 신문 지면에서 할 일은 아니니, 대신 질문을 조금 바꿔보자. 인류는 언제쯤, 왜 영하 70도에 도달하는 냉장 기술을 개발하게 됐을까?

액체가 기화하거나 기체가 팽창할 때 온도가 낮아진다는 사실은 오랫동안 잘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이를 실제로 능동적으로 활용해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순환식 냉장고를 최초로 개발한 것은 1800년대의 일이다. 미국의 발명가 제이컵 퍼킨스가 기체의 압축-냉각 사이클을 이용한 냉장고의 특허를 1834년 최초로 등록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니 불과 200년도 채 되지 않은 일이다. 특허에 등록한 냉장고를 얼음 만드는 기계라고 불렀으니 영하 10~20도 정도에 간신히 도달할 수 있는 기계였을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사람의 호기심'이 냉동고 개발 원동력
냉장고를 개발하려는 주목적이 음식이 상하지 않도록 보관하기 위해서였다고 본다면, 굳이 그 이하의 온도로 크게 낮출 필요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영하 60도 이하에 도달하는 냉장 기술을 우리가 갖추고 있는 것은 순전히 인간이 가진 호기심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1800년대 과학자들의 주요 관심사 중 하나는 ‘공기를 비롯한 다양한 기체를 액체로 만들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었다. 우리 주변에는 금속, 플라스틱, 목재, 도자기, 유리 등 다양한 종류의 고체가 존재하지만, 주변에서 접할 수 있는 액체의 종류는 상당히 제한적이다. 얼핏 보기에는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액체의 종류도 상당히 다양하지만, 사실 분자 단위로 쪼개 봤을 때 인간이 평생 접하는 액체는 대부분 물이다. 그 외에 기름과 알코올 정도가 조금 있을 뿐이다.

이런 관점에서 당대의 과학자들은 새로운 종류의 액체가 무엇이 있을까 궁금해했고, 새로운 액체를 발견하기 위해 기체를 액화할 방법을 모색하고 있었다. 일상적으로 기체 상태로 존재하는 물질을 액화하는 데 최초로 성공한 사례는 1823년 험프리 데이비와 마이클 패러데이가 염소를 액화한 것이다. 그리고 19세기 중반, 새로운 액체를 만들고, 이를 기화해 온도를 낮추는 과정에서 영하 100도에 도달하는 냉각 기술이 개발됐다. 1877년부터 산소, 질소, 수소 등의 기체를 차례로 액화하는 데 성공한 끝에 인류는 1908년 최후의 기체인 헬륨을 무려 영하 269도에서 액화하기에 이른다. 액체 헬륨을 이용해 인간이 만든 가장 강력한 냉장고는 현재 영하 273도에 도달하는 게 가능하다.

한 가지 주목할 것은 150년 후의 인류가 화이자 백신을 보관해야 할 것을 내다보고 당대의 과학자들이 냉장 기술을 개발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과학 발전의 동력은 지향하는 목표와 결과물을 잘 정렬시킬 때 나오는 게 아니라, 인간이 세상에 대해 궁금해하는 호기심 자체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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