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짓고 컴퓨터·스쿨버스 지원…GLP '에티오피아의 미라클' 일궜다

입력 2021-05-24 15:06   수정 2021-05-24 18:14


“큰 병에 걸린 사람들도 치료할 수 있는 의사가 되고 싶어요.”

에티오피아에 사는 열다섯 살 제메누의 장래희망은 의사다. 하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제메누는 의사라는 꿈을 상상하기조차 어려웠다. 그가 처한 환경이 그랬다. 제메누는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 400㎞ 떨어진 관과라는 지역에 살고 있다. 주민 대부분이 하루 평균 1달러 미만으로 살아가는 곳으로 지역 내 학교는 한 곳에 불과했다. 제메누는 하는 수 없이 인근 딜라 지역에 있는 학교까지 원거리 통학을 했다. 문제는 딜라 지역과 관과 지역의 언어가 다르다는 것. 제메누는 수업조차 따라가기 힘들었다. 학교에 다녀도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수 없던 제메누가 의사라는 꿈을 그리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제메누가 지난해 상급학교 진학을 위해 치러진 지역 학력평가서 1등을 차지한 것이다.
“교육받을 기회를 주다”
제메누를 비롯해 관과 아이들에게 희망을 안겨준 것은 기아와 밀알복지재단의 ‘그린 라이트 프로젝트(GLP)’다. GLP는 기아의 대표 글로벌 사회공헌 활동이다. 사업한계에 직면한 사람들에게 도전의 기회를 제공하고, 개인의 성장과 더불어 지역사회 자립을 지원하자는 목표로 전 세계 9개국 12개 거점에서 진행되고 있다. 밀알복지재단은 1993년 설립돼 장애인, 노인, 지역사회 등을 위한 47개 운영시설과 8개 지부를 운영하고 있다. 전 세계 14개국에서 아동보육, 보건의료, 긴급구호 등 국제개발협력사업도 수행 중이다. 2015년에는 유엔 경제사회이사회(UN ECOSOC)로부터 ‘특별 협의적 지위’를 획득하며 국제적 비영리조직으로서의 지위와 위상을 인정받기도 했다.



밀알복지재단으로부터 에티오피아의 열악한 상황을 전해들은 기아는 GLP를 시작하기로 했다. 교육을 중심으로 지역의 자립을 돕자는 청사진을 그렸다. 열악한 교육환경을 개선해 학생들에게 양질의 교육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이었다. 자립사업으로 지역주민들의 역량을 강화시켜 최종적으로는 외부 지원 없이도 주민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사업 방향이었다.

기아와 밀알복지재단이 지역조사를 위해 관과를 방문했을 때 지역정부 관계자와 주민들이 가장 먼저 꺼낸 이야기도 교육이었다. 이들은 한 목소리로 학교의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학교 설립과 운영에 적지 않은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에 외부 지원 없이는 신규 학교 설립은 힘든 상황이었다.

기아와 밀알복지재단은 관과지역의 아이들이 안전하게 다닐 수 있는 ‘GLP 스쿨’을 설립했다. 이 학교는 최대 160명의 학생들이 다닐 수 있는 규모다. 2015년도 첫 삽을 뜬 후 2016년 문을 열었다. 특히 관과에는 없었던 중등학교 과정을 개설하기도 했다.

기아와 밀알복지재단은 단순히 공간만을 제공하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양질의 교육환경을 제공할 수 있도록 사업계획을 세웠다. 지역 토착어인 ‘오로모어’ 외에도 수학, 과학 등 기본 과목과 더불어 컴퓨터 교육, 리더십 캠프, 독서토론 등 특별 수업을 실시했다. 또한 상급학교 진학을 돕기 위해 에티오피아 공용어인 ‘암하릭어’는 물론 영어까지 가르쳐 학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했다. 무엇보다도 교사들의 역량 강화를 위해 연 2회 이상 세미나를 개최하는 등 수업의 질을 높였다.

도보로 통학이 어렵거나 분쟁지역과 인접해 사는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 스쿨버스도 운영했다. 등하교 시간이면 기아의 로고가 새겨진 GLP스쿨의 스쿨버스가 학생들을 태워 나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가난한 아이들이 공부에 집중할 수 있도록 교복과 책가방 등 학용품도 지원했다.

제메누는 “GLP스쿨 이전에 다녔던 학교는 비가 오면 천장과 창문으로 비가 쏟아졌다”며 “GLP스쿨은 학생들이 교육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줬다”고 말했다. 제메누는 GLP 졸업 후 현재 상급학교인 관과 정부 고등학교에 진학해 공부하고 있다. 의사의 꿈에 조금씩 다가가고 있는 것이다.

기아와 밀알복지재단은 아이들의 학업 중단을 막기 위해선 지역 주민의 인식개선도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이에 학부모운영위원회를 조직했다. 학부모가 직접 학교 운영에 참여하게 해 교육의 필요성을 깨닫고 스스로를 학교 운영의 주체로 여길 수 있도록 도왔다. 이러한 노력으로GLP스쿨은 교육의 중도 탈락률이 높은 아프리카에서 보기 드물게 97%의 상급학교 진학률을 보이고 있다.
“자립할 힘을 주다”
기아와 밀알복지재단은 학교를 거점으로 ‘자립지원사업’도 병행했다. 관과 주민들이 농업을 넘어 보다 다양한 일을 하며 자립할 수 있도록 컴퓨터, 재봉 등 다양한 직업교육을 했다. 또 협동조합을 구성해 주민을 조합원으로 참여시키고, 조합 자금으로 창업할 수 있게 지원했다. 지역 내 물류 유통이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화물차도 제공했다. 컴퓨터 교육을 받은 수료자의 절반 이상이 취업과 승진, 대학 진학에 성공하기도 했다.

기아와 밀알복지재단은 농업에 종사하는 주민들을 위한 사업도 계획했다. 농업 조합을 구성해 농민 간 정보 교류의 장을 만들어 수확량을 늘릴 수 있도록 도왔다. 가축대부업을 실시해 지역 주민들이 송아지 등 가축을 키워 부가적인 소득을 낼 수 있게 했다.


기아의 후원과 밀알복지재단의 지원, 지역 정부의 협력이 합쳐진 결과, 2015년 사업에 착수한 이후 6년 만에 관과의 교육의 질과 지역주민의 소득이 눈에 띄게 향상됐다. 무엇보다 두드러진 변화는 지역주민들의 인식이다. 교육의 중요성을 깨달았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갖게 됐다. 지역주민들은 소극적이고 무기력하던 과거와 달랐다. 자신과 지역의 발전을 위한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기아와 밀알복지재단은 지난 5월 15일 에티오피아 현지에서 GLP 이양식을 열고 모든 사업을 지역주민들의 손에 넘겼다. GLP스쿨뿐만 아니라 직업교육, 협동조합 등 GLP를 통해 시작한 모든 사업들이 기아와 밀알복지재단의 손을 떠나는 셈이다. 앞으로는 관과 지역 정부와 주민들이 운영의 주체가 돼 더 나은 지역사회를 만들기 위해 GLP를 꾸려 나가게 된다.

GLP스쿨의 교장 아비 테스파예 씨는 “기아와 밀알복지재단은 학교만 건립해주고 떠나는 일회성 지원이 아니라, 주민이 스스로 가꿔나갈 수 있는 지역사회를 만들어줬다”며 “GLP스쿨을 졸업한 아이들이 더 큰 꿈을 꾸고, 그 꿈을 실현시키는 모습을 기대해달라”고 말했다.

오현아 기자 5hy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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