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교의 눈물…네이버·카카오 이어 이번엔 넥슨서 터졌다 [강경주의 IT카페]

입력 2021-06-05 07:05   수정 2021-06-05 08:49


포털·게임 등 정보통신(IT) 업계가 노사 갈등으로 신음하고 있다. 인력 관리가 IT 기업들의 가장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는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이러한 추세가 앞으로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넥슨, 일부 직원 3개월 대기발령 조치
5일 넥슨 노조 '스타팅포인트'에 따르면 넥슨과 자회사 네오플은 전환배치팀(R팀) 소속 직원 중 1년 이상 업무에 재배치되지 않은 직원 16명에 대해 3개월의 대기발령 조치를 내렸다.

이들 직원은 이 기간 회사에 출근하는 대신 외부 교육을 받는다. 회사는 임금의 75%를 휴업수당으로 지급하고 교육비 200만원을 별도 지원한다. 3개월 후 부서 면접을 통해 전환배치를 받은 대상자는 다시 100% 급여를 받는다.

스타팅포인트는 "당사자 동의를 구하지 않은 일방적 조치"라며 "3개월 뒤 복직하고 채용면접에 재도전하게 되지만 그 이후 계획은 없다"고 반발했다.

이 같은 현상은 게임 업계 특유의 제도 때문에 발생했다는 분석이다. 넥슨은 게임을 개발할 때마다 프로젝트별로 직원들을 투입한다. 프로젝트가 중단되면 해당 직원들은 다시 넥슨의 다른 프로젝트에 이력서를 내고 면접을 보는 구조다. 프로젝트마다 필요 인력이 다르기 때문에 능력과 상관없이 일을 구하지 못하는 직원들이 발생했는데 그 기간이 길어지면서 문제가 커졌다는 게 업계 관계자 설명이다.

넥슨은 2019년 매각 무산 이후 대대적 조직 개편과 프로젝트 선별 작업을 거쳐 두 자릿수 게임 개발 프로젝트를 종료했다. 이 과정에서 해당 프로젝트에서 일하던 직원의 업무 재배치 문제가 불거졌고, 노조가 탄생하는 배경이 됐다.

당시 이정헌 대표는 고용 불안정을 호소하는 노조에 "전환 과정에 더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안전망을 고민하고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며 "넥슨이 성장하기까지 함께 땀 흘리면서 가장 큰 원동력이 되어준 직원 여러분을 배제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넥슨 노조는 현재 집행부를 중심으로 회사 앞에서 1인 릴레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하지만 넥슨 측은 이번 대기 발령 대상자들에게 1년이 넘도록 다른 업무에 지원할 기회를 줬고, 올 초 전직원 연봉 800만원 일괄 인상시에도 이들에게 동일한 정책이 적용됐다고 강조했다.
카카오-네이버, 노사 갈등 극에 달해
카카오도 심각한 노사 갈등을 겪고 있다. 중부지방고용노동청 성남지청은 지난 2일 카카오에 대한 근로감독 결과 주52시간제 위반 등 노동관계법 위반 사항들을 적발해 시정 지시를 내렸다. 이번 근로감독은 카카오 직원들이 근로기준법 위반 사례를 모아 고용노동부에 청원하면서 이뤄져 노사 갈등이 극에 달했다는 말이 나온다.

최근에는 일부 직원들에게 고급 호텔 숙박권을 지급하는 이른바 '고성과자 선별복지'를 추진하다 역풍을 맞았다. "복지까지 성과와 연동하는 것이냐"라는 내부 비판이 터져 나오자 카카오는 선별 복지가 아닌 '포상 제도'"라고 해명했다.

인사평가를 두고 동료 간 불신을 조장한다는 비판도 받았다. 다면평가 중 동료평가 항목의 "이 동료와 다시 함께 일하고 싶습니까?"와 "회사에 뛰어난 성과를 내야 하는 프로젝트가 있을 때 이 동료와 함께 일하시겠습니까?"라는 두 질문에 대한 응답이 당사자에게 공개되서다. 보상 문제도 불거졌다. 스톡옵션 지급을 두고 2년 이상 근무해야 행사할 수 있고 차익을 보려면 주가가 올라야 해 '인재 묶어두기'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네이버 역시 같은 문제로 시름하고 있다. 네이버는 최근 업무상 스트레스와 직장 내 괴롭힘을 호소하며 극단적 선택을 한 직원 사건에 대해 자체 진상조사에 착수했다. 한성숙 네이버 대표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경찰 조사와 별개로 외부 기관을 통해 조사받는 과정을 갖겠다"고 밝혔다.

지난달 25일 네이버 직원 A씨는 성남시 분당구 소재 자택 근처에서 숨진 채로 발견됐다. 현장에서는 업무상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내용 등이 적힌 메모가 발견됐다. 이와 관련해 네이버 노동조합은 "고인이 생전 과중한 업무 스트레스와 위계에 의한 괴롭힘을 겪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네이버는 뒤늦게 최인혁 최고운영책임자와 괴롭힘 가해자로 지목된 책임 리더의 직무를 정지했다.
"IT 기업, 그럴싸해 보이지만 실상은 살인적 경쟁 허덕여"
업계에서는 IT 기업들의 연쇄 노사 관련 잡음에 대해 단기간 압축 성장을 하면서 조직 관리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구조적 문제라고 봤다. 2~3년 전부터 IT 업계에 노조가 늘어난 점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것. 2018년 네이버·카카오·넥슨·스마일게이트·안랩에 노조가 설립됐고 지난해 엑스엘게임즈에 이어 올해 카카오뱅크·한컴·웹젠 노조가 만들어졌다.

판교로 출퇴근하는 한 업계 관계자는 "TV에서 멋지게 포장해 주니 겉으로 보기에 IT 기업이 그럴싸해 보이지만 실상은 살인적 경쟁에 허덕이고 있다"며 "IT 1세대 때부터 '끼리끼리' 문화가 워낙 만연해 공정한 보상과 인사 평가가 이뤄지는지 의문들이 많다"고 지적했다.

보상 업무를 담당하는 한 IT 업계 관계자는 "인사 평가가 객관적이지 않다는 항의가 너무 많다"며 "IT 기업들이 성장하면서 인수 합병하는 경우도 많았고, 그에 따른 출신과 배경 간 알력 다툼이 치열해 성과급이나 보상 기준을 마련하는 게 겁이 난다"고 하소연했다.

네이버 노조 '공동성명'이 소속된 전국 화학섬유식품노조는 최근 일련의 사태에 대해 "IT 기업의 급성장 이면에 합리적이지 못한 조직 문화가 존재한다"며 "업무 특성상 장시간 근로와 상시적인 과로에 노출돼 온갖 고통을 겪고 있다"고 진단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IT 기업들이 1년 새 주가도 오르고 성과도 좋고 매출도 받쳐주면서 덩치가 커졌고 그 과정에서 겪는 성장통"이라며 "IT 기업들은 대기업들에 비해 비교적 젊은 세대인 MZ세대로 구성돼 있어 문제가 더 크게 부각됐다. IT 분야 스타트업이나 4차산업 기업들이 거칠 과정"이라고 내다봤다.

업계 관계자는 "IT 분야가 개인의 역량을 가장 중요하게 여길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며 "팀워크라는 이름 아래 단합과 효율성을 가장한 정서적 폭력이 만연했고 과도한 통제와 필요 이상의 제한을 가해 왔던 게 IT 업계의 병폐"라고 잘라 말했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공정한 성과 공유와 대우 기준을 마련하는 게 경영자의 가장 중요한 능력이 되는 시대"라며 "기업에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앞으로 생산성이 많이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IT 인력들은 전문성을 갖고 있다 보니 역량에 맞는 합당한 대우를 요구할 수 있다"며 "과거 기업 문화라는 건 위에서 목표를 정해서 일방적으로 찍어누르는 식이었지만 이제는 새로운 기업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강경주 한경닷컴 기자 quraso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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