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추구하지만 파괴되는 삶…惡에 천착한 작가, 2년 만의 신작

입력 2021-06-08 18:13   수정 2021-06-09 00:38

목가적이고 평온함이 연상되는 시골 농장. 오리에게 줄 사료를 만드는 여인. 서늘함과 공포, 악(惡)을 떠올리기 쉽지 않은 공간에서 잔혹함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등장인물과 함께 섬뜩한 ‘악의 협주곡’이 울린다. 공포의 불협화음을 조장하는 계기가 행복을 추구하는 욕구, 자기애와 ‘무결함’의 추구라는 점이 전율을 더한다.

인간 내면의 악을 집중적으로 파고든 까닭에 ‘악의 소설가’로 불리는 정유정 작가(55)의 신작 장편소설 《완전한 행복》(은행나무)은 제목처럼 자기애로 뭉친 주인공이 행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주변이 황폐해지고 철저하게 파괴되는 과정을 그렸다. 버스도 다니지 않는 외딴 시골집에 사는 모녀와 이곳을 방문한 한 남자가 서로 다른 행복을 추구하면서 발생하는 부조화와 갈등이 파국으로 치닫는 과정이 긴장감 넘치게 전개된다. 선명한 문체, 평화로운 정경이 주인공 신유나가 저지르는 악행을 역설적으로 서늘하게 전한다.

악행에도 연유가 있는 법. 소설이 초반에 그림을 그리듯 상세하게 보여주는 평범한 일상, 목가적 풍경은 어두운 과거를 단지 일시적으로, 억지로 감추는 가림막에 불과할 뿐이었다.

“엄마가 부엌칼로 자기 손목을 그어버린 밤에 대한 기억은 특히 더 또렷하다. 그때도 엄마는 아빠와 싸우고 있었다. …주방 바닥에 널브러진 엄마, 피범벅이 된 엄마의 손, 발밑으로 날아든 부엌칼…”이라는 유나의 독백은 공포의 시원을 드러낸다. 자기애의 화신 유나의 비극을 단순한 악인의 천인공노할 악행이라고 비난할 수만은 없는 이유다.

‘완전한 행복’을 꿈꾸며 ‘무결함’을 추구하던 것이 악을 부른다는 설정은 유나의 악행에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일말의 정당성을 제시한다. “행복은 뺄셈이야. 완전해질 때까지, 불행의 가능성을 없애가는 것”이란 완벽주의적 집착이 행복과의 거리를 점점 벌려놓는다.

“칼날을 통해 유나의 목 근육이 꿈틀 튀는 게 전달돼 왔다”는 식의 명료한 문장, “아래층 욕실에서…피가 고인 욕조에…다리 두 개가…발이 달린…진짜 다리…”처럼 마치 잔혹한 현장에서 말문을 잃은 이가 내뱉을 듯한 실감 나는 인용이 독자의 긴장을 높인다.

정 작가는 등단작 《내 인생의 스프링캠프》부터 《내 심장을 쏴라》 《7년의 밤》 《28》 《종의 기원》 등 주요 작품을 통해 인간 기저에 깔린 악을 탐구해왔다. 2019년 발표한 《진이, 지니》 이후 2년1개월 만에 내놓은 이번 작품은 작품 속 공간을 상세하게 구체화하기 위해 바이칼호수까지 답사하는 등 세심하게 공을 들였다는 설명이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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