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사이다' vs 윤석열의 '따거'…어느게 더 통할까 [홍영식의 정치판]

입력 2021-06-13 12:39   수정 2021-06-13 13:44


이재명 경기지사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지지율 조사에서 엎치락뒤치락하며 대선 양강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역대 대선 과정을 보면 선거 9개월 전 지지율이 반드시 끝까지 유지된다는 법은 없다. 향후 남은 기간 수많은 변수들이 생길 것이고 그에 따른 지지율도 출렁일 것이다. 이 때문에 현재 지지율을 기준으로 대선판을 규정 지을 수는 없다. 그럼에도 이 지사와 윤 전 총장의 지지율 양강 구도가 수개월째 지속되고 있기 때문에 이 흐름 또한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두 사람의 지지율을 보면 그야말로 호각지세다. 한국갤럽이 지난 6월 1~3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95% 신뢰 수준에 표본 오차 ±3.1%포인트. 이하 자세한 내용은 중앙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서 ‘다음 대통령감으로 누가 좋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은 결과 이 지사가 24%, 윤 전 총장이 21%로 오차 범위 내에서 박빙을 이뤘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 등 4개 여론 조사 업체가 지난 5월 31일부터 6월 2일까지 전국 만18세 이상 성인 1008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이 지사는 28%를 얻어 윤 전 총장(20%)을 8%포인트 차로 앞섰다.

반면 TBS 의뢰로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6월 5~6일 전국 성인 남녀 1009명에게 차기 대선 후보 적합도를 물은 결과 윤 전 총장은 31.1%, 이 지사는 26.1%로 조사됐다. 다른 여러 조사에서도 두 주자의 지지율이 엎치락뒤치락하면서 여타 주자들에 비해 큰 차이로 앞서나가고 있다.
국민 감성 자극하는 스토리, 대선 주자의 기본 요건
여의도 정치권 장외 주자가 대선 9개월 정도를 앞둔 시점에서 장내 유력 주자들을 제치고 지지율 수위 다툼을 하는 것은 보기 드문 현상이다. 두 사람은 공통점이 많다. 스토리가 있다. 스토리는 대선 주자 요건 중 중요한 부분이다. 대중의 감성을 자극할 수 있는 강한 무기다. 똑 부러진 스토리가 없다면 평범한 인생 이야기를 신화처럼 엮어 내야 한다. 역대 대통령 모두 그럴듯한 스토리를 갖춘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 지사는 ‘소년공’이라는 말 속에서 함축돼 있듯이 유난히 어려운 시절을 보냈다. 그는 1964년 경북 안동 도촌리라는 ‘깡촌’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그의 가족은 경기 성남으로 이사했다. 이 지사는 중학교를 다니는 대신 오리엔트 시계 공장으로 향했다. 공장을 전전하면서 산업 재해를 당해 손가락을 다쳤고 팔도 굽었다. 자서전 이름을 ‘이재명의 굽은팔’로 지은 것도 이 때문이다. 검정고시에 합격한 뒤 1982년 장학생으로 중앙대 법대에 진학했고 1986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성남에서 노동·인권 변호사로 이름을 알렸고 2010년 성남시장에 당선되면서 정치에 발을 들였다. 성장기에 세파의 밑바닥 경험을 온몸으로 겪은 것은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윤 전 총장의 스토리는 이 지사와 좀 다르다. 우선 사는 형편이 이 지사보다 나았다. 아버지는 윤기중 연세대 명예교수다. 윤 전 총장의 스토리는 의리·친화력·마당발이란 말에 함축돼 있다. 사람을 좋아하다 보니 9수 끝에 사법시험에 합격했다는 것도 그럴듯한 스토리가 됐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해 1년에 사시 공부를 10일만 했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아홉째 사법시험 보기 며칠 전 서울대 법대 동기가 장가를 가면서 부탁한 함진아비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 대구까지 내려간 일화도 있다. 그래서 학창 시절이나 검사 시절 그는 ‘따거(큰형님)’로 통했다.

기질도 닮았다. ‘싸움의 기술’이 대단하다는 뜻이다. 조용헌 건국대 석좌교수가 표현했듯이 이 지사는 ‘반항’, 윤 전 총장은 ‘항명’의 이미지로 유명하다. 이 지사는 혈혈단신 정치에 입문해 당내 세력을 빠르게 잠식하고 있다. 여의도 정치 본류 근처에 가보지도 않고 일개 지역 시장(성남)으로 시작, 일약 전국구 인물로 성장해 여당의 유력 대선 주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이슈 파이팅’ 때문이다.

배종찬 인사이트 케이 연구소장은 일찌감치 이렇게 분석했다. “대선 주자는 이슈 파이팅을 해야 주목도를 높이고 경쟁력을 평가받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지사는 사회적으로 주목받는 현안에 대해 주도적으로 목소리를 내 왔다. 젊은 세대들은 이슈 파이팅을 많이 하는 사람에게 열광할 수밖에 없다.”

이 지사 측 김병욱 민주당 의원은 이 지사의 이슈 파이팅의 한 예를 소개했다. “경기 지역 하천과 계곡의 불법 시설물을 생활 적폐로 보고 뿌리 뽑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보였다. 역대 그 어느 지사도 지역 상인들의 표심 때문에 해내지 못했던 것인데 어려운 일이지만 꼭 필요하다고 생각할 땐 과감하게 일을 추진했다.”

그의 급진적 정책도 그를 전국구 정치인으로 우뚝 서게 한 요인이다. 대표적인 것이 성남시장 때부터 추진한 기본소득이다. 최근엔 기본주택, 기본대출로 ‘기본 시리즈’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이런 선명한 정책에 대해 이슈 파이팅, 사이다라는 반응도 있지만 그를 대표적인 포퓰리즘 정치인으로 각인시키기도 했다. 이 때문에 최근 이낙연·정세균 전 총리 등 민주당 내 대선 라이벌뿐만 아니라 야당 주자들에게도 기본소득과 관련한 집중적인 공격을 받고 있다.

본격 대선 국면에 접어들면 이런 공격이 더 강해질텐데 ‘포퓰리즘 주자’ 딱지를 어떻게 극복해 내느냐가 그의 최대 과제다.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은 성남시장과 경기지사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수준의 검증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윤 전 총장이 전국구 스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두둑한 배짱과 뚝심에 바탕을 둔 싸움의 기술에 있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에 의해 검찰총장에 발탁됐지만 ‘사람에 충성 않는다’는 특유의 지론으로 대통령과 ‘맞짱’ 뜨는 것도 피하지 않았다. 역대 검찰총장이 법무부 장관과 갈등을 겪은 사례는 많다. 하지만 대통령과 맞선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런 구도가 되기 전 스스로 그만두는 게 보통이었다. 그러나 윤 전 총장은 달랐다.

보통 맷집이 아니었으면 일찌감치 나가떨어졌을 것이라는 게 정치권과 법조계의 시각이다. 윤 전 총장이 과거 정치권과 인연이 없이 대선판에 뛰어들었다가 실패한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고건 전 총리 사례와 다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배경이다. 조국과 추미애라는 거물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전승을 거둔 것도 마찬가지 차원이다. 정의와 공정이라는 아이콘을 낚아 채는 기술도 대단하다.
여의도 장외 주자로 출발, ‘블랙 스완’ 꿈 이룰 수 있을까
하지만 검사로서 보여준 뚝심과 대선 주자의 리더십은 다르다. 정치 리더십은 훨씬 복잡하고 고단수의 영역이다. 상명하복이 몸에 밴 검찰 조직에서 요구하는 리더십과는 차원이 다르다. 정치 리더십은 대쪽만이 필요한 게 아니라 때로는 활처럼 유연함도 갖춰야 한다. 사람을 감동시키고 함께 눈물을 흘리는 감성도 필요하다.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말대로 사자와 여우의 모습을 함께 갖춰야 한다. 그래서 정치 리더십은 다면적 예술이라고 한다.

경제·외교·안보·교육 등 각 분야에 대한 식견과 통찰력이 필요한 것은 기본이다. 윤 전 총장이 빨리 정치판에 등판하라는 압박을 받고 있음에도 ‘공부’에 열중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윤 전 총장과 가까운 한 정치권 인사는 “국민의힘에서는 빨리 들어와 당을 장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지만 등판하자마자 줄줄이 공격 받고 질문 받고 토론도 벌여야 하는데 ‘내공’을 쌓지 않고 어떻게 버텨낼 수 있겠느냐”며 “준비가 웬만큼 됐다 싶으면 늦지 않게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이 지사와 윤 전 총장이 대선 본선에서 맞붙는다면 ‘사이다’ 리더십과 ‘따거’ 리더십 중 어느 것이 더 통할까. 정치 장외에서 출발한 두 주자가 ‘블랙 스완’의 꿈을 이룰 수 있을까.

홍영식 논설위원 겸 한경비즈니스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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