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어머님들의 한을 담은 춤사위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

입력 2021-06-14 14:05   수정 2021-06-14 15:39

누구든 음악을 틀고 "춤을 춰 달라"는 부탁을 들으면 손사레를 친다. 낯부끄럽기도 하고 어떤 춤을 춰야 할지 가늠이 안 돼서다. 할머니들은 달랐다. 고개를 숙이지도 않고 팔을 흔들었다. 이들의 어설픈 몸짓엔 스윙과 트로트, 뽕짝, 전통무용이 한데 섞여있었다. 할머니들이 겪은 근대의 질곡을 위로해줬던 춤이었다. 현대무용가 안은미가 13일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에서 선보인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 이야기다.

안은미는 오랜 세월 현대사의 풍파를 몸소 겪은 할머니에게 무대를 헌정했다. 공연이 시작되자 안은미가 색동 저고리를 입은 채 무대에 올랐다. 배경음악 하나 없이 정적이 흐르는 공연장에서 안은미는 10분 동안 독무를 펼쳤다. 느리지만 고고한 몸짓으로 청중들을 압도했다.

그가 무대에서 사라진 후 안은미컴퍼니에 소속된 무용수들이 무대에 올랐다. 할머니들이 주로 입는 몸빼바지와 꽃무늬 원피스를 입은 채로 무대를 휘저었다. 무용수들의 격렬한 춤사위는 할머니들의 소싯적 모습을 연상시켰다. 동작 사이마다 '고속도로 댄스' 곁들인 것이다. 막춤이 멎은 후에야 역동적인 스트리트 댄스를 췄고, 비보잉을 선보이기도 했다.

40분 가까이 역동적인 군무가 펼쳐지고 나서야 조명이 꺼졌다. 음악도 멈춘 채 무대 뒤로 영상이 재생됐다. 2010년 안은미가 한 달 동안 전국을 돌아다니며 만났던 할머니들의 모습이었다. 이들에게 춤을 춰달라 부탁하고선 촬영한 것이다. 할머니들은 쑥스러운 표정을 짓다가도 이내 멋진 춤을 내놨다. 재래시장에선 돼지 머리를 들고 몸을 흔들었고, 논 위에서 모판을 양 손에 든채 트위스트를 추기도 했다.

영상이 멈추고 나서야 할머니들이 무대 위에 올랐다. 무용수들과 할머니 10명이 한데 어우러져 각양각색의 군무를 보여줬다. 공연을 절정으로 이끈 건 경배 퍼포먼스였다. 무용수들이 할머니들을 둘러싼 채로 절을 하기 시작했다. 무대에 선 할머니들이 '살아있는 조상'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절을 끝내자 할머니와 무용수들은 한데 어우러져 춤판을 벌였다.

밴드 이날치를 이끌고 있는 장영규 음악감독의 배경음악도 공연을 풍성하게 만들었다. 전반부에서는 전자악기를 활용해 경쾌한 전자음악을 들려줬다. 후반부에는 1950년대부터 국내에서 유행한 선율을 본떠 메들리를 선보였다. 스윙, 트로트, 블루스 등의 멜로디가 공연장을 메웠다. 할머니들이 즐겨 듣던 유행가에 신명나는 춤판. 21세기를 살아가는 '근대의 여인들'에게 바치는 경쾌한 무대였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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