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新레디메이드 인생 청년에게 일할 기회를

입력 2021-06-15 17:24   수정 2021-06-16 00:08

얼마 전 우연히 채만식의 ‘레디메이드 인생’을 다시 읽다가 마음이 복잡해졌다. 1934년에 나온 소설 속 청년들이 겪은 시대상이 요즘과 데칼코마니처럼 닮아 있어서다. 소설 속 대학을 나온 인텔리 청년들은 일자리가 없어 생활고에 찌들고 좌절하고 있었다. 특히 “나는 석 달 치 밀렸네”, “나는 돈을 보면 초면 인사를 해야 되겠네. 본 지가 하도 오래라서 낯을 잊었어”라며 방세를 내지 못했다고 대화하는 부분에서는 책장을 넘기던 손마저 멈췄다. 우리 청년들도 87년 전 소설 속 대화를 지금 나누고 있고, 심지어는 ‘다 포기했다’고 외치고 있지 않은가.

우리 청년들에게 닥친 상황은 그 어느 때보다도 어렵다. 그렇지 않아도 좁은 취업문은 코로나19 위기까지 겹치며 더 좁아졌다. 청년(15~29세) 실업자가 올 2월부터 4개월째 40만 명을 넘어선 가운데, 취업준비생까지 포함한 청년 체감실업률은 올 들어 평균 25.8%에 달했다. 사실상 청년 4명 중 1명이 실업자란 의미다. 청년고용률이 올 5월 44.4%로 작년 5월보다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청년층 내 인구 비중 변화나 정부가 만든 단기 일자리를 고려하면 의미 있게 개선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과 비교해봐도 우리 청년고용률은 OECD 37개국 중 32번째(2019년)로 뒤에서 순위를 세는 게 더 빠를 정도다.

일자리가 없으면 기본적인 먹고사는 것을 걱정해야 한다. 이런 청년들에게 저축이나 결혼 같은 얘기는 딴 세상 이야기일 뿐이다. 지금 청년들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단기 선심성 정책보다는 꾸준히 일할 수 있는 기회다.

청년들에게 일할 기회를 더 많이 줄 수 있는 해법은 명확하다. 보다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노동시장의 유연·안정성을 제고하며 미스매치를 해소하는 것이다.

우선 산업현장 곳곳에 불필요한 규제를 찾아내 없애는 등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해 기업들이 많은 일자리를 만들 수 있게 해야 한다. 노동시장도 청년들의 진입과 복귀에 부담이 없도록 유연성을 높이고 고용안전망을 촘촘히 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규직에 대한 과도한 보호를 완화하고 일의 가치와 성과에 따라 보상받도록 해야 한다. 구직자들이 새롭게 등장하는 산업과 다양한 모습의 일자리에 손쉽게 진입할 수 있도록 직업훈련과 고용서비스 강화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 아울러 학교 교육도 수요와 괴리된 고학력화 현상을 개선하고 노동시장에 맞게 변화시켜 미스매치를 줄여야 한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노동시장에서 제기되는 요구나 관련 정책 추진이 청년고용 증진에 도움이 되는지 면밀하게 따져보는 일이다. 예를 들어 일부 대기업 강성노조의 정년 65세 연장 요구는 청년고용을 더 악화시킬 것이 자명하다. 정년연장이 청년고용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해서는 지금도 의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정년을 앞둔 근로자 1명의 인건비가 신입직원 3명의 인건비와 맞먹는데 기업들이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는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물론 고령화와 인구감소에 대비한 고용연장 논의는 필요하긴 하나, 한 직장 내에서 일자리 유지를 위해 정년을 연장하는 좁은 관점에서 벗어나 고령자들이 노동시장 내에서 좀 더 오래 머무는 방향으로 전개돼야 한다. 여기에는 연금제도를 비롯한 사회안전망 개선, 생애주기별 교육·훈련시스템 강화, 고령 친화적 사회 인프라 구축 등 사회문화 변화도 동반돼야 한다. 장기적 접근이 필요한 문제다.

코로나19로 ‘길 잃은 세대(Lost Generation)’가 된 청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지 못하면 우리나라의 미래는 캄캄할 수밖에 없다. 기성세대가 결자해지의 자세로 양보와 희생을 통해 청년들에게 일할 기회를 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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