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년 세계 1위 삼성 반도체, 진짜 '심각한 위기'인가 [황정수의 반도체 이슈 짚어보기]

입력 2021-06-26 20:21   수정 2021-06-27 08:57


삼성전자는 D램 사업에서 29년째 세계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낸드플래시도 20년 가까이 1위 자리를 놓친 적이 없다. 2019년부턴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에도 적극 투자하고 있다.

반도체사업의 경쟁력은 크게 세 가지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다. 전체 생산품에서 쓸 수 있는 제품의 비율을 뜻하는 '수율'이 얼마나 높은지. 연 10조원 넘는 규모의 투자를 꾸준히 단행할 수 있는지, '최첨단 기술'을 가장 먼저 개발하고 제품 양산에 적용할 수 있는지다. 삼성전자 반도체, 특히 메모리반도체 사업의 '성공방정식'은 세 가지가 어우러져서 시너지를 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최첨단 기술' 측면에서 삼성전자가 경쟁업체들에 밀리는 모습이 종종 목격되고 있다. 먼저 D램이다. 미국 메모리반도체업체 마이크론이 도발을 시작했다. 지난 1월에 1a D램을 양산했다고 깜짝 선언했다. 세계 최초로 최신 제품을 공개한 것이다.
D램에도 EUV장비 적용하느라 4세대 제품 개발 늦어져
D램 시장의 경쟁 구도는 삼성전자가 약 40%, SK하이닉스가 30%, 마이크론이 20% 정도의 점유율을 갖고 있다. 기술 경쟁은 선폭(트렌지스터 게이트의 폭) 10nm(나노미터, 10억분의 1m) 대에 접어들었다. 선폭은 반도체 업체의 기술력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척도로 꼽힌다. 선폭이 좁을수록 작고 전력 효율성이 높은 반도체를 만들 수 있다.

업체들은 과도한 기술경쟁을 피하기 위해서 10나노 후반은 1x, 그 다음은 1y, 그리고 1z. 이후에 1a b c 이렇게 이름을 붙이기로 했다. 현재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력 제품은 10나노 3세대를 뜻하는 1z다. 그런데 1z보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선폭이 더 좁은 1a D램을 마이크론이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마이크론은 1~2년 전까지만 해도 삼성과의 초미세반도체 기술 격차가 2년 안팎이었다.

처음엔 마이크론의 1a D램 개발 소식에 "가짜다" 이런 얘기까지 나왔다. 이달 초 산제이 메로트라 마이크론 대표(CEO)가 대만의 테크행사에서 직접 "LPDDR4x(모바일용) 1a D램의 대량 생산(양산)을 시작했다”며 “1a D램에 기반한 DDR4는 AMD 서버용 프로세서 3세대 에픽을 포함한 최신 데이터센터와 호환 인증을 마쳤다. 그리고 대만 PC 기업 '에이서'에도 장착하기로 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그렇다면 삼성전자의 최첨단 D램 기술력이 마이크론에 따라잡힌 것일까. 숫자만 보면 일단 그렇다. 어쨌든 1a 나노. 4세대 D램은 마이크론이 가장 먼저 개발했고 양산한 셈이 됐다.


하지만 삼성전자에도 사정이 있다. 삼성전자는 경기 평택 공장에서 1z, 그러니까 3세대 10나노 D램에 EUV 장비를 적용해 제품을 양산하고 있다. EUV 장비는 파운드리 공정에 쓰이는 극자외선 노광장비인데 멀티패터닝, 즉 웨이퍼에 회로를 새기는 작업을 줄일 수 있다. D램 생산 효율성을 높여준다.

삼성전자가 D램 양산에 활용하지 않았던 장비를 1z D램 개발부터 적용하느라 1a D램 양산도 다소 늦어졌다는 얘기가 나온다. 삼성전자 경영진들이 1a D램을 서둘러서 개발하고 양산하는 것보다 1z D램 양산에 EUV 장비를 투입해 이익률을 높이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삼성전자 입장에선 "1a D램 양산 시점에 신경쓰지 않겠다. 내실을 다지겠다" 이런 입장으로 볼 수 있다. 올해 안엔 EUV 장비를 적용한 14nm D램(1a D램)을 공개할 계획이다. 마이크론도 어차피 EUV 노광장비를 활용한 D램 공정을 언젠가는 도입해야한다. 업계에선 마이크론도 EUV 장비를 본격 도입하면 기술 개발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장기적이 레이스 관점에서 삼성전자가 '먼저 뺨을 맞은 것이다'는 얘기도 있다.

삼성전자 내부에선 좀 더 투명하게 기술경쟁을 해야한다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삼성전자가 "1z는 15nm, 1a는 14nm"라고 발표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무슨 뜻이냐면 "우리(삼성전자)가 개발 중인 1a D램은 14nm니까 너희(마이크론) 1a 나노는 선폭이 몇이냐, 공개하라"는 무언의 압박이다. 결국 마이크론의 1a D램 선폭은 14nm에 못 미칠 것이다는 자신감의 표현으로 평가된다.
낸드플래시 유일한 흑자 기업
낸드플래시도 마찬가지다. 여기에도 마이크론이 등장한다. 낸드시장 세계 5위권인 마이크론이 지난해 11월 세계 최초로 ‘176단’ 낸드플래시 반도체를 공개했다. 숫자인 176단은 데이터 저장 공간인 ‘셀’을 수직으로 176층으로 쌓았다는 의미다. 적층은 저장 용량과 효율성을 높이는 것으로 낸드플래시 기술력의 척도로 꼽힌다. 초미세공정 진전에 따라 셀 사이의 간섭현상이 발생하면서 낸드플래시 개발에선 선폭을 좁히는 것보다 차라리 높게 쌓는 경쟁이 벌어졌다.

여기에 최근 데이터 처리 규모가 커지면서 적층 단수가 높은 ‘고용량’ 낸드 수요가 늘고 있다. 단수가 높을수록 같은 면적에 고용량을 구현할 수 있다. 쉽게 말해 건설사가 건물을 고층으로 올릴수록 더 많은 사무공간을 확보할 수 있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마이크론은 “176단 제품의 면적은 기존 주력 제품인 96단 낸드플래시보다 30% 줄었고, 데이터 처리(읽기·쓰기) 속도는 35% 이상 향상됐다”고 강조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128단 제품이 주력제품이다. 삼성전자는 2013년 처음으로 24단 3D 낸드를 공개하면서 적층 기술을 도입했다. 원조 기업이 추격자에게 따라잡힌 셈이다. 삼성전자의 자존심이 구겨졌다는 평가가 나왔다.

삼성전자는 정말 경쟁에서 뒤쳐진 것일까. D램처럼 숫자만 보면 밀린 건 맞다. 하지만 여기에도 한 가지 감안해야할 게 있다. 마이크론의 176단은 두 번 쌓아올리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88층으로 한 번 쌓고 또 88층으로 한 번 또 쌓았다는 의미다. 업계에선 '더블스택'이라고 부른다. 마이크론은 96단도 두 번 쌓았다.


그런데 삼성전자는 128단까지 한 번에 쌓아올렸다. '싱글스택'이라고 불리는 기술이다. 남들이 두 번 쌓을 걸 한 번에 쌓아올리니까 비용 세이브가 됐고. 그만큼 돈을 많이 번 것이다. 삼성은 176단이 왜 마이크로보다 늦어졌을까. 176단도 한 번에 쌓아올리려고 갖은 수를 써서 시도하다가, 결국 포기하고 두 번 쌓는 걸로 바꿔서다.

아무래도 한 번에 쌓던 걸 두 번 쌓아야하니까, 공정 개발 등에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다. 삼성전자는 전략을 수정해 더블스택 방식의 176단 낸드를 연내 출시할 계획이다. 업계에선 "삼성전자의 전략 수정이 완료됐으니까 176단 이후 낸드플래시는 삼성전자가 다시 세계 최초 타이틀을 가져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마이크론은 1a D램과 관련해선 납품 업체나 개발 스케쥴 등을 공유했는데 176단과 관련해선 아직 구체적인 얘기가 없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관계자들이 마이크론 176단 낸드를 찾아보려해도 '찾을 수 없다'는 얘기도 나온다.
"파운드리 안정적 2위도 괜찮다" 평가
마지막으로 파운드리사업은 '20%의 벽'에 막혀있다. 삼성전자 점유율이 좀처럼 20%를 못 넘고 있다. 17~18% 왔다갔다한다. 그래서 혹자들은 "삼성전자 파운드리가 한계에 부딪친 것 아니냐"는 얘기를 많이 한다.

세계 1위 TSMC는 1980년대 중반부터 파운드리란 사업을 만들고 한 우물만 팠다. 삼성전자도 2000년대부터 파운드리 사업을 시작했다고는 하는데 본격적으로 사업을 추진한 건 2010년대 중반 정도다. 쉽게 말해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 2위'를 유지하고 있는 게 용하다는 의견도 있다. 게다가 세계 시장 점유율을 계산할 때 100nm 넘는 '레거시(전통) 공정' 매출도 다 포함되는데. 삼성전자가 진짜 전력투구하고 있는 건 10nm 이하 '초미세공정' 이다. 7nm 공정에서 EUV 노광장비를 가장 먼저 도입하기도 했다. 이 시장만 놓고 봤을때 TSMC는 60%, 삼성전자는 40% 정도의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의 분석이다. 삼성전자도 초미세공정에선 '양강체제'라고 말할 정도로 자신감을 갖고 있다.

매출만 놓고보면 정체된 상황도 아니다. 예를들어 2019년 점유율 17%하고 2020년 점유율 17%는 점유율 숫자는 같지만 매출은 더 늘었다. 파운드리 시장이 계속 커지고 있어서다. 2019년 15조 했던 삼성파운드리 매출이 2020년엔 17조원 안팎까지 커진 걸로 추정된다. 구체적인 숫자는 삼성전자가 공개하지 않는다.

삼성전자 파운드리에 대해 만날 나오는 얘기가 '낮은 수율'이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 5nm 공정 수율이 50% 미만이다. 예를 들어 10개를 생산하면 5개는 버려야한다. 그래서 파운드리가 이익을 못 내고 있고, 고객사에 물량을 못대기 때문에 고객사가 다 떠나간다는 루머가 반도체업계에서 돌고 있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들은 삼성전자의 초미세공정 수율이 TSMC보다 낮은 건 사실이라고 얘기한다. 하지만 "35년 동안 파운드리 한 우물만 판 TSMC와 이제 갓 걸음마를 뗀 삼성전자의 수율이 같을 수가 없다"며 삼성전자를 두둔하는 목소리도 작지 않다. 삼성전자의 수율이 낮아도 "사업을 못할 정도는 아닌 것 같다" 이런 분석도 있다. 정말 삼성전자의 수율이 참혹한 수준으로 낮으면 퀄컴, 엔비디아 같은 대형 고객사가 떨어져나갔어야한다. 아직까지 퀄컴, 엔비디아가 삼성전자 파운드리와 관계를 끊는다는 얘기는 없다. 일각에서 엔비디아가 TSMC에 물량을 맡긴다는 외신 보도에 대해 "삼성전자가 고객을 잃었다"고 하는데, 원래 퀄컴과 엔비디아는 TSMC와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에 물량을 나눠서 맡긴다.

고객사들도 전략적으로 삼성전자를 쓸 필요성이 크다. 현재 TSMC의 시장 점유율은 55% 정도인데, TSMC 시장을 70~80%까지 장악한다면 고객사 입장에서도 좋지 않다. 지금도 TSMC 눈치를 보고 주문을 받아달라고 사정하고 있는데 점유율이 더 올라가면 소위 'TSMC 판'이 될 수 있어서다. 가격 인상 등이 예상된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삼성전자에 주문을 나눠 줄 수 밖에 없다. TSMC 견제를 위한 목적이다. 삼성전자가 TSMC와 초미세공정 기술경쟁을 이어가는 동시에 꾸준히 고객사 수주 실적을 쌓으면 파운드리시장에서 2위자리는 놓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긴장하되 두려워하지 말자"
결론적으로 경쟁사들의 추격 속도가 빨라진 건 사실이다. 삼성전자도 과거처럼 안심하고 있을수 만은 없는 상황인 건 맞다. 하지만 '심각한 위기'라는 평가는 과하다는 얘기도 있다. 일단 D램 사업 경쟁력은 선폭 말고도 수율, 대규모 투자 등을 고려해야한다. 여전히 삼성전자는 '압도적인 D램 1위 업체'라는 분석이 많다. 점유율이 말해주는데 지난 1분기에도 40% 넘는 점유율을 기록했다.

낸드플래시는 '싱글스택' 176단 제품을 무리하게 추지한다가 실패한 건 맞다. 하지만 '더블스택'으로 전략을 수정했고 올해 안에 176단을 내놓을 계획이다. 적층 수준 말고 다른 경쟁력을 놓고 봤을 때 삼성전자는 '압도적'이다. 낸드플래시 시장은 2019년부터 2020년까지 가격 하락으로 최악의 시기를 보냈는데, 글로벌 낸드 시장을 주도하는 6~7개 업체 중에 유일하게 적자를 안 낸 기업이 삼성전자다.

파운드리 관련해서도 지나친 비관론은 적합하지 않은 것으로 평가된다. 삼성전자 직원들 사이에선 "어린 아이(삼성전자)한테 빨리 뛰라고 재촉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고 한다. 삼성전자 전체 반도체 매출에서 파운드리를 포함한 시스템반도체 비중은 20% 안팎 수준으로 추정된다. 반도체 전체 실적에 유의미한 영향을 줄 비중이 아닌 것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019년 얘기해 주목 받은 발언이 있다. 일본 정부의 반도체 수출 규제 때문에 도쿄 출장을 갔다가 돌아와서 반도체 임원들을 모아놓고 "긴장하되 두려워하지 말자"라고 말했다. 삼성 안팎에선 이 부회장의 발언이 지금 반도체 사업에 딱 들어맞는 상황이란 얘기가 나온다. 경쟁업체들의 추격에 긴장해야할 상황이지만, 두려워하고 주눅들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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