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작가 장 주네는 현대작가 중 가장 괴짜에 가장 전투적인 진보주의자였을 것이다. 1975년 12월 19일에서 21일까지 3회에 걸쳐 이뤄진 독일 소설가이자 인류학자 후버트 피히테와의 대담은 주목할 만하다. 대담자를 우롱하기 일쑤였던 이전과는 달리, 주네는 시종 진지한 태도로 임한다. 그는 특히 1968년 프랑스에서 시작된 ‘68혁명’에 관한 신랄한 평가절하를 담담히 진술한다.
“당시 아주 과격한 학생들 일부가 오데옹 극장을 점령했어요. 연극적인 수단이 없으면 권력은 유지되지 않죠. 중국도, 소련도, 프랑스도 그런 식인 건 마찬가집니다. 근데 세상에서 연극이 권력을 숨기지 않는 곳이 딱 한 군데 있습니다. 바로 극장이죠. 배우가 죽고, 잠시 뒤 일어나서 인사하고, 다음날 또 죽고. 또 인사하고. 1968년 5월에 학생들은 극장을 점령했어요. 법원을 점령하지 않았어요.”
요는, 68혁명은 ‘연극’에 불과했다, 그래서 기존 체제를 뒤엎지 못했다는 얘기. 파리 서부 낭테르대학 여자기숙사가 남학생 출입을 금하는 것에 항의하는 시위가 68혁명의 도화선이었다. “남녀가 놀아나는 것을 막으면 혁명이 터진다”는 우스갯소리는 68혁명에 대한 내 ‘18번’이기도 하다. 나는 혁명을 믿는 편이 아니지만, 혁명가의 삶은 면밀히 평가한다. 주네는 속물 사르트르와는 종 자체가 달랐다. 저런 말을 할 자격이 있다.
백인 주네는 자신을 흑인으로 여겼고 유명한 문인인 것 말고는 운명적으로나 자발적으로나 밑바닥 인생을 살았다. 생후 7개월 만에 유기된 사생아이자 도둑이자 탈영병이자 부랑자이자 거지이자 동성애자 등이었던 그는 어떤 단체에도 소속하지 않았다. 돈과 명예를 얻은 뒤에도 집 없이 짐가방 하나에 여관살이를 전전했다. 그의 여권에는 세바스티앙 보탱가 5번지, 출판사 갈리마르의 주소가 적혀 있었다. 그는 세상의 제도와 도덕 기준에서는 사악했다. 그러나 가짜예술가는 아니었고, 인간과 세상을 꿰뚫어봤다. 사르트르가 한 말들 중에 헛소리가 아닌 드문 경우가 바로 ‘세인트(聖) 주네’인 것은 그 때문이다.
주네는 법원을 점령하지 않았다고 해서 68혁명을 한심해했던 게 아니다. 그는 실패한 혁명이 아니라 가짜혁명, 즉 혁명의 가면을 쓴 연극을 문제 삼은 것이다. 그런데 연극이 정말로 입법 사법 행정을 다 점령해버린 나라에 지금 우리가 살고 있다면 어쩔 것인가.
68혁명과 586의 가장 큰 공통점은 그것이 문화적인 코드라는 점이다. 네이밍하는 자가 권력자라는 말이 있는데, ‘추억’을 장악하는 자도 권력자인 것이다. 586집권자들보다 더 위험하고 고질적인 바탕이 ‘586대중’인 까닭이다. 위선은 욕망 때문에 그런 것만큼 ‘틀린 앎’에서도 나온다. 천동설을 믿는 것은 인간 감각으로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 ‘당연한 거짓’을 넘어 진실과 사실을 보게 만드는 것은 지성이니 양심이니 하는 모호한 말들이 아니다. 지식이다.
한 나라의 머리인 세대가 천동설에 감염돼 있을 때 세상은 ‘착한 지옥’이 된다. 이 천동설을 해체하는 새로운 세대가 등장하고 있다. 그들은 ‘천동설지식인’들을 비웃는다. 이것이 시간의 힘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시간에만 맡겨둘 수는 없다. 1986년 4월 14일 밤에서 15일 새벽 사이, 파리의 허름한 호텔방에서 주네는 홀로 죽었다. 그는 이 대담에 진실이 있느냐는 피히테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한다. “진실은 혼자 있을 때만 가능해요.”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많은 사회에는 오히려 위선이 창궐하기 힘들 것이다. 나는 자신의 ‘가짜’를 괴로워하는 내 형들이 자랑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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