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조미료 광고가 자취를 감췄다. MSG(글루탐산나트륨) 유해성 논란도 일조했지만 근본 원인은 집에서 직접 요리를 하지 않아 조미료 수요가 줄어서다. 고추장과 간장 등 요리 필수품인 장류 광고도 함께 사라졌다. 그 자리를 대표 배달음식인 치킨이 대신하고 있다. 저녁시간 TV를 틀면 광고의 절반이 치킨 광고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식품 광고의 변화는 전통적 개념의 집밥이 일반 가정의 식탁에서 얼마나 멀어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소비자가 더 이상 집에서 밥을 해먹지 않는 시대가 오자 전통 식품 제조기업들은 위기감 속에 식문화 기업으로의 변신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1953년 국내 최초로 설탕을 생산한 CJ제일제당은 이미 자신들을 식품 제조기업이 아니라 생활문화기업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식품은 영화, 음악, 만화처럼 문화산업의 한 종류이자 하나의 콘텐츠라는 게 CJ제일제당의 설명이다. 회사 관계자는 “CJ제일제당은 더 이상 특정 식재료를 생산하는 제조기업이 아니라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는 식문화기업”이라고 말했다.
농심은 이달 초 신동원 회장 취임과 함께 30여년 넘게 써오던 ‘믿을 수 있는 식품, 농심’이라는 슬로건을 ‘인생을 맛있게, 농심’이라고 바꿨다. 회사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슬로건에서 ‘식품’을 뺀 것이다. 신 회장은 “고객에게 즐거움을 드릴 수 있는 제품들로 라면의 가치를 레벨업하는 것이 지상과제”라고 밝혔다. 식품 제조사를 넘어 식문화 기업으로 변신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식품업체들의 마케팅 방식도 고리타분한 ‘제조사 마인드’에서 벗어나고 있다. 과거에는 “좋은 제품을 만들었으니 알아달라”는 식이었다면 지금은 소비자의 삶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는 콘텐츠를 넌지시 던진다. 롯데푸드가 래퍼 마미손과 함께 찍은 돼지바 광고가 대표적인 예다. 이 영상은 광고보다 뮤직비디오에 가깝다. 마미손이 돼지바를 주제로 만든 노래를 부르는 2분짜리 광고 영상은 300만 회가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다. 돼지바 홍보 효과는 당연히 뒤따랐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BTS가 떡볶이를 먹는 사진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퍼지자 해외 팬들 사이에선 떡볶이를 먹고 ‘인증샷’을 남기는 새로운 문화가 형성됐다”며 “맛있는 떡볶이를 만드는 것보다 BTS에게 떡볶이를 먹일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게 더 중요해진 시대”라고 말했다.
MZ세대는 소비 취향도 확고하다. 과거에는 유행하는 소비를 쫓아가는 식이었다면 지금은 남들과 다른 자신의 취향을 명확히 내세우고 소비한다. 최근 식품업계에 ‘민초단(민트초코 맛을 좋아하는 사람들)’ 열풍이 분 것도 MZ세대의 확고한 소비 취향에서 비롯된 현상이다. 식품업체들은 소수지만 민트초코맛을 원하는 MZ세대 소비자를 위해 민트초코 초코파이부터 민트초코 소주까지 선보였다. CJ제일제당이 트렌드&인사이트팀을 꾸리고 SPC가 트렌드 분석 계열사를 별도로 만든 것도 MZ세대의 소비취향 연구를 위해서다.
또 MZ세대는 ‘요리 선생님’으로 엄마가 아니라 유튜브를 모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대 응답자의 56.0%는 요리를 할 때 유튜브를 통해 정보를 얻는다고 답했다. 부모님이나 가족에게 직접 배운다는 응답은 14.0%에 그쳤다.
한 식품업체 마케팅 담당 임원은 “MZ세대는 무리를 이끄는 ‘퍼스트 펭귄’”이라며 “유통산업 발전으로 소비 주도권까지 상당 부분 MZ세대로 넘어간 상황에서 이들을 잡지 못하면 필패(必敗)한다”고 강조했다.
박종관 기자 pj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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