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독립 지지' 미국 외교관의 태극기, 보물 지정됐다

입력 2021-08-12 15:06   수정 2021-08-12 15:08



태극기는 어떻게 태어났을까. 1882년 9월 박영효가 일본으로 가는 배 안에서 국기가 없음을 한탄하며 제작했다는 설이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학계에서는 태극기가 1882년 5월 미국과의 수교 과정에서 만들어졌다는 설이 우세하다. 당시까지만 해도 조선에는 국기라는 개념이 없었다. 그러다 이 해 5월 조미통상수호조약을 맺으면서 국기를 만들 필요성이 생겼고, 이에 따라 조정 논의를 거쳐 태극기의 도안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를 방증하는 자료와 태극기 도안 등이 미국 국회도서관에 보관돼 있다고 한다.

한국에 남아있는 태극기 중 가장 오래된 건 '데니 태극기'다. 데니태극기는 고종이 1890년 무렵 자신의 외교고문이었던 미국인 오웬 니커슨 데니(1838~1900)에게 하사한 깃발이다. 데니는 1886년 청나라 이홍장의 추천을 받아 외교 고문이 됐지만 청나라의 부당한 간섭을 비판하며 조선이 주권을 가진 독립국임을 주장했다. 이로 인해 청의 미움을 산 그는 1891년 조선을 떠나야 했다. 1981년 데니의 후손은 한국에 이 태극기를 기증했고,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데니 태극기를 비롯해 일제강점기 무렵 독립에 대한 열망과 한국인의 정체성을 지켜내려는 간절한 염원을 담은 태극기 세 점이 보물로 지정예고됐다. 문화재청이 광복절을 사흘 앞둔 12일 개최한 동산문화재분과위원회를 통해서다. 이와 별도로 이날 문화재청은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성립 전례식 서명문 및 축하문', '한국광복군 기관지 광복' 등 4건을 문화재로 등록 예고했다.
독립 열망 담은 태극기 3점, 보물로
데니 태극기는 세로 182.5cm, 가로 262cm의 대형 태극기다. 현재 국내에 있는 옛 태극기 중 규모가 가장 크다. 제작 연도는 1882년에서 1890년 사이로 추정된다. 조선이 국가를 상징하는 국기를 처음 만들어 사용한 시기는 1882년 9월이었고 1883년 3월 6일 고종은 전국에 사용토록 공식적으로 선포했다. 이후 태극기의 모습을 그리거나 기록한 자료들은 일부 남아 있지만 실물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데니 태극기’는 우리나라 국기 변천사를 연구하는데 매우 귀중한 자료라는 게 문화재청의 설명이다.



이날 함께 보물로 지정예고된 '김구 서명문 태극기'는 1941년 3월 16일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위원회 김구 주석이 독립의지를 담은 글귀를 적어 친분이 있던 벨기에 신부 샤를 메우스에게 준 것이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간 메우스 신부는 도산 안창호 선생의 부인 이혜련 여사에게 이 태극기를 전했고, 후손들이 보관하다가 ‘안창호 유품’ 중 하나로 1985년 3월 11일 독립기념관에 기증됐다.

이 태극기에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의 활동과 광복에 대한 염원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서명문에거 김구는 광복군을 도와달라고 메우스 신부에게 강하게 호소했다. "당신은 우리의 강복 운동을 성심으로 돕는 터이니 이번 행차의 어느 곳에서나 우리 한인을 만나는 대로 이 의구(義句, 올바른 글)의 말을 전하여 주시오. 지국(止國, 망국)의 설움을 면하려거든, 자유와 행복을 누리려거든, 정력?인력?물력을 광복군에게 바쳐 강노말세(强弩末勢, 힘을 가진 세상의 나쁜 무리)인 원수 일본을 타도하고 조국의 독립을 완성하자. 1941년 3월 16일 충칭에서 김구 드림"



서울 진관사 태극기는 2009년 5월 26일 서울시 은평구 진관사의 부속건물인 칠성각을 해체 및 복원하는 과정에서 발견됐다. 태극기를 보자기처럼 이용해 싼 독립신문류 19점이 함께 발견된 게 특징이다. 학계에서는 태극기를 숨긴 인물이 진관사 승려였던 백초월(白初月)이나 그와 밀접한 관련을 맺은 승려라고 추정하고 있다. 백초월은 3·1운동 직후 비밀 지하신문인 혁신공보??를 발간해 독립의식을 고취시켰고, 불교계의 자금을 모아 임시정부와 만주지역의 독립군 부대에 제공하는 등 국내 불교계의 독립운동을 실질적으로 총괄한 인물이다.

진관사 태극기의 가장 큰 특징은 일장기 위에 태극과 4괘의 형상을 먹으로 덧칠해 항일 의지를 극대화했다는 점이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왼쪽 윗부분 끝자락이 불에 타 손상되었고 여러 곳에 구멍이 뚫린 흔적이 있어 만세운동 당시 혹은 그 이후 현장에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며 "이번에 보물로 지정예고된 3건은 30일의 예고 기간 동안 각계의 의견을 수렴 및 검토한 뒤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보물로 지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광복군 관련 유물 4건은 문화재로
이날 함께 문화재로 등록 예고된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성립 전례식 서명문 및 축하문'은 1940년 9월 17일 중국 충칭의 가릉빈관에서 임시정부 주석이자 광복군창설위원회 위원장인 김구의 주관 아래 거행된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성립 전례식 관련 유물이다. 서명문은 전례식에 참석한 중국 측 인사와 서방 외교사절, 신문사 대표들이 서명한 유일의 원본 방명록으로, 충칭 시기 대한민국임시정부와 한국광복군의 독립운동, 외교 활동, 언론 창구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다.

'한국광복군 기관지 광복(光復)'은 한국인과 중국인을 대상으로 한국광복군의 대일항전을 선전하여 항일 독립사상을 널리 전파하기 위해 1941년부터 1942년까지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정훈처에서 발행한 기관지다. '한국광복군 훈련교재 정훈대강'은 1945년 5월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정훈처에서 발행한 소책자 형태의 훈련교재고, '김좌진 장군 사회장 약력서'는 1930년 1월 만주에서 순국한 독립운동가 김좌진 장군의 사회장(1930년 3월)에서 낭독된 약력서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이번 태극기 보물 지정 예고를 계기로 역사?학술적 중요성이 널리 인정된 국가등록문화재 등의 가치를 적극적으로 재평가하여 이를 국보?보물 지정 대상에 포함시켜 국가지정문화재 지정 제도에 대한 국민적인 공감대를 형성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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