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열동 아니라 포기한 아파트가 지금 15억"…40대 가장의 후회

입력 2021-08-30 10:00   수정 2021-08-31 19:02

"분양가가 얼마 나올지만 신경썼지. 아예 분양이 안될 줄은 몰랐습니다." 경기도 용인시에 18년째 살고 있는 정모씨(50)는 동네를 오갈 때 마다 분통이 터진다. 몇년 전부터 점 찍어둔 아파트가 '분양'에서 '임대'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청약통장의 점수도 충분하고 자금도 가능했기에 그동안은 분양가가 어떻게 나올지만 관심이 있었다.

안양에 10년째 거주중인 김모씨(47)는 호계사거리를 지나지 않고 돌아서 출퇴근을 한다. 근처에 짓고 있는 아파트만 보면 속이 터져서다. 그는 2018년 '평촌어바인퍼스트'에 당첨됐다가 동호수가 마음에 안들어서 계약하지 않았고, 맞은편에 재개발되는 덕현지구 분양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 단지가 후분양으로 전환돼 2022년 말이나 공급될 것으로 알려지면서 김 씨는 아내의 핀잔을 고스란히 들어야했다.

그는 "당첨됐을 당시 아내가 애들이 있으니 저층이 더 낫지 않을까 했지만, 로열동호수가 아니어서 포기했던 게 후회된다"며 "새 전셋집을 알아보는데 너무 시세가 올랐고, 포기했던 아파트는 전용 84㎡ 호가가 15억원가량 된다고 하니 솔직히 쳐다보기 싫고 근처에 지나가고 싶지도 않다"고 푸념했다.
분양 연기에 후분양·임대아파트로 전환
청약가점이 높고 자금여력 있는 4050세대들이 수도권 청약시장에서 절망하고 있다. 오랫동안 기대했던 공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서다. 집값이 급등하고 있는 반면, 분양가는 제한을 받으면서 공급이 미뤄지고 있다. 시행사나 조합 등 민간이 공급하는 아파트들은 지방자치단체나 HUG(주택도시보증공사) 등과 분양가를 놓고 씨름하다 임대아파트로 전환하거나 아예 후분양으로 돌리는 경우가 늘고 있다.

정부가 내놓은 대책들도 청년이나 신혼부부 중심이다보니 4050들은 상대적으로 소외되고 있다. 4050세대들은 자녀들이 학교에 재학중이다보니 멀지 않은 곳에 내 집 마련을 하려는 성향이 강하다. 때문에 1~2건의 공급만 틀어져도 막막한 경우들이 많다. 분양권 전매마저 막힌 상태다보니 새 아파트를 잡을 기회가 '분양'만 남아 있다보니 생긴 일이다.

서울에서는 '둔촌 올림픽파크 에비뉴포레'(1만2032가구)로 재건축중인 둔촌주공 일대가 대표적이다. 둔촌동의 A공인중개사는 "분양 받으려고 버뎠다가 떠난 분들이 한둘이 아니다"라며 "과거에는 분양가 걱정에 떠났다면, 이제는 당첨가점 때문"이라고 말했다. 분양가가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자금여력이 있는 무주택 수요자들이 남았지만, 이 마저도 최근 래미안 원베일리 당첨가점 보고 포기를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래미안 원베일리에서는 청약 만점자(84점)가 나왔고, 당첨자 평균 청약가점은 72.9점으로 4인 가족은 당첨권에 들지도 못했다.


앞서 정씨가 눈여겨봤던 아파트는 롯데건설 기흥구 보정동 일원(옛 롯데마트 수지점 부지)에 짓는 '수지구청역 롯데캐슬 하이브 엘'이다. 전용 84㎡로만 구성된 715가구다. 10년 동안 거주가 가능한 장기일반민간임대주택 상품으로 공급된다. 분양 아파트였던 이 단지는 분양가 문제로 임대주택으로 변경된 것으로 알려졌다.

임대로 바뀌었다고는 하나, 가격대가 낮아진 건 아니다. 임차인 모집 공고에 따르면 전용 84㎡A형의 30층 이상의 경우 임대보증금이 8억9500만원이고, 월 임대료는 100만원이다. 1층부터 지상 36층의 이 아파트는 보증금이 8억5000만~8억9000만원대로 분포됐다. 9억원은 넘지 않으면서 월임대보증금은 100만원으로 일원화했다. 월세 100만원을 10년간 내야하는 셈이니 부담일 수 밖에 없다. 거주중인 임차인의 우선분양전환 권리도 없다.
집값 상승 덕분에…"분양 미룰수록 이익"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단지 바로 옆에 있는 보정동 죽전역 샬레파인비스타(155가구)는 이달들어 전용 84㎡가 8억4500만원에 매매됐다. 수지구 풍덕천동 진산마을 래미안은 전용 84㎡의 최근 매매가격이 9억9500만원, 10억원을 기록했다. 시세와 비슷한 수준이지만, 분양가를 보면 차이가 크다. 이전에 일대에서 분양된 아파트는 신봉동 '힐스테이트 광교산'(789가구)으로 전용 84㎡의 분양가가 5억9620만원이었다.

용인에서는 옛 서울우유 부지인 기흥구 마북동 일대에서도 아파트가 공급될 예정이다. DL이앤씨가 'e편한세상 구성(가칭)'(999가구)인데, 분양이 연초부터 미뤄지면서 후분양 얘기가 나오고 있다. 일대의 공인중개사는 "주변이 수도권광역철도(GTX)-A노선이 지나는 걸 비롯해 용인 플랫폼시티 개발이 추진되고 있어 집값이 오르는 지역"이라며 "얼마에 분양가가 나올지 모르겠지만, 미뤄지다가 후분양이 될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 밖에 수원 세류동의 권선6구역도 단골로 연기되는 지역 중 하나다. 수원 집값이 급등하는데다 아파트 공급이 시내권에 드물다보니 예비 청약자들의 속만 타들어가고 있다.

한 시행사 관계자는 "예전에는 사업비, 이자비용 등을 감당하기 어려워 분양을 미룰 수 없었지만, 이제는 집값이 하도 오르다보니 늦게 분양할수록 가격을 더 받을 수 있게 됐다"며 "자금여력이 있는 조합이나 시행사들은 사업을 미루거나 후분양으로 돌아서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제 때 분양하더라도 제대로 가격(분양가)을 못받는다고 보고 확장비나 옵션으로 비용을 녹이고 있다"며 "무주택자들이 높은 가격에 집을 사야하는 상황인건 일반 매매나 분양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라고 귀띔했다.

안양의 김모씨는 "정부에서 청년이나 신혼부부에게 혜택을 늘린다고 하는데, 우리처럼 아이들 키우면서 세금 따박따박 내는 40대들에게도 기회를 줘야할 것 아니냐"며 "큰 애가 4년 뒤면 대학갈 나이인데, 이러다가 청년주택청약으로 얹혀사는 게 빠를지도 모르겠다"고 헛웃음을 지었다.

한편 주택청약제도와 관련 당·정은 청년 주택청약 특별공급 제도 개선을 검토하고 있다. 1인가구, 무자녀 신혼부부, 맞벌이 신혼부부 등이 생애 최초 특별공급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하는 대책이다. 국토교통부는 청년을 위한 청약 특공 제도를 개선할 예정이다.

용인=김하나 한경닷컴 기자 han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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