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5월 27일. 이광범 남양유업 대표를 비롯한 남양유업 경영진은 충격에 휩싸였다. 회사가 팔린다는 사실을 뉴스를 보고서야 알았기 때문이다. ‘불가리스 사태’로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사진)이 사퇴를 발표한 지 불과 3주 만이었다. 시장에선 실사도 없이 허겁지겁 헐값에 팔렸다는 얘기가 나왔다. 홍 회장의 두 아들도 아버지를 찾아가 “회사를 왜 이렇게 싼 가격에 넘겼느냐”고 항의했다고 한다. 홍 회장은 그제서야 매각협상에 의심을 품기 시작했다. 파국의 씨앗이 잉태된 시점이다.

남양유업의 매각협상이 1일 결국 결렬됐다. 최종 계약을 앞두고 불거져나온 ‘파기설’이 현실화되면서 홍 회장 측과 매수인 측 한앤컴퍼니(한앤코)는 법정에서 계약 이행 여부를 다투게 됐다. 홍 회장은 이날 법률 대리인인 LKB앤파트너스를 통해 주식 매매계약을 맺은 한앤코 측에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계약 해지 이유로 매수자의 경영간섭, 비밀유지의무 위반, 신뢰 훼손 책임 등을 꼽았다. 홍 회장은 “당사자 간 합의가 끝난 이슈임에도 매수인(한앤코) 측이 계약서에 명시돼 있지 않은 것들은 인정할 수 없다면서 돌연 태도를 바꿨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매매계약 체결 후 일각에서 나온 얘기와 달리 계약 당시 합의되지 않은 어떤 추가 요구도 하지 않았다”며 “매수인 측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계약 이행만을 강행하기 위해 비밀유지의무 사항도 위배했다”고 주장했다.
한앤코는 “계약은 유효하다”고 즉각 반박했다. 한앤코는 이날 “홍 회장 측이 주장하는 내용은 전혀 사실무근”이라며 “본계약 발표 후 홍 회장 측에서 가격 재협상 등 수용하기 곤란한 사항들을 ‘부탁’이라며 전해왔을 뿐”이라고 밝혔다.
남양유업 매각을 둘러싼 양측의 입장차가 커 대규모 소송전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한앤코는 지난달 23일 홍 회장 측에 주식 매매계약 이행을 촉구하는 소송을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냈다. 서울중앙지법은 한앤코 측의 남양유업 주식처분 금지 가처분 소송도 받아들였다. 홍 회장이 이날 입장문에서 “재매각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법원의 결정으로 당분간 오너 일가 지분 53.08%를 매각할 방법이 차단됐다.
M&A업계에선 홍 회장이 그동안 독단적으로 회사 경영을 해온 점, 이번 계약 전후 상반된 입장을 보인 점, 법원이 주식 재매각 금지처분을 인용한 점 등을 들어 “M&A업계 생리를 모른 채 다소 순진한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고 있다. 한 법무법인 관계자는 “위약금을 물고 계약을 파기할 수 있는 일반 부동산 계약과 달리 M&A 계약은 계약 이행의 상세 조건과 계약 파기 시 손해배상 등에 관한 내용을 아주 상세하게 적는다”며 “홍 회장이 너무 싸게 팔았다는 주변 얘기만 듣고 무리수를 두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전격적인 매각 결정과 취소를 오가는 사이 남양유업은 골병이 들고 있다. 지난 5월 불가리스 코로나19 마케팅 사태 이후 남양유업 경영권 매각 난항이 3개월 넘게 이어지면서 기업 이미지는 곤두박질치고 있다. 소비자들 사이에선 홍 회장의 계약 해지 주장에 “또 남양이 남양했다”며 불매운동에 나서야 한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매각 발표 후 장중 81만원대까지 치솟았던 남양유업 주가는 이날 54만원대로 급락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기업은 사내 구성원과 주주 등이 함께 꾸려가는 조직”이라며 “남양유업은 견제 없는 오너의 독주가 어떻게 기업을 위기에 빠트리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지적했다.
박종관/민지혜/전설리 기자 pj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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