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어학자이자 사전 편찬자였던 존 민슈는 영어 사용자를 위한 스페인어 사전과 문법서 두 권을 출판하려 했지만 필요한 자금을 모을 수 없었다. 민슈는 출판 예정인 다국적 사전의 정기 구독자를 모집하는 방식으로 자금을 모았다. 총 417명의 구독자를 확보해 1618년 11가지 언어로 된 사전 《언어에 대한 안내서 Ductor in Linguas》를 발간할 수 있었다. 서적 외에 런던에서는 구독 극장, 구독 강의도 존재했다. 현대의 개념으로는 크라우드 펀딩에 가까웠지만, 정기적으로 대가를 지급하고 서비스를 받는다는 점에서 최초의 구독 서비스라고 할 수 있었다.
이는 구독 모델에서 고객이 가치를 소비하는 주체지만 생산하는 주체라는 점으로 표현된다. 기능적인 측면에서는 여전히 기업이 가치를 창출하는 주체지만, 상품 측면으로 초점을 돌리면 고객과 기업은 가치를 함께 만들어낸다. 넷플릭스의 개별 맞춤형 추천 모델이 대표적이다. 전통적인 영화관은 작품 하나를 통해 수익을 확보해야 하다 보니 가장 대중적인 콘텐츠를 제작해서 가급적 많은 사람에게 어필해야 했다. 하지만 넷플릭스는 반대다. 어떤 콘텐츠가 한 번에 많은 돈을 벌 수 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세분화된 사용자를 공략할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이를 통해 더 많은 소비자를 넷플릭스 서비스에 끌어들일 수 있다. 소비자들은 영화를 선택하는 행위를 통해 자신의 취향을 넷플릭스에 알려준다. 넷플릭스의 인공지능(AI)은 해당 데이터를 토대로 개별 회원들의 선호에 맞는 영화를 추천해준다. AI 알고리즘은 이를 반복하면서 매칭률을 개선해 소비자의 선택을 계속해서 받게 된다. 이러한 데이터의 축적은 매칭을 넘어 ‘넷플릭스 오리지널’이라는 콘텐츠 생산으로까지 이어진다. <하우스 오브 카드>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 <나르코스> 등 많은 인기 프로그램이 소비자의 취향을 반영해 만들어졌다. 소비자가 가치 창조 활동에 참여하는 동시에 가치 창조 활동의 실질적인 주체가 되는 것이다. 구독경제를 C2B(소비자 대 기업 간 거래) 모델로 정의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즉, C2B는 전통적인 B2C(기업 대 소비자 간 거래), C2C(소비자 대 소비자 간 거래)와는 달리 고객이 주도하는 비즈니스 모델로, 소비자가 가치 창조의 핵심 위치에 놓이면서 전통산업 시대의 B2C 모델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킨 것이다.
전통경제에서 기업은 상품의 소유권을 고객에게 양도함으로써 수익을 올렸지만, 구독 모델에서는 사용권만을 고객에게 양도하는 방식으로 수익을 올린다. 하지만 유독 구독 모델이 디지털 시대와 함께 다양한 분야로 확산되는 원인에는 데이터와 알고리즘이 있다. 소유권 판매와 달리 저렴한 사용권 임대를 통해 실시간으로 대규모 사용자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고, 알고리즘을 이용해 지속적으로 의사결정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이는 구독자와의 지속적인 관계 유지로 이어진다. 지속성은 곧 선순환으로 이어지고, 구독 모델에서는 더 많은 수익을 위해 가격을 올릴 필요도 없다. 기존 고객을 유지하고, 새로운 고객을 유치하기 위한 서비스 개선에만 신경 쓰면 충분하다. 갱신율이 높아질수록 고객이 느끼는 만족은 높아지지만, 고객 유지에 들어가는 비용은 시간이 지날수록 급격히 낮아지기 때문이다. 오늘날 음악, 영화, 심지어 이동 분야에서도 구독 모델이 등장한 이유다. 모든 비즈니스 모델은 시대 발전의 산물이다. 디지털 시대의 경쟁을 위해 구독 모델에 대한 면밀한 분석이 필요한 시점이다.관련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