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진 미래" 탄소중립에 늦은 한국, 추월 가능할까 [한경우의 케이스스터디]

입력 2021-09-12 06:52   수정 2021-09-12 16:08


지난주 ‘수소’라는 단어에 한국 산업계가 들썩였습니다. 현대차·SK·포스코·롯데·한화·GS·현대중공업·두산 그룹을 비롯한 내로라하는 국내 기업집단 15곳이 모여 8일 수소기업협의체 ‘코리아 H2(수소) 비즈니스 서밋’을 구성하면서죠.

한국의 ‘수소 경제 전환’에 불을 당긴 현대차그룹이 6일(현지시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IAA 모빌리티(옛 프랑크푸르트 모터쇼)’ 박람회에서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현대차 비전’을, 7일(한국시간) 일산 킨텍스에서 ‘하이드로젠 웨이브’ 행사를 개최해 수소 전략을 각각 발표한 것도 분위기를 달궜습니다.

수소는 화학반응을 통해 전기를 생산할 때 물(H2O)만 배출하는 친환경 에너지원이라는 이유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전기 생산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화력발전 과정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CO2)가 지구 온난화를 유발하거든요.

기후변화나 위기 같은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자는 ‘기후변화에 의한 기본 협약’을 만들자고 제안된 게 1990년 12월 개최된 제45차 유엔총회였으니 30년이 넘었습니다. 이후 태양광, 풍력, 수력 등 재생에너지 산업이 각광을 받았고, 관련 산업도 성장해왔죠. 실제 재생에너지의 발전단가가 석탄화력발전보다 저렴해지는 ‘그리드 패리티’에 도달한 지역도 늘고 있습니다.

재생에너지는 날씨에 발전 효율이 좌우된다는 약점을 안고 있습니다. 단순히 가정집에서 쓰는 전력을 충당하기 위해서라면 에너지저장장치(ESS)를 활용해 해결할 수 있겠지만, 대규모 전력이 24시간 동안 공급돼야 하는 산업현장에서는 불안할 수 밖에 없죠. 혹시라도 전력 공급이 끊어지면 천문학적인 손실로 이어지거든요. 올해 초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 지역에서 한파로 인한 정전 사태가 발생해 이 지역의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이 셧다운되면서 수천억원의 손실이 발생했던 게 기억날 겁니다.

문제는 재생에너지의 발전효율이 날씨 변동에 따른 불안정성을 상쇄할 만큼 향상되기까지 기다릴 시간이 없다는 겁니다. 지구 온난화의 진행 속도가 기존 예상보다 빨라지고 있거든요.

유엔 산하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지난달 9일 발표한 6차 보고서에 따르면
지구의 기온이 산업화 전보다 1.5도 상승하는 시점으로 2021~2040년이 제시됐습니다. 3년전에 발표된 5차 보고서에서는 2030~2052년이 제시됐는데, 10년 가량 앞당겨진 겁니다. 과학자들이 지구에서 인류가 생존할 수 있는 마지노선으로 제시하는 기온 상승폭이 1.5도입니다.

이번 보고서에서는 인류의 탄소 감축 정도에 따른 5개의 시나리오를 제시했습니다. 가장 낙관적인 시나리오조차 인류가 2050년까지 탄소배출을 제로로 만드는 ‘탄소중립’을 달성하더라도 21세기 말인 2081~2100년에는 지구의 기온이 산업화 전보다 1~1.8도 오르게 된다는 겁니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기온이 4도 상승하는 걸로 나타났습니다. 이미 기후변화로 인해 홍수, 산불, 한파 등 심각한 자연재해가 발생했다는 뉴스를 접하는 게 낯설지 않습니다.


세계 각국 정부는 탄소 배출 감축을 공격적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유럽연합(EU)가 가장 적극적입니다. 2030년까지 평균 탄소 배출량을 1990년 대비 55% 수준까지 줄인다는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입법 패키지인 ‘핏포55(Fit for 55)’를 올해 7월 발표했죠. 여기에는 역내로 수입되는 제품이 생산되는 과정에서 탄소가 배출됐다면 이에 대해 세금을 매기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가 담겨 있습니다. 미국의 조 바이든 행정부도 탄소중립을 강하게 추진하고 있고요.

한국에서도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이행하기 위해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35% 이상 감축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세계 각국이 탄소 중립을 앞당기기 위해 나서면서 이전까지는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던 수소가 친환경 에너지 산업의 아이콘으로 부상하게 됐습니다. 이용하기 위한 비용이 비싸기는 해도 재생에너지의 불안정성을 보완해줄 수 있거든요.

당연히 증시도 반응했죠.

현대차 넥쏘에 들어갈 수소탱크를 공급하는 일진하이솔루스는 지난 1일 상장하면서 ‘따상’을 기록했고, 한동안 조정을 받은 뒤 바닥을 다지는 모습입니다. 내리막을 타긴 했어도 지난 10일 종가는 7만8900원으로, 여전히 공모가 3만4300원보다는 130.03% 높은 수준입니다.

수소탱크는 극저온과 고압을 견뎌야 하기 때문에 탄소섬유를 소재로 사용한다고 해요. 이에 탄소섬유 기술을 보유한 효성첨단소재와 코오롱플라스틱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사태 전인 2019년 종가와 비교해 각각 511.71%와 180.13% 급등했습니다.

같은 기간 재생에너지 분야에서는 태양광 모듈 기업인 한화큐셀의 모회사 한화솔루션(130.41%), 풍력발전기 타워 제작업체 씨에스윈드(317.61%), 풍력터빈업체 유니슨(253.23%) 등의 상승세가 돋보입니다.

아직도 증권가에서는 친환경 에너지 섹터가 더 오를 것이란 외침이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인구학자인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가 쓴 베스트셀러의 제목을 인용한 “‘정해진 미래’에 투자하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죠.
수소, 아직까진 완벽한 친환경 에너지는 아냐
서론이 장황했습니다. 이제 차세대 에너지원들에 대해 알아보죠.

요즘 가장 뜨거운 수소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수소는 산소와 결합해 물로 변하는 화학반응 과정에서 전기를 생산합니다. 이 화학반응을 일으키는 장비를 연료전지라고 하죠. 현재 수소차라고 불리는 현대차의 넥소나 도요타의 미라이는 차 안에 연료전지를 장착해 수소로 전기를 생산한 뒤 이 전기로 모터를 돌리는 방식으로 구동됩니다. ‘수소연료전지차’가 우리가 수소차로 알고 있는 자동차의 정확한 명칭입니다.


아직까지는 수소를 완벽한 친환경 에너지원이라고 부르기 어렵습니다. 인간이 만들어내는 수소의 상당한 비중이 화석연료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얻는 ‘부생수소’이기 때문이죠. 부생수소 생산 과정에서는 탄소가 배출됩니다. 이에 부정적 의미를 담아 ‘그레이 수소’라고 부릅니다.

탄소가 대기 중으로 퍼지기 전에 모아서 저장하는 ‘탄소 포집·저장(CCS·Carbon Capture and Storage) 기술’을 활용해 생산된 부생수소는 조금이나마 긍정적 의미가 담긴 ‘블루 수소’라는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인류가 궁극적으로 사용해야 할 수소는 물을 전기분해하는 수전해 기술을 활용해 생산하는 ‘그린 수소’입니다. 지구 표면의 70%를 덮고 있는 물을 원료로 사용하고, 이렇게 생산된 수소로 전기를 생산하면 다시 물이 배출되죠. 무한에 가깝게 사용할 수 있는 겁니다. 다만 아직까지 수전해 기술은 상용화 단계까지 나아가지는 못했습니다.

여기서 잠깐, 전력 발전을 위한 수소를 생산하기 위해 전기를 써야 하는 게 무슨 소리냐는 분도 있을 겁니다. 실제 30년 넘는 친환경 에너지의 역사 속에서 수소가 비교적 뒤늦게 각광받게 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진짜 역할은 재생에너지의 저장·운송 수단
인류가 탄소중립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수소의 역할은 ‘에너지의 저장과 운송’입니다. 수소라는 그릇에 저장되는 에너지가 태양광발전, 풍력발전 등을 통해 생산된 재생에너지이고요. 일단 태양광발전과 풍력발전이 뭔지부터 짚고 넘어가죠.

태양광발전은 특정 물질에 일정한 파장 이상의 빛을 비추면 표면에 전자가 발생하는 광전효과를 활용해 전기를 생산하는 방식입니다. 현재 태양 전지의 원료로는 무기화합물인 폴리실리콘이 사용되고 있는데, 이를 사용해 만든 태양전지의 발전효율이 최대 32% 수준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차세대 태양전지 소재로 페브로스카이트라는 물질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지만, 아직 상용화 단계에 이르지는 못했습니다.


풍력발전은 바람의 힘으로 터빈을 돌려 전기를 생산합니다. 물을 끓여 수증기로 터빈을 돌리는 화력발전의 열 에너지 대신 바람의 힘을 사용한다고 보면 됩니다.

재생에너지 발전량은 날씨에 크게 좌우됩니다. 날씨가 좋을 때는 전기가 너무 많이 생산돼 버려야 하고, 날씨가 흐리거나 바람이 불지 않으면 부족해질 수 있습니다. 날씨가 좋아 재생에너지가 많이 생산될 때 남는 전기로 물을 분해해 수소를 생산하면 저장과 운송에 유리하다는 게 최근 수소를 탄소중립 분야에서 각광받게 한 아이디어입니다.

배터리에 저장하면 되지 않느냐는 의견이 있을 수 있지만, 산업현장에까지 안정적으로 공급할 전기를 저장하기 위해서는 배터리가 엄청나게 커야 할 겁니다. 배터리는 용량이 커질수록 안전성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죠. 아직도 잊힐 만하면 전기차와 ESS에서 화재가 발생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잖아요.

화석연료보다 기술적으로 난이도가 높기는 해도 수소는 저장탱크에 담아 운송하는 것도 가능하죠. 적어도 무거운 배터리를 실어 나르거나, 지구 반대편까지 전선으로 연결하기보다는 편할 겁니다. 특히 한국처럼 재생에너지 생산에 불리한 기후 여건을 가져 화석연료를 사용할 수 없게 됐을 때 에너지를 수입할 수밖에 없는 나라에게 유용하죠.
한국의 탄소중립 경쟁력, 자동차·선박 기업이 이끌까
탄소중립을 위한 기술력 측면에서 한국의 위치는 어느 수준일까요? 다른 분야에서처럼 완제품 쪽은 탁월한 경쟁력을 자랑합니다.

우선 태양전지 모듈 분야에서 한화솔루션은 미국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수소를 사용해 달리는 수소연료전지차 중 작년과 올해 가장 많이 출고된 게 현대차의 넥쏘입니다.

또 수소를 옮기는 선박 분야를 휩쓸 가장 유력한 후보가 한국 조선업계입니다. 특히 이 분야에서는 한국이 원천기술의 표준까지도 장악하게 될지 주목됩니다. 현재 한국 조선업계가 독점하다시피 하는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분야에서는 LNG를 담는 화물창 기술의 표준을 선점한 프랑스 GTT에 막대한 로열티를 주고 있지만, 새로운 산업인 수소화물창 분야는 아직 무주공산이거든요.

바다 위에 풍력발전소를 설치하는 해상 풍력 발전 분야에서도 한국 조선소들의 역할이 큽니다. 파도 속에서도 큰 움직임 없이 고정돼 해저유전의 기름을 퍼 올리는 해양플랜트 관련 기술력을 활용할 수 있어서죠.
한 발 늦은 발전설비·수전해 분야 추월 가능성은…
반면 재생에너지와 수소 모두 생산 분야에선 한국이 경쟁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말하긴 힘듭니다.

우선 태양광의 경우 기술력이 아닌 가격이 문제입니다. 태양전지 제조 산업의 밸류체인(가치사슬)의 대부분 중국의 독무대입니다. 원재료인 폴리실리콘 생산 분야에서는 한국 기업인 OCI가 글로벌 3위에 오르기도 했지만, 가격 경쟁력에 밀려 결국 국내 생산을 접었습니다. 폴리실리콘을 녹여 굵은 기둥 형태로 만든 잉곳, 잉곳을 얇게 자른 웨이퍼 분야는 중국이 확실하게 장악하고 있고요.

풍력 분야는 그나마 나은 편입니다. 풍력발전기의 핵심 부품으로 꼽히는 날개(블레이드)·타워·터빈 중 씨에스윈드가 타워 분야에서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터빈·모듈 분야에선 두산중공업도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긴 하지만,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말하기는 힘듭니다.

수소를 생산하는 수전해 기술 분야에 대한 연구는 한국이 유럽에 비해 5~10년 가량 늦게 시작한 걸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아직 한국이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는 분야도 포기하기는 이릅니다. 이전까지 주목받지 못하던 수소가 등장할 수밖에 없었을 정도로 세계 각국이 탄소중립을 급박하게 밀어붙이고 있거든요. 지금 뒤처져 있더라도 충분히 따라잡을 기회가 있다는 겁니다.

반대로 말하면 지금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기업이 2050년 탄소중립을 달성했을 때도 살아남아 있을지도 불투명하기도 하죠. 그래서 최근 천정부지로 치솟는 수소 관련 기업들의 주가를 보면 무섭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애플,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등 현재 미국 증시 시가총액 상위권을 장악하고 있는 빅테크기업들을 정보기술(IT) 버블기에 골라내기는 쉽지 않았듯이 말입니다. 과거 한국 증시에서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았던 새롬기술(현 솔본)의 현재 주가는 20여년 전의 최고가 대비 30분의1 토막 수준입니다.

한경우 한경닷컴 기자 cas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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