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스스로 신뢰 떨어트리려 작정했나 [여기는 논설실]

입력 2021-09-13 09:19   수정 2021-09-14 09:33



신뢰는 선진 사회의 주요한 척도다. 보이지 않지만, 신뢰는 매우 중요한 사회적 인프라다. 가령 신용카드는 금융에서의 신뢰도가 어떻게 편리한 서비스를 제공해주는 지를 보여주는 좋은 발전 사례다. 신뢰가 없고, 신용이 없으면 불가능한 편리 시스템이다. 그런 신용체제는 하루아침에 구축되지 않는다. 오랜 경제활동과 구성원들의 진화한 정신체계, 각 분야에서의 개별적 신용이 누적돼 쌓여가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고신용 금융이용자에게 이자를 더 물리겠다는 발상 같은 것은 참으로 허무맹랑하다. 수 백 만명의 신용사면을 쉽게 하겠다는 자의적 포퓰리즘 행정도 매우 위험하다. 이런 질서도 뒤흔들어버리면 당장은 신용 약자가 덕 보는 것처럼 보여도 궁극적으로 경제약자들의 입지가 좁아지고, 손실도 더 커질 것이 뻔하다. 금융까지 포퓰지즘 기반에서 흔들겠다는 ‘정치금융’의 폐단이다.

어떻든 신뢰는 사회발전에 중요하다. 힘들어도 계속 쌓아가야 한다. 그런데 눈앞의 정파적 이익만 보는 금융의 포퓰리즘을 보면 신뢰의 중요성을 현 정부는 잘 모르는 것 같다. 금융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정부의 불신은 5년짜리 정부들의 위기가 아니라 국가의 위기다. 불만 차원의 불신 정도가 아니라 정부라는 이름으로 행하는 많은 행정이 냉소의 대상이 되고, 심지어 조롱거리가 된다는 점이 큰 문제다.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 공무원들과 공당을 자처하는 여의도 정치권이 정신 차리지 않으면 국가 시스템의 위기는 가중될 것이다.
◆추락하는 정부 신뢰… 선심성 복지공약으로 가속화
지금 한국 사회에서 정부에 대한 신뢰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한국 정부는, 특히 현 정부는 과연 신뢰를 받고 있을까. 충분치 않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중립적 NGO로, 세금 세제 분야에 특화해온 사회단체인 ‘한국납세자연맹’(회장 김선택)이 엊그제 낸 ‘정부신뢰를 낮추는 10가지 사례’가 있어 주목해본다. 구체적 사례를 제시한 것이어서 현 정부 뿐 아니라 다음 정부도 새겨볼 내용이 많다. 한국납세자연맹은 “선심성 복지공약 내놓기보다 중요한 것은 정부 신뢰도를 높이는 일”이라며 “불공정한 세제·세정, 불합리한 법, 복잡한 세법과 잦은 개성”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충분히 동의하게 된다. 떨어지는 정부 신뢰를 위기로 보는 대선 주자도 없다. 아무리 세금내기를 즐겨하는 이는 많지 않다고 하지만, 국민 즉 납세자가 대세로 세금내기를 싫어한다면 국가발전은 요원해질 뿐이다.

대선이 진행되고 있고, 누가 되든 대통령은 선출될 것이다. 그래봤자 5년 임기의 선출직 공무원일 뿐이지만, 대통령의 합법적 권한은 적지 않다. 그런데 정부 신뢰도, 바꾸어 말하면 국가 신뢰도라고 해도 될 중요한 이 인프라가 무너지면 다음 대통령은 누가 되든 실패할 확률이 매우 높은 정권이 될 것이라는 한국납세자연맹의 진단 또한 틀림이 없다. 대통령이든 5년짜리 해당 정부든 실패할 수 있지만, 그렇게 되면 국민이 불행해진다. 취약층은 더 힘들어지고, 곳곳에서 기회는 줄어들 것이다.
◆불공정 세제·세정, 불합리 법률, 수리로 변하는 복잡한 행정
세금으로 볼 때 정부 신뢰를 스스로 낮추는 10가지 사례를 재정리해서 소개한다. 세금을 중심으로 봤지만, 세금만의 얘기가 결코 아니다.

첫째, ‘불공정한 세제’가 문제.
동일한 소득에 대해 누구는 세금을 내는데 누구는 세금을 내지 않거나 감면을 많이 받으면 문제다. 상장주식 양도차익, 가상자산 양도차익, 논농사·밭농사 소득은 현재 비과세소득이며 한국에는 복잡하고 자의적인 조세감면 규정이 적지 않다. 납득하기 어려운 기준에 의해 내가 재난지원금 지원 대상에서 제외될 때도 마찬가지다.

둘째, ‘불공정한 세정’도 문제.
자영업자들에 대한 공평과세 논란이 대표적이다.

셋째, 정부가 정보를 숨길 때.
가령 공무원의 기본급만 공개하고 직급별, 호봉별 총 연봉은 공개하지 않는 것도 그런 경우다. 정부에는 공개하지 않는 위원회나 결정 사항이 매우 많다.

넷째, 예산이 낭비되는 사례를 실감할 때.
정부나 지자체에서 선심성 행정이나 보여주기 식 사업으로 예산을 낭비하는 일이 잦다. 선거 때마다 예외 없는 터무니없는 공약들을 한번 보라.

다섯째, 성실납세 비용이 많이 들고 어려울 때.
세금 내는 게 진정 내키지 않는 납세자 눈에 정부가 어떻게 보이겠나. 홈택스에서 소득세 확정 신고를 위해 접속했으나 어려워서 하지 못하고 결국 세무대리인에게 돈을 주고 마무리 하는 납세자들의 심정을 누가 헤아리기나 하나.
◆"낮은 정부 신뢰도에선 누가 대통령되든 실패하기 십상”
여섯째, 특권을 누리는 공무원을 볼 때.
대통령을 비롯한 고위공무원들이 국민 세금을 영수증이 없이 사용하고 비공개하는 특수활동비 특권을 누리는 것을 볼 때 무슨 신뢰가 생기겠나. 대통령이라면 더욱 10원 하나 지출도 다 공개해야 하는데 현실은 반대다.

일곱째, 세법이 복잡하고 자주 개정될 때.
‘양포세무사’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부동산관련 양도세는 너무도 복잡하다. 세 법전을 보아도 무슨 뜻인지 모르겠고, 양도소득세가 너무 자주 많이 바뀌어서 세무대리인 조차도 잘 모른다는 게 한국 현실이다.

여덟째, 공무원이 납세자를 존중하지 않을 때.
지금의 정부 여당은 세금 많이 내는 납세자를 더 공격하고 때리기에 주력하다. 집 가진 걸 죄인 취급한다. 세금을 그런 수단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납세자는 애로를 털어놓는데 제대로 듣지 않고 “나는 법대로 할 뿐”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법대로 이의제기 하라”고 하면….

아홉째, 그 자체로 불합리한 법이 많아질 때.
탈세는 중대범죄이지만 대응도 정도껏 해야 한다. 1억 탈세에 무기징역까지 가능하다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도 있다. 불합리한 법이 너무 많다는 게 문제다.

마지막 열 번 째, 전문적인 능력을 갖추지 못한 공무원을 볼 때.
무능한 공무원이 정부 신뢰를 낮추는 것에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하랴. 세무 공무원이라면 자기 분야를 꿰뚫고 있어야 하는데, 과세여부에 대한 질문에 답변을 하지 못하는 공무원을 보는 납세자의 심정이 어떠하겠나.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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