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서 찾지 마세요, 우리가 바라던 행복은 이 안에 있으니

입력 2021-09-23 17:09   수정 2021-09-24 01:43

스웨덴어인 라곰(lagom)은 너무 많지도, 너무 모자라지도 않은 적당한 상태라는 뜻을 지녔다. 스웨덴식 삶의 방식인 라곰은 소박하고 균형 잡힌 생활로 작은 행복을 추구하는 태도를 의미하는 단어기도 하다.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딱 그만큼의 적당함을 지향하는 삶의 방식인 라곰을 작품에 담아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화가가 있다. 스웨덴의 국민화가로 사랑받는 칼 라르손(1853~1919)이다. 라르손의 대표작 ‘창턱의 꽃. 집에서’를 감상하면서 스웨덴식 삶의 기쁨인 라곰에 흠뻑 빠져보자.


한 여자아이가 소박하면서도 아름다운 실내에 서 있는 장면이다. 비록 아이의 표정은 볼 수 없지만 뒷모습에서도 아늑하고 편안한 감정이 묻어나온다. 어린 소녀는 라르손의 딸이다. 그림에서 라르손의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화가는 딸의 모습을 열심히 관찰하면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으리라. 한눈에도 즐거운 집이요, 행복한 가정이라고 느껴진다. 이 그림을 보는 순간 진정한 행복이란 일상생활에서 경험하는 작고 소소한 기쁨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특히 디자인 왕국으로 불리는 스웨덴의 아름답고 실용적이며 자연친화적인 디자인 미학과 주거 문화가 거실 분위기에 반영됐다. 자연미를 살린 원목 가구와 홈메이드 패브릭의 개성이 강조된 다양한 직물 소품, 탁자 위에 놓인 뜨개질 뭉치, 벽을 장식한 그림, 실내 화분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다.


그림 속 집은 스웨덴 중부 달라르나주의 순드보른에 있는 전원주택 릴라 히트나스(Lilla Hyttns)다. 라르손이 아내 카린, 8명의 자녀와 함께 행복하게 살면서 생을 마감한 집이다. 라르손의 장인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딸과 사위에게 달라르나 지방의 전통 목조주택을 선물했다. 라르손은 화가인 아내 카린과 함께 집 외관과 실내를 직접 수리하고 가꿔 보기에 아름답고 살기에도 편안한 스칸디나비아 스타일의 주거 공간으로 바꿨다. 라르손은 스웨덴산 원목으로 거실, 침실, 아이들 방, 부엌 가구 등을 손수 제작했고, 카린은 자녀를 키우는 동안에도 아이들의 옷, 카펫, 이불, 담요, 덮개, 식탁보, 커튼 등 의류와 직물을 직접 디자인해 수를 놓고 바느질하며 편안하고 안락한 실내 공간을 꾸몄다.

부부 예술가는 실내 장식뿐만 아니라 주방기구도 직접 제작해 사용했다. 즉 릴라 히트나스는 예술가 부부가 인테리어와 직물 디자이너가 돼 집 안을 아름답게 장식한 핸드메이드 주택이다. 부부의 예술적 취향과 감성이 담긴 라르손의 수채화는 현대 인테리어 디자인의 교본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라르손과 카린이 평생에 걸쳐 스칸디나비아 스타일의 주택을 정성껏 가꾼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7명의 자녀(한 명은 일찍 세상을 떠남)에게 가족의 소중함과 가족 간 따뜻한 정이 오가는 주거환경을 선물하고 싶었다고 한다. 자녀들이 부모의 사랑으로 가꾼 집에서 즐겁고 행복한 마음으로 생활하면서 라곰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길 바랐던 것이다. 라르손이 자신의 집과 가족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했는지는 그의 말에서도 드러난다. “이곳은 나만의 공간이다. 밀짚 매트리스가 깔린 소박한 침대에서 나는 숙면을 취한다. 마치 어느 나라의 왕과 같이.”

릴라 히트나스에서 집을 아름답게 장식하는 아내 카린과 마음껏 뛰어놀며 성장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라르손의 창작혼을 자극했다. 그는 아름다운 주거 공간과 행복한 가족의 일상생활을 화폭에 담았고 《나의 가정》이라는 제목의 그림책도 출간했다. 가족의 소중함을 전하는 그림책은 당시 얼마나 인기가 많았던지 제1차 세계대전에 참가한 스웨덴 군인들이 성경과 함께 간직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릴라 히트나스는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스칸디나비아 스타일 가구와 공예 디자인의 산실이 됐다.

오늘날 릴라 히트나스는 ‘스웨덴에서 가장 유명한 집’ ‘스웨덴 인테리어 디자인과 가족 생활의 아이콘’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국제적인 관광명소가 됐다. 세계 각국에서 많은 관광객이 ‘라르손 양식’으로 불리는 스칸디나비아식 전통 목조주택과 가구, 다양하고 개성 넘치는 홈메이드 패브릭 소품으로 장식된 인테리어를 보기 위해 릴라 히트나스를 방문하고 있다. 성수기(5월 초~8월 하순)에는 하루 10분 간격으로 투어가 진행될 정도로 인기가 많다. 여행객들이 릴라 히트나스를 떠나며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하지 않을까.

‘나에게 라곰은 어떤 의미인가?’ ‘나는 가족과 어떤 집에서 살고 싶은가?’

이명옥 < 사비나미술관 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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