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분칠해도 감출 수 없는 역사의 진실

입력 2021-09-23 18:07   수정 2021-09-23 23:55

시대가 바뀔 때마다 역사는 새로 쓰인다. 하지만 역사는 억지로 만든다고 새롭게 창출되는 게 아니다. 때론 조그만 도구 하나가 역사의 큰 흐름을 바꾸기도 하지만, 국가 권력이 총동원돼 바꾸려 해도 바꿀 수 없는 게 역사다.

때마침 현재의 정치적 목적에서 무리하게 역사를 바꾸려는 시도와 일상생활 속 조그만 도구가 자연스럽게 역사를 바꾼 대조적 사례를 다룬 책 두 권이 새로 나와 주목된다.

《중국 애국주의와 고대사 만들기》(김인희·심재훈 외 지음, 동북아역사재단)는 ‘중화민족’이라는 전통의 발명 혹은 창조에 관한 얘기를 담은 책이다. 공격적 민족주의를 주창하는 중국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문명국’임을 증명하기 위해 시행 중인 학문적 무리수를 낱낱이 파헤쳤다.

‘톈안먼 사태’ 이후 중국 정부는 시민들이 민주화를 외치며 거리에 나선 원인이 서구화와 중국 공산당에 대한 비판에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애국주의를 강화해 분위기를 전환하고, 사회 통제를 강화하려 했다. ‘고대사 만들기’는 그 핵심의 일환이다. 특히 시진핑(習近平) 집권 이후 ‘중국 특색·기백이 있는 고고학’이 강조되면서 고고학은 중국 문명의 우수함을 증명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다.

중국 곳곳의 고대 유적지들은 점입가경 식으로 신화·전설과의 일체화 작업에 들어갔다. 이에 따라 오제(五帝)시대는 신화가 아니라 기원전 3500년경부터 실재한 것으로 그려졌다. 실체가 불분명했던 하(夏)나라와 상(商)나라의 존속 기간도 구체적으로 확정됐다. 이집트, 메소포타미아보다 뒤처졌던 중국의 ‘역사 시대’를 5000년으로 쭉 늘린 것이다.

근대 역사학의 발전에 따라 후대에 창조된 것으로 여겨지는 요·순·우는 물론 신화 속 인물인 황제와 염제도 ‘믿을 수 있는 역사’로 강제로 자리매김했다. 문헌 기록에서 유리한 내용만 취하고 불리한 것은 무시했다. 중화 문명이 다른 주요 문명에 비해 1500년이나 뒤진 시기에 문자가 등장했다는 콤플렉스를 상쇄하기 위해 문명을 판별하는 기준도 새로 만들었다. 이처럼 현재의 필요 때문에 과거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오늘날 중국의 모습은 역사학에 드리운 어두운 그늘을 상징한다.

《재봉틀과 일본의 근대》(앤드루 고든 지음, 김경리 옮김, 소명출판)는 하버드대 교수인 저명한 일본사 연구자가 ‘재봉틀’이라는 문명의 이기를 통해 일본 여성의 ‘사회적 노동’이 어떻게 탄생했는지를 그려낸 책이다.

일본에 재봉틀이 들어온 시기는 1850년대로 추정된다. 1858년 미국의 외교 특사였던 타운센드 해리스가 쇼군의 부인에게 재봉틀을 선물했다. 1860년에는 도쿠가와 정권의 사절단으로 미국에 갔던 이들이 워싱턴의 한 호텔 세탁실에서 재봉틀을 사용하는 소녀를 발견하고선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당시 사무라이들이 넋을 놓고 재봉틀을 바라보던 모습은 삽화로도 남아 있다.

이후 다국적 기업인 미국의 싱거미싱사는 일본 시장에 방문 판매, 할부 구매, 피라미드형 경리 및 재고·유통관리 등 새로운 판매전략을 선보였다. 이를 통해 조성된 일본형 판매원들은 다시 일본 여성들을 ‘소비자’로 재탄생시켰다.

그리고 무엇보다 재봉틀을 통해 오랫동안 ‘가사’로만 취급받던 여성의 개인적 노동이 국가와 사회에 의해 경제적 가치를 부여받는 ‘사회적 노동’으로 탈바꿈했다. 현대 중국이 억지로 새역사를 창조하려는 것과 대조적으로 근대 일본에서 재봉틀은 자연스럽게 역사의 새 장을 열었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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