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욱의 '케미컬 승부수'…현금 총동원 몸집 2배 '골리앗' 인수

입력 2021-09-28 17:13   수정 2021-09-29 03:07


“한국의 다윗이 미국의 골리앗을 인수했다.”

DL케미칼이 28일 크레이튼 인수를 전격 발표한 직후 시장에서는 이 같은 평가가 나왔다. 글로벌 석유 메이저업체인 쉘에서 분사된 석유화학기업 크레이튼을 국내 중견화학사인 DL케미칼이 ‘깜짝 인수’한 데 따른 것이다. 그룹의 중심축을 건설에서 석유화학으로 이동시키기 위해 이해욱 DL그룹 회장이 승부수를 던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해욱 회장의 파격 베팅
DL케미칼은 올초 DL에서 물적 분할된 이후 대규모 인수합병(M&A)을 준비해왔다. 국내 중견기업 규모의 석유화학사 이미지에서 벗어나 ‘세계 톱20 석유화학사’로 도약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크레이튼은 2000년 쉘에서 계열 분리돼 사모펀드를 주인으로 맞은 뒤 2009년 미국 뉴욕증시에 상장했다. 주력 제품은 스티렌블록코폴리머(SBC)로, 미국과 유럽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다. SBC는 위생용 접착제와 자동차 내장재, 5세대(5G) 이동통신 케이블 등에 활용되는 첨단기술 소재로 주목받고 있다.

크레이튼은 소나무 펄프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을 정제해 화학 제품을 제조하는 세계 최대 규모 바이오 케미컬 회사이기도 하다. 바이오 케미컬 생산능력은 연 70만t으로 친환경 연료, 고기능성 타이어 재료, 친환경 접착제 등의 소재를 생산하고 있다.

DL케미칼은 작년 3월 크레이튼의 합성수지고무 사업부인 카리플렉스를 인수한 뒤 크레이튼 인수를 비밀리에 준비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김상우 DL케미칼 부회장이 물밑 협상을 통해 투자를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SK텔레콤 상무 출신인 그는 2012년 대림산업에 합류, 석유화학사업부 대표를 맡다 올초 DL케미칼이 분할된 후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선임됐다.

다만 이번 인수에 대해선 사업의 중심축을 석유화학으로 이동시키기 위한 이해욱 DL그룹 회장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기존 핵심사업인 건설만으로는 더 이상 성장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룹 안팎에선 올해 재계 순위가 19위(자산기준)로 작년보다 한 계단 떨어지자 자칫 20위권으로 밀려날 수 있다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일각에선 이번 인수를 계기로 공식 행보를 자제하고 있는 이 회장이 경영 전면에 재등장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보유현금 전량 투입
DL케미칼은 이번 인수를 통해 외형적으로는 단숨에 미국·유럽의 1위 SBC 제조업체 및 세계 최대 규모의 바이오 케미컬 회사로 도약할 수 있게 됐다. 크레이튼이 보유한 800개 이상의 특허를 활용해 핵심 소재의 국산화에도 나설 계획이다. 지금까지 석유화학 신소재 분야는 기술적 장벽으로 인해 해외 의존도가 높았다.

DL케미칼은 이번 인수에 자체 보유한 현금 및 현금성 자산 1조2000억원을 전액 투입할 계획이다. 나머지 1조7500억원은 크레이튼 자산을 담보로 자금을 마련하는 차입매수(LBO) 방식으로 조달한다. 시장에서 이번 인수에 대해 예상 규모를 뛰어넘는 파격적인 베팅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이날 인수 소식이 전해지자 모회사 DL 주가는 전날보다 7.9% 급등한 7만6300원까지 치솟았다.

다만 일각에선 화학산업 시황이 빠르게 식을 경우 유동성에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018년 2억5073만달러(약 3000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던 크레이튼은 이듬해 이익 규모가 절반 수준인 1억1946만달러로 추락했다.

DL케미칼이 작년에 올린 영업이익은 987억원으로 합작사인 여천NCC와 폴리미래 영업이익을 모두 합쳐도 2814억원에 불과하다. 다만 DL 측은 “작년에 크레이튼이 낸 적자는 사업 인수에 따른 일회성 비용 때문”이라며 “매년 3000억원 규모의 이익을 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 여천NCC 등 합작회사로부터 분기별로 꼬박꼬박 현금이 들어오고 있어 유동성에 문제가 없다는 설명이다.

김상우 부회장은 “지난해 크레이튼의 합성수지고무 사업부인 카리플렉스를 인수한 뒤 성공적인 통합을 이뤄냈다”며 “이번 인수를 통해 세계 70여 개국에 더욱 다양한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강경민/차준호 기자 kkm1026@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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