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티셔츠 입고 "판매 거부" 선언…백화점 찾은 고객들 당황 [곽용희의 인사노무노트]

입력 2021-10-09 16:59   수정 2021-10-09 18:03


"고객님, 저희는 공동 휴식을 위한 집단 행동 중입니다"

9일 오전 삼성동의 한 백화점에서 노조 티셔츠를 입은 수입 화장품 판매 직원들이 고객들에게 안내한 내용이다. 일부 고객은 "집단 행동이 파업을 말하는 거냐"고 묻다가 결국 다른 매장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백화점면세점판매 서비스노동조합은 8일 보도자료를 내고 "이번 주말 연휴에 백화점에서 샤넬, 입생로랑, 랑콤 화장품 못 산다"며 "9일부터 11일까지 연휴 동안 공동 휴무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노조 소속 로레알코리아, 샤넬코리아 지부 주도로 '연휴 공동 휴식'에 돌입하며 여기엔 1400여명의 조합원이 참여한다는 계획이다. 이 때문에 9일 오전까지도 수입 화장품 일부 매장은 고객 응대자가 없어서 물건을 구입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회사는 본사 대체 인력을 내려보낼 계획이라지만, 빈 매대를 제대로 채우지 못해 직원을 찾아 두리번 거리는 손님들은 여기저기서 목격됐다. 이들 지부는 지난 9월 추석 연휴 기간에도 이틀 동안 총파업을 진행한 바 있다.

이들은 왜 집단 행동에 들어갔을까. 온라인 판매 급증으로 인해 소득이 줄었다는 주장이다. 노조는 백화점이 온라인 쇼핑몰을 열어 적극 판촉 하고 매출을 올린 것이 현장 매출 감소로 이어졌다고 지적한다. 판매 직원 중 일부는 급여의 20% 가까이가 성과급인 경우도 있다. 특히 화장품 회사들까지 대거 온라인 판촉에 나서면서 갈등이 확산됐다.

또 백화점에서 화장품을 테스트하고 온라인서 구매하는 소비자들도 늘어나고 있다. 이 때문에 직원들의 일은 일대로 바빠졌지만, 정작 고객들은 큰 폭의 할인을 받기 위해 온라인 구입을 선택한다. 이에 노조는 판매직원들이 오프라인에서 한 노력이 온라인 매출로 연결된 만큼, "조합원들이 온라인 판매 촉진에 이바지한 '기여노동'을 인정하고 임금에 반영해 달라"는게 이들의 중요한 요구사항이다.

이런 현상은 현대차에서도 관측된다. 금속노조 현대차지부는 캐스퍼 온라인 판매를 반대하고 나섰다. 현대차 노조 판매위원회는 지난달 28일 쟁의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캐스퍼 온라인 판매 저지를 결의했다. 온라인 판매 차종이 확대되면 판매직의 생존에 심각한 우려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현대차 노조 자료에 따르면 2016년부터 2020년까지 현대차 영업직 근로자들은 연평균 45대를 팔았다. 온라인 판매가 늘어나면 소득 감소로 이어질 것은 불보듯 뻔하다는 설명이다.

노사가 합의점을 찾아낸 케이스도 있다. 일본계 화장품 회사인 시세이도 노사는 ‘온라인 기여 수당’을 인정하는 쪽으로 합의를 이끌어냈다. 온라인 매출의 영향을 받는 성과급 보다 조금 적게나마 고정급을 받는 쪽으로 합의했다. 하지만 업계 전반으로 번져나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기존 근로자들 역시 변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현대차 국내영업본부와 현대차 노조 판매본부가 체결한 단체협약에 따르면 판매근로자의 판매실적 부진하다는 이유로 징계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판매 부진이 징계 사유는 아니겠지만, 근로자의 태업을 통제할 방법도 마땅치 않은 게 문제다.

월평균 판매량이 1대도 안되는 근로자에게 별도로 취할 수 있는 조치가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자동차 판매직으로 일했던 한 근로자는 "일부 판매 직원들은 한달에 1대를 못팔아도 기본급으로 6000만원 이상 버는 경우도 있어 절박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최근 현대차 GV70을 구입한 회사원 A씨는 "매장마다 전시 차량 옵션이 달라 차를 보기 위해 품을 들여 여러 매장을 돌았는데, 일부 매장에서는 직원들이 귀찮은듯 본체만체 해 기분이 좋지 않았다"며 "나는 어차피 차를 살건데, 견적만 내 준 직원들에게 얼마가 떨어지는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근로자들도 할 말은 있다. 한 판매직원은 "회사가 할인율이나 고객 혜택 제공 등을 철저하게 제한하고 있어서 영업 방식에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현대차 판매직 근로자들로 이뤄진 노조는 현재 6200명 규모로 알려져 있으며, 현대차는 더 이상 판매직군을 신규 채용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소비 환경이 바뀌고 있는데, 판매직 근로자들의 기존 영업 방식을 그대로 유지해주기 위해 온라인 판매 확대를 막는 것은 '러다이트 운동' 같은 시대 역행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노사관계 전문가는 "회사의 변화 모색은 소비자의 목소리를 반영해 살아남기 위한 것이지 노조를 죽이기 위한 것이 아니다"며 "예전 한국아쿠르트가 '프레시 매니저'들의 판매 상품을 늘리고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판매직의 지평을 넓힌 사례가 있는 것처럼 판매 근로자들도 회사와 함께 생존을 위한 변화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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