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집값 꼭지라면서 사전청약 받아라?

입력 2021-10-13 17:04   수정 2021-10-14 00:25

“화가들은 죽고 묻히지만 자신의 작품을 통해 다음 세대에, 아니면 그다음 세대에 말을 건넨다. 화가의 삶에서 죽음은 그렇게 두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빨강머리 미치광이’로 불린 화가가 1888년 동생에게 보낸 편지다. 2년 뒤 자신의 운명을 예감한 것일까. 평생 인정받지 못한 화가로 궁핍한 생활을 하고, 고갱과의 불화로 자신의 한쪽 귀를 자르고, 정신질환으로 고통을 받던 그는 1890년 권총 자살로 37세의 생을 마감한다. 그는 생전 800여 점의 그림을 그렸지만, 단 한 점밖에 팔지 못했다. 하지만 사후 그는 서양 미술사에서 가장 유명하고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한 명이 된다. 네덜란드의 후기 인상파 화가 빈센트 반 고흐 이야기다.
조급증에 빠진 주택 정책
미술 작품만큼은 아니더라도 정부 정책은 10년, 20년 뒤를 내다봐야 한다. 부동산 정책은 더 그렇다. 김현미 전 국토교통부 장관의 말처럼 아파트는 빵처럼 밤을 새운다고 만들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정부는 너무 조급하다. 집값 안정이라는 단기 목표만 신경 쓰다 보니 앞뒤가 안 맞는 정책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등 정부 고위 관계자들은 지금 집값이 고점이라고 거듭 경고하고 있다. 금리 인상, 대출 규제 등으로 이제 거품이 꺼져 내려갈 일만 남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3기 신도시 등의 사전청약 물량은 대폭 늘리고 있다. 정부는 지난 8월 2024년까지 공급할 사전청약 물량을 애초 계획보다 10만1000가구 늘어난 16만3000가구로 확대한다고 발표했다.

지난 7월 인천 계양 등의 사전청약에서는 고분양가 논란이 불거졌다. 분양가가 그리 싸지 않다는 말이다. 사전청약 후 입주 때까지 최소 4~5년이 걸린다. 즉 홍 부총리 주장대로 지금 집값이 꼭지라면, 사전청약에 당첨되면 고점에 물리는 것이 될 수도 있다.

정부는 최근 14만 가구가 들어설 경기 의왕·군포·안산 등 3차 신규 택지도 추가로 발표했다. 수도권 외곽이지만 광역급행철도(GTX)가 깔리면 서울로 출퇴근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정부는 서울 도심복합개발도 강력히 추진하고 있다. 공공 주도 재개발·재건축으로 서울 공급을 대폭 늘리겠다는 것이다. 투기 우려에도 불구하고 오피스텔 난방과 도시형생활주택 면적 규제까지 풀었다. 서울시도 ‘오세훈표 재개발’을 내세워 2030년까지 연평균 약 8만 가구의 신규 주택을 짓겠다고 한다.
대선 전 집값만 잡으면 다인가
서울 주택이 이렇게 늘어나는데 수도권 외곽 분양을 받는 게 과연 현명한 일일까. GTX가 예정대로 뚫려도 과연 서울 주택보다 경쟁력이 있을지 의문이다. 시장이 침체되면 자급자족이 힘든 베드타운으로 만들어지는 외곽 신도시부터 무너진다. 일본 도쿄에서 서쪽으로 약 25㎞ 떨어진 다마(多摩)시는 1980년대 ‘꿈의 신도시’로 불렸지만 지금은 인구 고령화로 ‘유령 도시’가 됐다.

최근 주택 정책을 보면 당정은 내년 3월 대선 전까지는 무조건 집값을 잡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것 같다. 나중에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은 안중에도 없다. 강남 등 수요가 많은 지역은 사지도 팔지도 못하게 규제로 꽁꽁 묶어놓고, 외곽 지역에서 앞뒤 안 가리고 공급만 늘리면 어쩌자는 건가.

긴 호흡이 필요한 주택 정책을, 선거 앞두고 표심 얻는 수단 정도로 가볍게 여긴 대가는 결코 작지 않을 것이다. 시장에서는 벌써부터 GTX발 호재로 집값이 급등한 수도권 외곽지역의 공급 과잉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관련뉴스

    top
    • 마이핀
    • 와우캐시
    • 고객센터
    • 페이스 북
    • 유튜브
    • 카카오페이지

    마이핀

    와우캐시

    와우넷에서 실제 현금과
    동일하게 사용되는 사이버머니
    캐시충전
    서비스 상품
    월정액 서비스
    GOLD 한국경제 TV 실시간 방송
    GOLD PLUS 골드서비스 + VOD 주식강좌
    파트너 방송 파트너방송 + 녹화방송 + 회원전용게시판
    +SMS증권정보 + 골드플러스 서비스

    고객센터

    강연회·행사 더보기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이벤트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공지사항 더보기

    open
    핀(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