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생명이 '즉시연금 첫 승소'에도…'정중동'하는 까닭 [이호기의 금융형통]

입력 2021-10-17 14:59   수정 2021-10-17 15:00


윤석헌 전 원장 시절의 금융감독원과 시민단체인 금융소비자연맹 등이 주도해 2018년 삼성생명 등 주요 생명보험사를 상대로 제기한 총 1조원 규모의 '즉시연금 소송'에서 생보사들의 첫 승소 사례가 나왔습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6부(이원석 부장판사)는 지난 13일 삼성생명과 한화생명이 고객 측과 벌인 2건의 소송에서 모두 원고(고객) 패소 판결했습니다.

이번 승소는 생보사들 입장에서 의미가 꽤 큽니다. 지난 2년간 삼성생명을 비롯해 미래에셋생명, 동양생명, 교보생명 등이 비슷한 소송에서 줄줄이 패소해 왔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선 아직 집단소송이 허용되지 않아 해당 고객들이 보험사를 상대로 직접 소송을 걸어야 합니다. 비슷한 소송이 각 보험사별로 수십여건이 진행되고 있는 이유입니다.

즉시연금은 가입자가 목돈을 맡긴 뒤 매달 연금 형태로 보험금을 받는 상품입니다. 특히 상속만기형(상속연금형) 상품은 일정 기간 이자 개념의 연금을 받고 만기에 도달하면 원금을 돌려받는 방식입니다.

말이 연금이지 사실상 초장기 예금 상품과 크게 다를 게 없습니다.

하지만 보험사는 은행이 아니다보니 상품 구조나 용어가 동일하지는 않습니다. 이번 사건도 그런 오해에서 비롯된 측면이 큽니다.

이번에 삼성생명이 승소한 1심 판결문을 토대로 사건을 살펴보겠습니다.

원고인 고객 A씨는 2015년 방카슈랑스 창구를 통해 '무배당 삼성에이스즉시연금(상속연금형)' 상품에 가입하고 목돈 5000만원을 보험료로 지급했습니다.

보험 기간은 10년으로, 매월 연금을 지급받은 뒤 고객이 사망하거나 보험기간이 끝나는 시점에 원금을 고스란히 돌려받는 구조입니다.

매달 지급받는 연금월액은 '순보험료(보험료-사업비)에 공시이율을 적용한 금액'으로, 여기서 공시이율은 매달 1일 회사가 정해 공시합니다.

여기서 문제는 공시이율입니다. A씨는 공시이율을 은행 금리와 똑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즉 자기가 낸 보험료 5000만원에서 사업비 명목으로 차감한 259만원 가량을 제외하고 4741만원에 공시이율을 곱한 금액만큼 매달 연금월액으로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는 달랐습니다. A씨는 2015년 11월부터 2019년 6월까지 매달 8만원~10만원 가량을 연금월액으로 받았는데 실제 순보험료에 공시이율을 곱해 계산한 금액은 10만~12만원이었던 겁니다.

보험사들은 향후 가입자가 사망하거나 보험 만기가 완료됐을 때 5000만원을 지급해야 합니다. 이를 '만기환급금'이라고 부르는데 이를 마련하기 위한 재원으로 연금월액에서 일부(A씨 사례: 약 2만원)를 공제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정보가 보험 약관에는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대신 '보험료 및 책임준비금 산출방법서'(산출방법서)라는 별도 회사 규정을 통해서만 이 같은 산식을 알 수 있었지요. 최초 가입 당시 이 같은 사실을 설계사로부터 안내받지도 못했습니다.

A씨는 이를 부당하다고 여겨 금감원에 민원을 제기했고 금감원은 분쟁조정위원회(분조위)를 거쳐 생보사들이 '불완전판매'를 했다며 고객들이 덜 받은 보험금을 전액 지급하라고 결정합니다.

그러나 보험사들은 이를 쉽게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렇게 되면 회사 입장에서 '역마진'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생보사들이 적극적으로 사기를 치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산출방법서는 고객에게 약관으로 제공되지 않았을 뿐 이미 가입 시점에 회사 규정으로 확정돼 있었고 실제 보험금도 이에 따라 꼬박꼬박 지급돼 왔기 때문입니다.

각 보험사별로 고객들에게 추가 지급해야 할 보험금 규모가 수천억원에 달하는 상황에서 경영진이 일부 고객에게만 최장 30년에 걸쳐 '역마진 수익'을 제공하는 건 경영상 배임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1심 재판부도 이 같은 점을 인정했습니다. 재판부는 "약관만으로는 연금 계산 방법을 알 수 없고, 산출방법서에 의해서만 비로소 계산 방법을 알 수 있다"며 "약관에 공백이 있는 경우라면 대법원 판례 등에 따라 연금월액을 계약을 둘러싼 여러 사항을 종합한 해석에 따라 확정하는 게 타당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재판부는 또 "고객 A씨가 가입 당시 산출방법서에 대한 설명을 받지 못한 건 사실이지만 상속종신형 등 만기환급금이 없는 다른 상품 안내를 충분히 받았던 만큼 (미리 설명을 받았더라도) A씨의 선택은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라며 "이처럼 산출방법서는 보험 계약 체결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정보인 만큼 설명 의무의 대상이 아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 같은 판결이 내려졌지만 생보사들의 표정은 여전히 밝지 않습니다. 삼성생명도 이처럼 의미 있는 판결이 나왔음에도 이를 적극적으로 알리려는 노력을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이번 소송의 배후에는 결국 금감원이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 금감원은 소송 당사자인 각 고객들에게 법적 조력을 포함한 각종 지원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어차피 이번 '즉시연금 분쟁'은 대법원에 가야만 최종 정리될 것입니다. 앞으로도 갈 길이 멀다는 뜻입니다. 삼성생명은 올해 상반기에만 즉시연금 소송 패소 가능성을 대비해 2800억원의 충당금을 적립했습니다.

이번 '즉시연금 소송'을 주도한 윤 전 원장은 이미 임기를 채워 퇴임했지만 그가 남긴 그림자는 지금도 여전히 보험업계를 짙게 드리우고 있습니다.

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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