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은박지’(2012년) ‘한진피앤씨’·‘테크팩솔루션’(2014년) ‘엠케이씨’(2021년).
동원참치용 캔과 김 포장재를 만들던 동원시스템즈가 지난 9년간 소리없이 사들인 회사들이다. 조점근 사장(사진)이 대표를 맡은 이듬해부터 공격적인 인수합병(M&A)에 나설 수 있었던 원동력은 “잘나갈 때 다음 어장(漁場)을 준비하라”는 김재철 동원그룹 명예회장의 독려 덕분이었다. 김 명예회장은 “본업만 하는 것도 망하고, 본업을 버리는 자도 망한다”며 계열사 대표들에게 포트폴리오 다양화와 신사업 발굴을 강조했다. 포장재 전문 계열사로 남아선 미래가 불투명하다고 생각한 조 사장은 치밀하게 변신을 준비했다. 통조림 캔을 만들던 회사가 불과 10년 만에 2차전지 소재 전문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배경이다.
변화를 시작한 건 2012년부터다. 포장재 사업으로도 충분히 실적을 내고 있었지만 다음 어장이 필요했다. 조 사장은 공격적인 M&A로 어장 발굴에 나섰다. 대한은박지, 한진피앤씨, 테크팩솔루션 등 포장재 분야에서 내로라하는 기업을 연이어 인수했다. 시장에선 동원시스템즈가 무리하게 외형을 키우는 데 집중한다는 우려가 나왔지만 조 사장은 개의치 않았다. 진짜 의도는 따로 있었기 때문이다.
조 사장은 “단순히 몸집을 불려 실적을 높이기 위한 M&A는 하지 않는다는 게 원칙”이라며 “겉으로 보기에는 포장재 회사를 인수해 외형을 키우는 것처럼 보였겠지만 진짜 이유는 신사업 진출의 발판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말했다.
2012년 인수한 알루미늄 전문기업 대한은박지가 대표적인 예다. 동원시스템즈는 레토르트 식품 등을 포장하는 고기능성 소재로 주로 사용되던 알루미늄의 가능성을 더 높게 봤다. 전기차 중심으로 자동차 시장이 재편되면 2차전지의 핵심 소재인 알루미늄 수요가 늘어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당시 전기차는 콘셉트카 정도가 선보이던 때였다. LG화학과 삼성SDI조차 2차전지 사업을 막 검토하던 단계였다.
선제 투자는 전기차 시대의 전면 도래에 빛을 봤다. 동원시스템즈는 2016년부터 2차전지에서 전자가 이동하는 통로 역할을 하는 부품인 알루미늄 양극박을 생산해 공급하기 시작했다. 조 사장은 “대한은박지를 인수하지 않았다면 알루미늄을 20㎛(마이크로미터: 1㎛=100만분의 1m)의 얇은 두께로 균일하게 가공해야 하는 알루미늄 양극박 시장에 뛰어들긴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동원시스템즈의 알루미늄 양극박이 들어간 2차전지는 페라리와 애플 등 글로벌 기업 제품에 적용되고 있다.
신사업 진출에 성공한 동원시스템즈의 실적은 개선되고 있다. 동원시스템즈는 지난해 전년(1조424억원) 대비 3.5% 늘어난 1조785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영업이익은 30.0% 급증한 977억원을 기록했다. 올 상반기에도 전년 동기 대비 15.7% 늘어난 6079억원의 매출을 거뒀다. 조 사장은 “10~20년 뒤 동원시스템즈는 포장재 회사가 아니라 첨단 신소재 회사로 불릴 것”이라며 “앞으로도 공격적으로 새로운 사업에 도전하겠다”고 강조했다.
박종관 기자 pj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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