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에너지 정치 과잉이 부른 NDC 상향

입력 2021-10-24 17:16   수정 2021-10-25 00:31

최근 발표된 2050년 탄소중립 시나리오의 연장선상에서 2030년 우리나라의 ‘자발적 온실가스 감축목표(NDC)’ 상향이 논란이다. 오랜 기간 에너지정책 관련 분야에 몸담아온 사람으로서 탄소중립 시나리오는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수치의 근거와 현실성은 차치하고 미래 목표를 현재 시점까지 역추적해 도달 가능한 경로를 보여주는 ‘백 캐스팅 기법’으로는 우리가 안고 있는 제도적·기술적 애로 검토와 해소 방안 및 시기가 시나리오에 어떻게 반영됐는지 전혀 알 수 없다. 50년 시나리오는 30년 후 일이라 그렇다 치더라도, 그 연장선상에서 논의되고 있는 2030년 NDC 상향은 불과 10년이 남지 않았고 한 번 올리면 후퇴할 수 없기 때문에 신중히 생각해야 한다.

첫째, 국민 경제 측면에서 유럽 등 많은 선진국은 1990년부터 배출량이 줄어드는 내리막길이어서 약간의 가속 페달만 밟으면 감축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다. 반면 한국은 1990년부터 최근까지 거의 2.5배로 급증하는 추세였기 때문에 짧은 기간의 무리한 감축은 국민 경제에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전속력으로 달리는 자동차가 유턴을 위해 미리 속도를 줄이듯이 30년 감축 목표는 보수적으로 상향하고 당분간은 안정적인 감소추세로 전환하면서 감축에 필요한 기술 개발과 제도 정비에 주력해야 한다.

둘째, 한국 경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로서 매우 특이하게 경제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개발도상국인 중국과 비슷한 수준으로 매우 높다. 제조업 중에서도 제철, 화학, 정유 등 에너지 다소비 산업이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고, 이들 산업은 또 다른 주력 산업인 전자, 자동차, 조선 등과 소재적으로 연관돼 있다. 이들 산업의 설비효율성은 세계 최고 수준이고 획기적인 감축에 필요한 공정 전환 등의 신기술은 2030년 이후에나 가능하기 때문에 당장 수년 내 대폭 절감할 수 있는 방안이 없다.

셋째, 단일 산업으로 배출량이 가장 많은 전력산업은 이미 과거에 제출한 NDC 달성을 위해 작년 말 전력수급계획을 통해 석탄 설비의 40%에 달하는 물량의 조기 폐쇄와 가동 제약 그리고 가스발전으로의 전환이란 큰 부담을 떠안은 바 있다. 여기에서 현재 논의되는 NDC 목표가 40%로 상향되고 2030년까지 설계 수명이 완료되는 기존 원전을 계속 운전하지 않는다면 다시 석탄발전을 추가로 폐쇄하거나 가스발전으로 대체하는 방법밖에 없다. 석탄 설비 폐쇄 및 가동 제약에 따른 보상비용과 전기요금 부담은 차치하고, 석탄 설비의 추가적인 폐쇄나 가동 중지는 자칫 지역별 계통 불안정과 수급 위기를 유발할 수 있다.

따라서 2030년 NDC는 최대한 보수적으로 상향하고 2030~2050년 사이에 감축의 가속 페달을 밟는 것이 한국 경제에 부담과 충격을 줄이면서 안정적인 탄소중립을 도모할 수 있는 길이다. 탄소중립의 바이블로 불리는 국제에너지기구(IEA) 보고서(Net Zero by 2050)조차 감축 경로는 각국의 상황을 고려할 것을 언급한 바 있다.

그럼에도 보수 혹은 진보 정부 가릴 것 없이 감축 목표에 자꾸 무리수가 나오는 이유 중 하나는 5년 임기 정부가 한국 경제의 운명을 좌우할 에너지정책에 정치적으로 접근하기 때문이다. 필자가 지난 20여 년간 에너지 계획과 정책을 지켜보면서 깨달은 교훈이 하나 있다. 에너지 계획이 ‘과잉 정치화’될수록 내용은 ‘과소 전문화’되고, 특정 전원(원전이든 재생에너지든)에 대한 ‘정치적 확신’이 커질수록 ‘계획의 불확실성’은 증가한다는 점이다.

정치권의 진영 논리가 어제오늘 일이 아니고 에너지 문제 역시 ‘원전 올인’과 ‘탈원전’의 냉온탕을 오가면서 소모적인 정치 공방을 벌였으면, 이제는 차분히 머리를 맞대고 2030년 NDC 문제와 실사구시의 탄소중립 방안을 마련해야 할 시점이다. 정치 구호는 고작 5년이면 끝나지만 한국 경제는 안정적인 탄소중립으로 2050년까지 순항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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