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림동에 있는 한국경제신문사에서 약현성당 방향으로 150m가량 걷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작은 골목길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골목 왼쪽엔 국내 최초의 복도식 주상복합 아파트인 성요셉아파트가 있다. 서울 한복판에 무려 50년 된 한 동짜리 아파트를 보는 순간 묘한 낯섦이 느껴진다. 길 바로 건너편으로 눈을 돌리면 회색빛의 현대식 건물이 세월의 무게를 견디고 있는 아파트와 절묘하게 어울려 있다. 바로 ‘중림창고’다.
2018년 서울로 주변 도심재생사업의 대상지가 되면서 중림창고는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재창조됐다. 리모델링이 아닌 재건축이지만 옛 건물의 느낌과 색감을 여전히 남겨 둬 주변 풍경과 괴리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내부는 현대식 공간감에 힘을 준 설계로 세련된 느낌이 든다. 현재 동네 주민이 함께 쓰는 공공시설로, 또 동네 책방으로 사용되며 중림동의 새로운 명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중림창고는 길이 55m, 좁은 폭은 1.5m, 넓은 폭은 6m, 대지 고저 차 8m의 길가에 자리하고 있다. 얼핏 보면 하나의 독립된 건물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건물은 분절된 여러 개의 건물 조합으로 이뤄져 있다. 내부는 높은 공간, 낮은 공간, 2층으로 연결된 공간, 외부와 연결된 공간 등 여러 단위로 설계됐다. 설계를 맡은 강정은 에브리아키텍츠 소장은 골목길과 건물들 사이의 외부 공간을 단으로 채우는 데 신경썼다. 중림창고에 개방감을 불어넣고자 한 의도다. 이 단 때문에 지나가는 사람들이 편하게 오가면서 드나들 수 있다. 실제 주민들도 이곳을 마치 동네 거실처럼 이용하고 있다.
건물의 또 다른 특징은 건물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모두 보이도록 건물 1층마다 슬라이딩 도어를 설치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평상시 문을 열어두면 안과 밖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이렇게 위계를 없앤 건물은 평상시 인근 주민에게 휴식과 모임의 장소, 또 한시적으로 외부인이 찾을 수 있는 문화 공간으로 동네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건물을 반듯하게 짓지 않고 높이마다 모두 다른 형태로 지은 점도 주변과의 조화를 생각한 설계 포인트다. 여러 사람의 필요에 의해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들쑥날쑥한 경계와 삐죽삐죽 튀어나온 바로 앞 가게들과 어울리도록 한 것. 애초 폭이 좁은 공간에 지어졌기에 건물 내부 역시 좁다. 하지만 한쪽 끝에서 다른 한쪽 끝이 보일 만큼 깊이감을 가진다. 그 공간들은 각자 외부공간과 2층으로 동선이 수직으로 연결되고 또 끊어지고 다시 다른 방향으로 향한다.
건물 외관은 단순해 보이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단 한 곳도 같은 광경을 볼 수 없다. 시각적 다양함이 숨 쉬고 있는 건물이다. 중림창고는 지난해 ‘한국건축문화대상 준공건축물 부문 우수상’과 ‘서울시 건축상 최우수상’을 받았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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