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이코노미] '내실' 못 갖춘 스타트업…팬데믹 후 한계 드러날 것

입력 2021-11-01 09:01  


가짜 혁신은 시장 교란의 출발점이다. 많은 경우 기존 기업들이 기술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면서 시장 교란이 시작된다. 제품에 실질적인 가치 증가와 무관한 기능을 추가하거나 비용 절감 효과나 편의를 제공하지 않는 회원제 클럽을 신설하는 전략, 온라인 예매가 현장보다 복잡한 영화관 시스템, 교육자원이 아닌 고급 숙박 시설에 투자하는 대학 등의 형태로 나타난다. 이는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한 시점에 위험과 비용을 감수하고 싶지 않은 경영진이 내리는 민간요법과 같은 처방이다.
신생기업의 시대
기존 기업이 기술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품질과 가치를 높이지 못하면 핵심사업이 위태로워진다. 신생기업은 그 틈을 파고든다. 과거에는 그 속도가 빠르지 못했다. 자본을 공급하는 측과 경영진 사이에 힘의 균형이 존재했던 탓이다. 1990년대에는 기술 스타트업의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는 환영받지 못했다. 원대한 비전을 품은 엉뚱한 백인 청년들은 결국 회사 확장을 위해 데려온 나이 들고 노련한 경영자에게 밀려났기 때문이다. 젊은 날의 스티브 잡스가 애플을 설립한 지 5년 만인 1985년 회사에서 쫓겨난 일화는 유명하다. 엉뚱한 백인 청년들로부터 시작된 아이디어는 덜 괴팍한 백인 남자들의 자본으로 확장됐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이 되자 힘의 균형추는 창업자들로 기울기 시작했다. 그 중심에는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가 있었다. 5년 만에 애플 컴퓨터를 6억달러 가치로 키운 스티브 잡스는 괴팍하고 변덕이 심하다는 이유로 쫓겨났지만, 돌아온 뒤 20년간 애플의 가치는 200배나 증가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인 빌 게이츠 역시 자기 회사 가치를 1000억달러까지 늘릴 수 있다는 걸 증명했다. 이후 14년 만에 6000억달러짜리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뉴욕대 스턴경영대학원의 스콧 갤러웨어 교수는 그의 책 《거대한 가속》에서 1985년 실리콘밸리에는 세상을 바꿀 아이디어를 가진 천재가 가득했으나 자본을 구하기 어려웠고, 2005년에는 진정한 천재는 없는 반면 이용 가능한 자본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고 설명한다.
성장 위주의 전략 추구
엄청난 자본으로 기업들은 성장 위주로 전략 수립이 가능해졌다. 손해를 보면서까지 제품 판매를 늘려 시장점유율을 높이는 전략이 유효했다는 의미다. 높은 시장점유율은 저렴한 자본에 접근할 수 있는 전제조건이 됐다. 성장 위주의 전략으로 회사의 가치평가액을 높이고, 이를 바탕으로 후속투자를 유치해 자본을 늘렸다. 이런 방식으로 민간 자본을 확보한 기업들은 상장 전에 계속 적자를 기록하며 몸집을 키울 수 있었다. 이는 유니콘 기업의 등장 배경이기도 하다. 굳이 상장할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유니콘 기업은 상장 전에 기업가치를 10억달러로 인정받은 기업을 의미한다. 넘쳐나는 자본 유입 덕분에 상장 없이도 민간자본을 끌어올 수 있게 되자 1996년부터 2016년까지 미국의 신규 상장사 수는 88% 감소했고, 기업이 상장하기까지 평균 3년이 걸리던 20년 전과는 달리 오늘날 그 기간은 8년으로 증가했다.

카리스마 있는 창업자가 많아진 것도 같은 맥락이다. 풍부한 자본과 부족한 재능이 결합하면 강력한 창업자는 기업 자산이 된다. 자본을 유치할 때도, 직원을 끌어모을 때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들은 회사의 견실한 요인을 소개하기보다 매력적인 이유를 설명하는 데 치중한다. 이를 통해 투자자의 주의를 다른 데로 돌리는 데 성공하지만, 성장을 이루면서 동시에 지출보다 수익이 많은 기업을 만드는 게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것은 머지않은 미래에 드러나고 만다.
내실 위주의 전략 재편 필요
오늘날처럼 자본이 풍부하면서 자리를 잘 잡은 신생기업이 많은 시기는 없었다. 문제는 많은 경우 성장과 이윤을 위한 계획이 없다는 점이다. 이들의 성장은 진정한 차별화가 아닌, 기존기업의 타성 덕분에 기회를 얻은 경우가 많다. 풍부한 자본 덕분에 시장에서 명맥은 유지하고 있지만, 스타트업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수많은 기업이 존재하는 이유다.

자본은 움직이는 재산이다. 굴러가지 않으면 생명력을 잃어버린다. 지금까지 자본은 유니콘을 찾아 사방을 돌아다녔다. 그러다 어디에도 유니콘이 보이지 않자 뿔이 없어도, 그리고 날 수 없어도 유니콘이 될 수 있다며 평범한 말을 억지로 유니콘이라고 믿어버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팬데믹 위기 속에 이런 믿음은 더 이상 지속되기 어렵다. 변화된 다양한 상황이 기업가치 평가를 내실 위주로 바꿔 놓을 것이라는 의미다. 이미 혁신기업으로 인정받아 상장된 기업들일지라도 높은 가치를 유지하지 못하는 기업이 많다. 기존 기업의 타성과 신생기업의 매력에 가려졌던 비즈니스 모델과 기업이 영업활동으로 벌어들인 현금창출 능력을 나타내는 지표인 EBITDA 같은 실적을 다시 정비해야 할 시점이다. 될 때까지 그런 척한다고 해서 실제로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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