辛의 '외부수혈' 충격 요법…"롯데, 온라인·글로벌 중심 대변혁"

입력 2021-11-25 17:45   수정 2021-11-26 00:46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사진)이 25일 단행한 정기인사를 통해 그룹 전반에 대한 대대적 쇄신 의지를 드러냈다. 43년 롯데쇼핑 사사(社史)에서 단 한 번도 예외가 없던 내부 발탁 관행에 과감히 메스를 가한 것이다. 30년 ‘P&G맨’이자 홈플러스 대표 출신인 김상현 신임 대표의 선임은 그만큼 파격적이다. 더 이상 ‘순혈주의’로는 변화를 꾀할 수 없다는 절박감을 반영한 인사로 풀이된다. 쇼핑 명가로서 롯데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신 회장이 충격 요법을 꺼냈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파격 인사로 혁신 주문한 신동빈
신 회장의 파격 인사가 의도하는 바에 대해 롯데 관계자는 “읍참마속(泣斬馬謖: 사사로운 감정을 버리고 기강을 세우는 일)의 심정일 것”이라고 표현했다. 창업주 시절부터 롯데를 쇼핑 1위 기업으로 만든 이들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게 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에서다. 롯데쇼핑 내에선 강희태 부회장의 후임에 외부 전문가가 선임되자 “충격적”이라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롯데쇼핑은 올 3분기(연결 기준) 매출 4조66억원, 영업이익 289억원을 거뒀다. 각각 전년 동기 대비 2.4%, 73.9% 감소했다. 쇼핑 라이벌인 신세계가 같은 기간 역대 최고 실적을 거둔 것과 대조적이다. e커머스에선 쿠팡이 3분기에 전년 동기 대비 48% 증가한 46억달러(약 5조2000억원) 매출을 기록했다.

유통 사업군의 부진에 대해 롯데그룹 내에선 ‘잃어버린 5년’을 언급하곤 했다. 중국의 한한령으로 중국 사업이 타격을 받고, 중국 관광객이 급감한 탓이라는 것이다. 코로나19도 원인으로 지목됐다. 하지만 신세계, 현대백화점, 네이버 쇼핑, 쿠팡, 마켓컬리 등 경쟁사는 위기를 기회로 활용했다. 그 사이 롯데쇼핑은 더 이상 물러나기 어려운 벼랑 끝에 섰다는 게 중론이다.
백화점 대표엔 ‘신세계맨’을 선임

신 회장은 지난달 롯데지주에 디자인경영센터를 신설하고 신임 센터장(사장)에 배상민 KAIST 산업디자인학과 교수를 임명했다. 그룹 안팎에선 파격적인 이번 정기인사를 예고한 첫 신호탄이었다는 해석이 나온다. 신 회장과 나란히 롯데월드타워 18층에 집무실을 마련한 배 센터장의 표면적 임무는 “롯데가 애정을 쏟아부은 점포가 한데 모인 롯데월드타워부터 디자인 혁신을 해보자”는 것이다. 하지만 신 회장은 배 센터장에게 조직 진단을 위한 암행 역할도 맡긴 것으로 알려졌다. 선입견을 완전히 배제한 외부 전문가에게 롯데의 민낯을 들으려 한 것이다.

김 신임 유통 사업군 총괄대표는 오프라인 중심의 롯데쇼핑을 온라인, 데이터, 글로벌 중심으로 환골탈태시키는 임무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P&G에서 마케팅 전문가로 명성을 쌓아온 데다 신규 사업을 위한 조직 재편에도 특화돼 있다는 게 김 신임 대표에 대한 대체적인 평가다. 홈플러스 대표(부회장) 시절엔 140여 개 전국 매장을 한 곳도 빠짐없이 점검하며 디지털 전환을 이끌었다.

새로운 수장의 임명과 함께 롯데쇼핑 내 백화점, 대형마트, 편의점, e커머스 플랫폼(롯데온) 등에 대한 혁신 작업이 이뤄질 전망이다. 백화점 부문만 해도 신세계 출신인 정준호 롯데GFR 대표가 내정됐다. 정 신임 대표는 신세계인터내셔날 해외패션본부장, 조선호텔 면세사업부장 등을 지낸 ‘신세계맨’이다. 아르마니, 몽클레르, 돌체앤가바나 등 30여 개 해외 유명 브랜드의 국내 유치에 성공한 명품 브랜드 전문가로 꼽힌다. 롯데쇼핑 관계자는 “롯데백화점은 최근 2000명을 대상으로 명예퇴직 신청을 받아 이 중 500명이 퇴사하는 등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라며 “롯데마트도 점포의 20%를 철수하는 등 새로운 도약을 위한 준비를 착실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신임 대표가 넓은 글로벌 시야를 갖고 있는 만큼 롯데쇼핑이 약 3조원의 실탄을 바탕으로 국내외에서 활발한 인수합병(M&A) 전략을 전개할 것으로 예상된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유명 브랜드를 여럿 보유한 해외 패션 기업 인수를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패션, 뷰티, 명품, 새벽배송 플랫폼 등 특정 분야를 깊이 파고든 유통 스타트업도 롯데쇼핑의 M&A 후보 목록에 올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국내 온·오프라인 유통업계 경쟁이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치열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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