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성지에서 만나는 동방정교회 '이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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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1-12-01 18:15   수정 2021-12-01 23:38

한국 최대 천주교 성지에 자리잡은 박물관에 동방정교회의 국보급 성화(聖畵)가 걸렸다. 지금은 두 교파가 형제 같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상호 파문과 분열의 아픈 역사를 감안하면 이례적인 일이다.

서울 중림동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에서 국내 최초의 대규모 이콘전 ‘러시아 이콘: 어둠을 밝히는 빛’이 열리고 있다. 15~19세기에 제작된 러시아정교회의 성화(이콘화) 57점과 이콘조각 9점, 성물 14점 등 총 80점을 내년 2월 27일까지 소개하는 전시다. 한·러 수교 30주년을 기념한 ‘2020-2021 한·러 상호교류의 해’를 계기로 러시아 모스크바에 있는 러시아이콘박물관과 협력해 특별기획전을 마련했다. 박물관 소장품은 물론 개인 소장품까지 빌려 왔다.

그리스어 ‘에이콘(eikon)’에서 유래한 ‘이콘’은 형상 또는 모상을 뜻하는 말로, 성경 속 인물과 관련 이야기를 상징적으로 묘사한 그림이나 조각이다.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을 위해 성서의 내용을 그림으로 읽도록 제작했다고 한다.

정교회에서 주로 그리기 때문에 정교회 교세가 크지 않은 국내에서는 볼 기회가 드물지만, 이콘은 러시아 근현대 예술의 근간을 이루는 중요한 원천 중 하나로 꼽힌다. 형태의 왜곡, 역원근법, 이미지 중첩과 병렬 등 이콘이 내포한 탈구상적 기법과 색채 상징이 칸딘스키, 말레비치 등 근현대 화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는 것. 이번 전시의 예술감독인 김영호 중앙대 미술학부 교수는 “이콘은 동토 러시아와 러시아인의 척박한 삶을 비추는 불빛이자 러시아 문화의 중심”이라며 “농부의 집에서 차르의 궁전까지 러시아인이 머무는 삶의 공간에는 모두 이콘화가 걸려 있었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러시아 이콘의 황금기인 15세기부터 새로움과 전통이 공존하는 17세기, 다양한 사조와 양식이 어우러진 18~19세기까지 시대별로 작품을 펼쳐 이콘의 발전 및 변화 과정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도록 했다. 16세기 말 왼손에 성(城)을, 오른손에는 칼을 들고 당당하게 서 있는 니콜라오 성인을 그린 이콘이 눈에 띈다. 국내에서는 산타클로스의 유래가 된 성인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러시아에서는 공격당하던 도시를 구한 일화로 더 유명하다고 한다. 박물관 부관장인 사승환 신부는 “러시아에서는 니콜라이 성인을 수호성인으로 아주 특별하게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유례없는 대규모 이콘전이 왜 천주교 성지에서 열릴까. 서소문성지는 천주교뿐 아니라 유학 이외의 다른 종교 신도도 많이 목숨을 잃은 곳이다. 따라서 종교를 떠나 감동을 주는 작품을 전시해 화합을 도모하겠다는 게 박물관장인 원종현 신부의 말이다. 지난 4~6월 전남 구례 화엄사에서 빌려온 ‘화엄사영산회괘불탱’ 등 불교 미술을 전시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원 신부는 “이웃 종교인 동방정교회의 이콘을 통해 하나였던 초기 교회의 전통을 확인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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