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여반장'과 '적반하장'

입력 2021-12-02 17:23   수정 2021-12-03 00:13

맹자의 제자 공손추가 “스승께서 제나라 요직에 오르면 옛날 명재상 관중과 안자가 이룬 공적을 다시 일으킬 수 있으십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맹자는 기름진 땅을 가진 대국의 왕 노릇은 “손바닥 뒤집듯 쉬운 일”이며, 그런 조건에서도 왕도정치를 제대로 펴지 못한 건 “재상들의 한계”라고 지적했다. 여기에서 여반장(如反掌·손바닥 뒤집듯 쉽다)이란 고사성어가 나왔다.

반(反)은 ‘뒤집다’와 함께 ‘되돌리다’란 뜻도 갖고 있다. 적반하장(賊反荷杖)이 대표적이다. ‘도둑(賊)이 되레 몽둥이(杖)를 든다’는 뜻으로, 잘못한 사람이 도리어 성내며 잘한 사람을 나무라는 것을 말한다. ‘방귀 뀐 놈이 성낸다’ ‘문비(門裨·정초 대문에 붙이는 그림)를 거꾸로 붙이고 환쟁이(화가)만 나무란다’는 속담과 같다.

우리말에는 ‘되술래잡다’는 표현이 있다. ‘순라(巡邏)’가 도둑을 잡는 데서 비롯된 전통놀이 술래잡기에서 도둑이 술래를 잡으면 놀이판의 원칙이 무너진다.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책임전가(責任轉嫁), 손님이 주인 행세를 하는 주객전도(主客顚倒)와 비슷하다.

내게 책망을 들어야 할 사람이 오히려 나를 책망하는 아가사창(我歌査唱)도 이와 같다. 평화를 이야기하고 뒤에서 전쟁을 준비하는 화전양면(和戰兩面) 전술은 또 어떤가. 북한이 화해 제스처를 쓰다가 무력도발을 벌이며 “남조선과 미국 탓”이라고 생떼를 쓰는 게 이런 경우다. 가해자가 피해자 흉내를 내며 역공에 나서는 피해자 코스프레 사례도 즐비하다.

대선판의 여반장과 적반하장 행태는 민망함을 넘어 낯이 뜨거울 정도다. 집권 여당의 대선 후보부터 공약과 정책을 뒤집는 여반장 행보를 거듭하고 있다. 전 국민 재난지원금과 국토보유세 도입에 반대하는 건 “부패정치 세력에 놀아나는 바보짓”이라고 몰아붙이다가 반대 여론이 높자 금세 태도를 바꿨다. 각종 의혹 사건과 관련해서는 여야 구분 없이 적반하장론을 펴고 있다.

정치인이 정책을 손바닥(掌) 뒤집듯 하고 말을 몽둥이(杖)처럼 휘두르면 민심이 떠난다. 책임을 외면하고 신뢰를 잃으면 ‘왕 노릇’도 물 건너간다. 맹자는 권력의 유혹이나 사사로운 감정에 흔들리지 않는 ‘부동심(不動心)’을 국가 경영의 첫 덕목으로 꼽았다. 공자도 ‘불혹(不惑)’을 강조했다. 25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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