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통과 늦춘 복병은 경항모…삭감 합의했던 與 '원안' 밀어붙여

입력 2021-12-03 17:24   수정 2021-12-04 00:26


내년 예산안이 법정 시한을 하루 넘겨 국회를 통과하게 한 ‘복병’은 소상공인 손실 보상도, 지역화폐도 아닌 경항공모함이었다. 소관 상임위원회가 여야 합의로 대폭 삭감한 경항모 예산을 더불어민주당이 다시 늘려야 한다고 갑자기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경항모가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 말 숙원사업’이었다는 점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국회는 3일 본회의를 열어 607조7000억원 규모 내년도 예산안을 처리하면서 한국형 경항모 도입 관련 예산을 정부 제출 원안(72억원)대로 확정했다.

항모는 배수량에 따라 경항모(1만~3만t), 중형항모(4만~7만t), 대형항모(8만~10만t)로 분류된다. 한국형 경항모 도입 사업은 2033년까지 총 2조6000억원을 들여 배수량 3만t급 항모를 건조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해군은 1990년대부터 ‘대양 해군’을 기치로 경항모 도입을 추진해왔다. 해군 관계자는 “경항모는 10대 이상(전문가 추산 최대 20대)의 공군 전투기가 탑재돼 전쟁 양상을 바꿀 수 있는 ‘게임 체인저’”라며 필요성을 강조했다.

정부가 지난 9월 국회에 제출한 내년도 국방예산안에는 경항모 사업 비용으로 기본설계 착수금 62억4100만원, 함재기 자료와 기술지원비 8억4800만원, 간접비 9900만원 등이 포함돼 있었다.

국회 국방위원회의 경항모 예산 심사는 7인으로 구성된 예산심사소위원회에서 이뤄졌다. 예산소위는 민주당 의원 4인, 국민의힘 의원 3인으로 구성됐다. 소위원장은 기동민 민주당 의원이다. 예산안 논의에서 여당이 우위인 구조다.

하지만 지난달 12일 예산심사가 시작되자 육군 중장 출신인 신원식 국민의힘 의원은 “경항모는 군사전략과 작전 측면에서 실익이 전혀 없는 ‘돈 먹는 하마’에 불과하다”며 강력히 반대했다. 소위 위원인 여당 중진 의원들도 이에 동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5선의 설훈 의원은 “해군 입장을 존중하지만 서둘러서 될 일은 아니다”고 거들었다. 친문(친문재인) 핵심으로 꼽히는 4선의 홍영표 의원조차 “경항모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함재기를 F-35B로 하는 건 반대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기 의원은 “해군으로서는 예산이 반영되기를 희망했지만 이 정도면 크게 가는 방향성은 잡을 수 있다”며 예산 삭감을 결정했다. 여당 내 ‘경항모 찬성파’인 안규백 의원 등은 예산소위 소속이 아니라 의견을 내지 못했다. 결국 국방위는 지난달 16일 전체회의를 열어 이 예산에서 5억원의 간접비만 남기고 나머지 67억원(93%)을 삭감했다.

정치권에선 “경항모 도입을 문 대통령이 적극 지지해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폭 삭감은 이례적인 일”이라는 말이 나왔다. 문 대통령은 지난 3월 ‘서해 수호의 날’ 기념식에서 “2033년 모습을 드러낼 3만t급 경항모는 우리 조선 기술로 건조될 것”이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여당 지도부에서도 “문 대통령 공약인 경항모 예산이 대폭 삭감되는 것은 공약 후퇴 등으로 비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국방위 여당 의원실에는 항의하는 전화가 쇄도한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경항모 예산 복구를 위해 청와대 정무라인과 여당 지도부 사이 ‘핫라인’이 움직였다.

민주당이 국방위 합의를 뒤집으려고 시도하자 국민의힘은 “3개월도 안 남은 정권이 대못을 박으려고 한다”며 강력 반발했다. 결국 여야가 합의안을 마련하는 데 실패하면서 경항모 예산은 정부 원안(72억원) 그대로 내년 예산안에 반영됐다.

오형주/문혜정 기자 oh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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