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만원대 막걸리 시대…우리술에서 위스키의 향이 난다 [명욱의 호모마시자쿠스]

입력 2022-01-06 16:52   수정 2022-01-13 16:21

작년 가을 주류업계를 떠들썩하게 한 뉴스가 있었다. 출고가 11만원짜리 국내 최고가 막걸리가 나왔다. 제품명은 ‘해창 롤스로이스’. 해남의 유기농 쌀로 만든, 알코올 도수 18%짜리 막걸리다. 일반 막걸리(6%)에 비해 세 배 높다. 발효·숙성 기간도 두 달 이상으로 일반 막걸리(1~2주)에 비해 훨씬 길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었다.

반응은 극과 극이었다. 겉보기에 1000원대 막걸리와 큰 차이가 없는 디자인 때문이었다. 그저 관심을 끌기 위해 롤스로이스란 럭셔리카 이름을 빌려 대충 제조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하지만 곧 ‘맛이 다르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계 모임까지 만들어 구매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인생 막걸리’로 인스타그램에 소개하기도 했다. 이 제품은 현재 ‘해창 18도’로 이름을 바꿨다.

최근 더 높은 가격의 막걸리가 출시됐다. 소비자가 19만원짜리 ‘서울 골드’(사진)다. 방배동 가양주 연구소가 운영하는 서울 양조장에서 출시한 제품으로 보은의 삼광미로 월 100병만 생산한다. 오양주법으로 다섯 번 빚어 100일 저온 숙성하고, ‘설화곡’이라는 눈꽃처럼 흰 쌀누룩을 쓰는 것이 특징이다. 설화곡 중에서도 5월과 10월에 나온 가장 좋은 설화곡을 선별해 발효, 숙성한다. 마치 위스키에서 가장 좋은 오크통의 원액만 사용하는 ‘스몰 배치(Small Batch)’와 닮았다. 알코올 도수는 15%다.

두 제품의 공통점은 추가로 물을 넣지 않은 원액이란 것이다. 알코올 도수가 높은 이유다. 위스키에서는 이런 제품을 ‘캐스트 스트렝스(Cask Strength)’라고 부른다. 희석하지 않은 맛이다. 원재료 맛을 숨기는 인공 감미료도 전혀 넣지 않았다. 대량 생산하기 어려운 이유는 모두 소규모 양조장에서 만들기 때문이다. 매출을 끌어올리기보다는 전통주 맛과 향, 철학을 알리는 데 중점을 둔다.

해당 제품을 모두 마셔봤다. 일단 모두 기존 막걸리와 맛이 확연히 다르다. 해창 18도는 목넘김이 묵직하고 알싸한 술맛이 있다. 너무 묵직해서 식감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농밀하다. 여기에 쌀 특유의 담백함과 구수한 단맛이 녹진하게 녹여져 있다. 맑은 가을날 황금빛 평야의 풍광이 떠오르는 맛이다. 해창 18도가 드넓은 자연 풍광이 느껴진다면 서울 골드는 도심의 멋진 미술관과 같은 조형미가 있다. 역시 농밀하지만 실키한 부드러움과 매끈한 단맛이 가득하다. 풍성한 과실향과 꽃향은 잘 가꿔진 수목원에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인간이 잘 가꾼 자연의 모습이다.

어떤 이는 말도 안 되는 막걸리 가격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스스로 우리 것에는 인색한 가치를 매겨오지는 않았을까. 1000원짜리 막걸리에 실컷 웃을 수도 있지만 고급 막걸리도 천천히 느끼고 감상할 수 있도록 시장이 확대되기를 기대해본다.

명욱 세종사이버대 바리스타&소믈리에학과 겸임교수
주류 인문학 및 트랜드 연구가. 숙명여대 미식문화최고위 과정, 세종사이버대학교 바리스타&소믈리에학과 겸임교수. 저서로는 ‘젊은 베르테르의 술품’과 ‘말술남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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