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생건, 부메랑이 된 '따이궁 전략'…하룻새 시총 2.3兆 증발

입력 2022-01-10 17:29   수정 2022-01-18 15:13

국내 주식투자자 사이에서 LG생활건강은 ‘믿을맨’으로 통했다. 럭셔리 브랜드 ‘후’를 앞세워 중국 화장품 시장을 장악한 LG생활건강의 실적이 뒷걸음질친 건 2005년 이후 세 번뿐이었다. ‘실적과 모멘텀’의 함수인 주가는 2001년 상장 이후 쭉 우상향 곡선을 그렸다.

10일 LG생활건강의 급락(13.41%)은 투자자에게 충격을 안겼다. 시가총액은 하루 만에 2조3000억원이 날아갔다. 업계에선 LG생활건강이 펼쳤던 ‘따이궁(중국인 보따리상) 활용 전략’이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고 분석했다. 중국 화장품 시장이 고성장할 때 제품 판매의 일등 공신 역할을 했던 따이궁이 시장이 둔화세에 접어들자 지나친 할인율을 요구하면서 4분기 실적이 기대치를 밑돌았기 때문이다.
악재로 돌아온 ‘따이궁 판매전략’
LG생활건강과 아모레퍼시픽은 중국 시장을 공략하면서 비슷한 ‘럭셔리 마케팅’을 펼쳤다. 그러나 판매 전략은 전혀 달랐다. 중국 소비자들은 따이궁이라 불리는 보따리상을 통해 한국 화장품을 구입한다. 아모레퍼시픽은 면세점 채널에서 따이궁이 구매할 수 있는 설화수 제품 개수를 제한했다. 대량 구매를 막기 위해서였다. 백화점을 주력 유통 채널로 삼기 위한 럭셔리 브랜드 관리 전략의 일환이었다. 반면 LG생활건강은 구매제한을 전혀 두지 않았다. ‘수요가 있는 곳엔 반드시 공급해야 한다’는 차석용 부회장의 경영원칙 때문이었다. LG생활건강의 ‘후’가 선발주자였던 아모레퍼시픽의 ‘설화수’를 뛰어넘을 수 있던 중요한 비결이었다.

그러나 중국 시장을 장악하는 데 일조했던 ‘따이궁 전략’은 악재가 돼 돌아왔다. 이날 7개 증권사는 일제히 LG생활건강의 목표 주가를 하향하면서 면세 채널의 화장품 매출 부진을 지난해 4분기 어닝쇼크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지난해 12월 따이궁이 LG생활건강의 주요 화장품에 대한 가격 할인율을 높여달라고 요구했고, 브랜드 이미지 하락을 우려한 LG생활건강이 이를 수용하지 않은 게 실적 악화로 이어진 것이다.

이날 삼성증권은 LG생활건강의 지난해 4분기 매출이 전년 대비 1% 줄어든 2조700억원, 영업이익은 9% 감소한 2329억원을 기록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면세 채널의 매출이 전년 대비 6% 줄어들면서 화장품 사업부문의 전체 매출도 전년 대비 7% 감소한 1조2300억원에 그쳤을 것으로 내다봤다.
둔화하는 중국 화장품 시장
따이궁이 제품의 할인율을 높여달라고 요청한 데 대해 업계에선 “더 싸게 가져가지 않으면 이윤이 줄어드는 상황에 직면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국내 글로벌 화장품 업체들은 최근 중국 시장의 성장세 둔화와 한국 제품에 대한 수요 감소라는 두 가지 악재를 동시에 맞닥뜨렸다. 지난해 1분기 약 40%를 기록했던 중국 화장품 소매판매 증가율은 7월 이후 8%대에 머물고 있다. 7월 이후 중국 경기가 급격히 둔화된 영향이다. ‘위드 코로나 정책’으로 선회한 다른 선진국과 달리 ‘제로 코로나’ 정책을 유지하면서 경제활동을 억누르고 있는 것도 영향을 미쳤다.

중국 내에서 ‘K뷰티’ 위상도 예전같지 않다. 중국의 MZ세대(밀레니얼+Z세대) 사이에서는 ‘화시즈(花西子)’ 등 자국 제품을 선호하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 ODM(제조업자 개발생산) 업체와 손잡고 중국 트렌드에 민감한 화장품을 쏟아내는 중국 로컬 기업이 늘어나면서다.

반면 럭셔리 시장에선 랑콤 등 글로벌 명품 브랜드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기초화장품 시장 점유율 상위 10개 브랜드 가운데 한국 화장품 브랜드는 한 개도 없었다.

중국 화장품 시장의 성장성에 의구심이 커지면서 LG생활건강 주가도 당분간 하락 흐름을 보일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박은경 삼성증권 수석연구위원은 “코로나19, 중국 경제 성장 둔화 등 외부 경제 상황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아질 땐 주가가 크게 하락해도 섣불리 ‘과도한 하락’이라고 판단하기 어렵다”며 “중국의 내수 부양 정책이나 위드 코로나 정책 시행 여부가 화장품 주가의 새로운 모멘텀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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