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현실·초월 화두로 자아성찰…"삶의 상처 치유하는 철학 담아"

입력 2022-01-17 18:00   수정 2022-01-18 00:22

삶은 방황의 연속이다. 나이가 들어도, 아무리 지혜로워져도 방황과 좌절은 좀체 끝나지 않는다. 올해 등단 48년을 맞은 이태수 시인은 18번째 시집 《담박하게 정갈하게》(문학세계사)에서 황량한 세계에 던져진 실존적 처지와 그 고뇌를 시로 읊는다.

이번 시집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길’과 관련한 모티프다. ‘길을 가다가 왜 이 길로 가고 있지,/라고 스스로 묻게 될 때가 있다/멈춰서서는 가지 않으면 어쩔 테지,/라고 다시 되묻게 될 때도 있다/가려고 하는 곳이 분명히 있더라도/가다가 안 가고 싶을 때가 있다/가고 싶지 않은 곳이었는데 불현듯/나도 몰래 가고 있을 때도 있다’(‘길과 나 1’ 중)

아픔과 불안, 방황과 좌절이 공존하는 실존적 상황에서 시인은 자신이 걸어가는 길을 통해 존재의 모순과 부조리를 강하게 느낀다. 이는 인간에게 주어진 운명적이고 근원적인 불합리다. 이에 대한 시인의 응답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다. 괴로워하면서 저항하기보다는 이것이 자연의 순리임을 받아들인다. ‘구름이 가고 배가 가고, 나도 간다/강물은 하염없이 아래로만 간다’(‘나도 간다 2’ 중)

시인은 코로나19로 더욱 심해진 인간 소외와 단절을 안타까워한다. ‘사람과 사람은 이제/서로 못 믿어 멀어지는 사이입니다’(‘입 막고 코 막고’)라거나 ‘보이지 않는 공포에 시달리다 지쳐/분노의 무기로 바뀐 이들도 있습니다’(코로나 레드)라고 했다. 이런 지친 마음을 위로해주는 것은 자연이다. ‘상처가 깊은 마음을 추스르면서/한참 나를 들여다보고 있노라면/소나무 그늘이 나를 품는다’(‘소나무 그늘’ 중)

1947년생으로 일흔이 훌쩍 넘은 시인은 2018년 《거울이 나를 본다》부터 이번 《담박하게 정갈하게》까지 최근 들어 매년 한 권씩 신작 시집을 내고 있다. 시집에 해설을 실은 이진엽 시인은 “가열된 창작 의지와 활기 넘치는 필력도 놀랍지만, 지난해에 이어 1년 만에 다시 세상에 선보이는 이 시집에는 시대와 세인들로부터 받은 상처를 시인 스스로 꿰매며 치유하는 삶의 철학이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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