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세 느뵈가 절정의 기량 뿜어낸, 브람스·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

입력 2022-03-17 16:46   수정 2022-03-18 02:50

지휘자 귀도 칸텔리, 피아니스트 윌리엄 카펠, 바이올리니스트 자크 티보, 지네트 느뵈…. 이들 거장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모두 비행기 사고로 최후를 맞았다는 거다.

1919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난 느뵈는 음악적 DNA를 지닌 천재였다. 종조부가 오르간 거장 샤를 마리 비도르였고, 어머니는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첫 스승이었다. 다섯 살 때 바이올린을 시작한 느뵈는 일곱 살 때 브루흐 바이올린 협주곡 1번으로 데뷔했고 열한 살 때 파리 국립음악원을 졸업했다. 15세이던 1935년에 제1회 비에냐프스키 콩쿠르에 도전해 1위에 올랐다. 당시 느뵈에게 밀려 2등을 한 연주가가 저 유명한 다비드 오이스트라흐였다.

1947년 11월 느뵈는 카네기홀에서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하면서 미국 뉴욕 무대에 화려하게 데뷔했고 1948년 10월에는 바비롤리가 지휘하는 할레 관현악단과 시벨리우스 협주곡을 연주했다. 바비롤리는 “이자이와 크라이슬러의 후계자로 운명 지워질 바이올리니스트”라는 찬사와 함께 다음 공연을 약속했지만 그것이 느뵈의 마지막이었다.

세 번째로 미국 연주 여행에 초대돼 1949년 10월 28일 파리를 출발해 미국으로 가던 도중 그녀를 태운 프랑스 여객기가 짙은 안개를 만나 아조레스 제도의 봉우리와 충돌해 추락했다. 생존자는 없었다. 30세의 나이였다. 느뵈의 동생이자 반주자였던 피아니스트 장 느뵈, 에디트 피아프의 애인이었던 복싱 챔피언 마르셀 세르당,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도 같은 운명을 맞았다.

녹음이 남아 그녀를 추억할 수 있음은 다행이다. 큰 키에 운동선수처럼 다부졌던 느뵈는 베토벤 협주곡과 브람스 협주곡 등에서 남성을 능가하는 힘과 공격적인 질주를 들려줬고, 프랑스 레퍼토리에서는 섬세한 색채감을 표현할 줄 알았다.

실황 연주의 불같은 열기가 큰 인기를 얻었지만 여기 브람스와 시벨리우스 등 런던 애비로드 스튜디오에서의 두 협주곡 녹음은 느뵈의 본령이다. 1946년 브람스 녹음은 러시아 출신 이자이 도브로벤이 뜨겁고 치열하게 불타오르는 느뵈의 동반자로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를 이끈다. 1945년 시벨리우스 녹음은 체코 출신이며 조지 셸의 제자인 발터 쥐스킨트가 이끈다.

연주 투어로 바빴던 느뵈는 단 하루 시간을 낼 수 있었고 그녀의 스튜디오 첫 경험이었다.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의 첫 메이저 녹음이자 쥐스킨트의 첫 인터내셔널 녹음이었다. 서먹함을 느낄 수 없는 느뵈의 힘과 기교는 아름답게 빛을 발한다. 바이올리니스트들이 보통 시벨리우스 3악장에서 스태미너가 떨어지는 경우를 많이 보는데, 해석의 교과서 같은 느뵈의 연주를 참조해야 할 것이다. 두 녹음 모두에서 20대 중반 젊은 느뵈의 명연주는 스테레오 시대 이전 열악한 녹음을 뚫고 찬란하게 비상한다.

류태형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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