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손 피아니스트'가 연주한 쇼팽 녹턴…그녀처럼 우아하면서 슬프다 [류태형의 명반 순례]

입력 2022-03-31 17:10   수정 2022-04-01 01:55

쇼팽이 ‘피아노의 시인’으로 불리는 이유가 있다. 첼로 소나타나 가곡 등을 빼면 피아노를 위한 작품이 압도적으로 많아서다. 협주곡, 소나타, 연습곡, 스케르초, 녹턴, 발라드, 전주곡, 폴로네즈, 마주르카, 왈츠 외에도 즉흥환상곡, 뱃노래, 에코세즈 등이 모두 피아노곡이다.

이 많은 피아노곡 가운데 입문용으로 ‘녹턴’을 추천한다. 이탈리아어인 ‘노투르노’, 우리나라에선 ‘야상곡’으로도 소개된 녹턴은 원래 18세기 저녁 파티 때 주로 연주된 곡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음악 양식으로서 녹턴의 선구자는 아일랜드 작곡가 존 필드(1782~1837)다. 피아노 성격 소품을 묘사하는 데 녹턴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다. 노래하는 듯한 성격을 특색으로 삼는 우아하고 서정적인 소품이다.

존 필드가 1814~1836년 녹턴을 작곡한 이후 1830~1831년에 쇼팽이 녹턴의 첫 부분인 Op.9를 썼다. 필드가 불러낸 분위기가 아직 감정적인 부분에 머물렀다면 쇼팽은 흥미롭게도 극적인 열정을 강렬하게 그려냈다.

쇼팽은 모두 21곡의 녹턴을 남겼다. 번호가 부여된 19곡과 1830년께 작곡한 녹턴 C샤프 단조와 C단조 등 두 개의 유작이 있다. 섬세하고 우아하며 낭만적인 이미지를 풍긴다. 감미롭고 로맨틱한 정서 속에서 미묘하고 세련된 서정, 섬세한 음영, 풍부한 표정의 오묘함이 숨 쉰다. 밤에는 낮에 불가능했던 세계가 열린다. 쇼팽 당대에 발전한 피아노의 기교와 밤에 쏟아지는 감수성이 만나 녹턴을 꽃 피웠다. 쇼팽의 녹턴에는 이탈리아 오페라와 예술가곡의 정서가 있고 자유로움 속에 슬픈 정서가 감돈다.

어느 한 곡 빼놓을 수 없지만 Op.9-2는 특히 유명하다. 미소 띤 얼굴에 맑게 흐르는 눈물 같다. Op.9-1을 듣다 보면 푸르스름한 어둠이 완연한 밤으로 접어든다. 장대한 Op.48-1에서 주선율은 비탄으로 여울진다. 적당히 느리고 당당한 렌토로 다시 돌아온 뒤 재현부는 두 배의 속도로 극적인 성격을 띤다. 유작 1번인 녹턴 20번은 피아니스트들의 단골 앙코르다.

어린 시절, 쇼팽 콩쿠르 우승자인 폴란드 피아니스트 아담 하라셰비츠의 쇼팽 녹턴 크롬 테이프나 라이선스 LP음반은 집집마다 있었다. 역시 폴란드의 거장 아르투르 루빈스타인의 음반도 빼놓을 수 없다. 그러나 연주와 녹음이 빼어난 음반으로는 포르투갈 피아니스트 마리아 조앙 피레스의 DG 음반을 꼽고 싶다. 1944년 리스본에서 태어난 마리아 조앙 피레스는 리스본 음악원을 거쳐 독일로 유학했다. 하노버에서 카를 엥겔로부터 배웠다. 1970년에 열린 베토벤 탄생 200주년 기념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공식 데뷔했다. 피레스는 특히 모차르트의 독주곡과 협주곡 해석으로 각광받았다.

대표적인 피레스의 레퍼토리가 쇼팽이다. 그 가운데 ‘녹턴’은 최고의 성과물이다. 그녀의 건반은 감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들을수록 상큼한 리듬 감각이 향수를 뿌린 듯 떠오른다. 피레스는 특유의 성실함으로 객관적인 거리를 유지하면서 극적인 고양감을 표출한다. 귓가에 와 닿는 피아노 음은 부드럽지만, 그 안에는 전력을 다한 내공이 들어 있다. 쇼팽이 건반 위에서 웃고 울며 노래하고 춤춘다. 허공에 신파로 흩어지는 발산의 허무함이 아니라 감정을 구축해 멀리서 보면 건축물로 보이는 연주다.

류태형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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