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이 쏘아올린 공, 현역 군인도 '우크라行'…의용군 여론 양분 [송영찬의 디플로마티크]

입력 2022-04-03 13:05   수정 2022-05-03 00:01

“우리 전선이 번갈아 들락거리면서 적선과의 거리가 한 마장쯤 접근했을 때 일제히 대포를 쏘며 공격을 개시했다. 순간 적선들도 대포로 응수해 치열한 공방전을 거듭했다. 총탄과 화살이 빗발치듯 떨어지니 배 위에서 총을 쏘던 적병들은 드디어 지탱할 수 없어 모두 배 안으로 들어가 숨기도 하고 혹은 배를 버리고 강가의 풀숲으로 도망쳤다.”

1658년 조선군 260명을 이끌고 전장에 나선 신류 장군이 전쟁 중 일상을 기록한 ‘북정일기’의 일부입니다. 한양을 떠난 날부터 돌아오는 날까지의 141일이 하루도 빠짐없이 기록돼있습니다. 여기서 언급되는 ‘적군’은 바로 러시아군입니다. 청나라가 러시아의 급격한 동진(東進)으로 인해 아무르강(흑룡강) 일대서 영토분쟁이 생기자 조선에 원군을 요청한 것이 발단이 됐습니다. 이른바 ‘나선(羅禪)정벌’입니다.

‘정벌’이란 거창한 명칭이 붙었지만 당시 조선은 러시아의 존재도 잘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건 원군을 요청한 청나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청나라 사신은 1654년 조총병 100여명을 요청에 ‘나선이 무엇이냐’는 효종의 질문에 “영고탑 인근의 별종”이라 대답합니다. 조선은 결국 싸우는 상대가 정확히 누군지도 모르는 채 1654년과 1658년(북정일기 기록 당시), 두 차례에 걸쳐 총 400여명(1차 152명·2차 260명)의 군대를 보냈습니다.
이근 대위가 쏘아올린 공...현역 군인까지 '우크라行'
‘정벌 대상’으로 1654년 한국사에 처음 등장한 러시아는 370여년이 지난 현재 그 때와 비슷한 대상으로 입에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러시아의 무력 침공, 무고한 주민들의 희생, 피해국의 지원 호소, 그에 따른 제3국인 한국 외교에 미치는 지대한 영향까지, 우크라이나 사태는 나선정벌과 여러모로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바로 한국인들이 이 전쟁에 뛰어드는 방식입니다. 정부 차원에서 군대를 보냈던 나선정벌 때와 달리 정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개인 자격으로 전쟁에 뛰어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크라이나는 지난 2월 러시아로부터의 무력 침공 이후 외국인으로 구성된 ‘외인부대’를 결성했습니다. 우크라이나 외무부에 따르면 이른바 ‘우크라이나 국제의용군’은 52개국의 2만명으로 구성돼있습니다. 20만여명의 우크라이나 정규군의 10%에 달하는 숫자입니다. 특히 우크라이나의 민간인 피해가 갈수록 커지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의용군 참여 호소에 전 세계에서 우크라이나를 돕기 위해 찾는 이의 숫자도 계속해서 늘고 있습니다.


의용군 참여에 한국인들도 예외는 아닙니다. 해군특수전전단(UDT/SEAL) 대위 출신 유튜버 이근씨는 지난달 7일 우크라이나 국제의용군에 참여하겠다며 출국했습니다. 지난달 30일엔 자신의 SNS에 “미국 영국 등 외국인 요원들을 모아 특수작전팀을 구성했다”며 “직접적인 공세작전에 참여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인기 유튜버인 이씨의 출국에 국내 여론도 그를 응원하는 목소리와 외교적인 악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로 양분됩니다. 지난달 10~11일 리얼리서치가 성인 남녀 3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56.7%가 이씨의 의용군 참전을 지지한다고 대답했고, 43.3%가 지지하지 않는다고 대답했습니다.

이 가운데 해병대 현역 병사가 휴가 중 의용군에 참여하겠다며 무단 출국하는 일도 벌어졌습니다. 해당 병사는 출국한 뒤 한 라디오방송과 전화 인터뷰까지 갖고 “부조리 같은 걸 신고해도 들은 체도 안 하던 사람들이 저 한 명 잡으러 (폴란드까지) 빨리 와 깜짝 놀랐다”며 “포로로 잡힐 바에는 그냥 자폭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이미 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외교 당국의 조치로 그는 폴란드에서 우크라이나 국경을 넘지 못했지만 결국 폴란드 국경검문소에서 사라진 이후 현재까지 행방이 묘연한 상태입니다.


외교부는 지난 1일 “정부 허가 없이 우크라이나 입국 후 현지 체류 중인 국민은 현지시간 30일 1명이 추가 입국한 것으로 확인돼 6명으로 늘었다”고 밝혔습니다. 6명 중 연락이 닿지 않는 인원이 3명이고, 연고자를 통해 연락이 가능한 인원이 3명이라고 덧붙입니다. 이어 우크라이나 무단 입국자들을 향해 “수사기관에 자수할 경우 수사 및 재판과정에서 정상참작 사유로 고려될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우크라 지원 방법 많아…즉시 철수해야"
자국민의 우크라이나 국제의용군 참여를 바라보는 각국의 시선은 크게 엇갈립니다. 리즈 트러스 영국 외무장관은 “우크라이나 전투 지원 여부는 개인의 결정이지만 우크라이나 국민은 전체 유럽을 위해,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고 있다”며 “사람들이 그 투쟁을 지지하고 싶다면 (영국 정부는) 그렇게 하도록 지지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사실상 이들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 의사를 표한 것입니다.

반면 후방에서 적극적으로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고 있는 미국 정부는 자국민의 의용군 참여엔 부정적인 입장을 거듭 표명하고 있습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여러 비정부기구(NGO)를 통해서도 우크라이나 시민들을 도울 방법이 많다”며 “미국 정부 역시 우크라이나를 도우려는 단체에 자원을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미국 정부는 우크라이나 내 미국 시민권자들을 향해 여러 차례 즉시 철수를 촉구해왔습니다.

우크라이나 국제의용군에 참여한 사람들과 그들의 결정을 응원하는 사람들은 러시아의 불법 무력침공에 맞서 자유와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서라고 강조합니다. 특히 6·25전쟁 당시 국교도 수립하지 않던 수많은 나라들의 도움을 받았던 한국이 러시아의 불법 침공에 맞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반대하는 측에선 전투 상황에서 사망할 경우 국가적인 외교 문제로 비화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합니다. 정부는 자국민의 생명을 보호할 의무가 있는데, 국민들이 전장으로 뛰어든다면 위급한 상황에 처해도 구출할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특히 2007년 여행금지 지역인 아프가니스탄을 갔다가 탈레반에 의해 피랍돼 결국 정부가 거액의 협상금을 지불한 것으로 알려진 ‘샘물교회 사태’를 떠올리기도 합니다. 공교롭게도 현재 외교 당국이 우크라 무단 입국자들을 처벌하겠다고 하는 근거가 되는 여권법 제26조는 샘물교회 사태 이후 신설됐습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많은 전문가들의 예상을 뒤엎고 장기전 형태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이번 전쟁이 국제사회의 질서를 송두리째 흔들어 놓을 것이란 관측도 나옵니다. 한국에서도 민주주의·인권 등 가치를 수호하기 위한 ‘정벌’을 지지하는 목소리와 국익과 법치를 우선시해 ‘사태’를 막겠다는 목소리 간의 충돌은 시간이 흐를수록 커질 전망입니다.

송영찬 기자 0ful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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