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트트랙 선수서 바리스타로…얼음판에도 커피에도 '문턱'은 없었다

입력 2022-04-18 14:29   수정 2022-04-18 15:55

<svg version="1.1" xmlns="http://www.w3.org/2000/svg" xmlns:xlink="http://www.w3.org/1999/xlink" x="0" y="0" viewBox="0 0 27.4 20" class="svg-quote" xml:space="preserve" style="fill:#666; display:block; width:28px; height:20px; margin-bottom:10px"><path class="st0" d="M0,12.9C0,0.2,12.4,0,12.4,0C6.7,3.2,7.8,6.2,7.5,8.5c2.8,0.4,5,2.9,5,5.9c0,3.6-2.9,5.7-5.9,5.7 C3.2,20,0,17.4,0,12.9z M14.8,12.9C14.8,0.2,27.2,0,27.2,0c-5.7,3.2-4.6,6.2-4.8,8.5c2.8,0.4,5,2.9,5,5.9c0,3.6-2.9,5.7-5.9,5.7 C18,20,14.8,17.4,14.8,12.9z"></path></svg>출발선에 서듯 커피머신 앞에 선다. 훈련받은 내용을 되새기며 빙판을 질주하는 것처럼 연습한 순서에 맞춰 커피를 내린다. 달달하면서도 쌉쌀한 카라멜마키아토 한 잔이 내려지는 순간, 현인아씨의 입가에 뿌듯한 미소가 번진다. 결승선을 통과했을 때의 미소와 닮아있다.
2013년 겨울, 강원도 평창군에서 개최된 스페셜올림픽. 14살의 선수가 우리나라에 금메달 3개를 안겨주며 대회 3관왕에 올랐다. 출전한 모든 종목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것이다. 스페셜올림픽은 지적장애인만 참가할 수 있는 올림픽이다.

‘평창의 스타’로 떠오른 발달장애 2급 현인아(24)씨는 약 10년 뒤 어엿한 5년차 바리스타로서 인생의 2막을 써내려가고 있다. SPC행복한재단·푸르메재단이 운영하는 ‘행복한베이커리&카페’에서 근무중인 현인아 바리스타를 18일 만났다.

집중력 기르기 위해 시작한 스케이트, 금메달까지 따게 되다
현인아씨는 태어난 지 28개월 만에 자폐 진단을 받았다. 언어 발달은 느렸지만 운동신경은 남달랐다. 또래보다 키도 컸다. 초등학교 1학년 때 학교 체험학습으로 처음 스케이트화를 신었다. 그 날 현인아씨는 자유로움을 느꼈다고 한다. 그는 “인라인 스케이트를 탈 줄 알았기 때문에 미끄러운 빙판에 금방 적응했다”며 “빙상장을 종횡무진 누비는 것이 행복해서 빙상장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행복해하는 그의 모습을 본 담임선생님도 스케이트를 계속 배워보지 않겠냐고 권했다. 현인아씨의 어머니는 “집중력 향상을 위해 스케이트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며 “스케이트 날이 위험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인아에게 날은 날카로운 흉기가 아니라 집중력을 길러주는 교구가 됐다고 설명했다. 발달장애 아동에게 취미를 만들어주는 것이 좋다는 주변인들의 조언도 작용했다.

그간 수영, 인라인스케이트 등 다양한 운동을 접했지만 현인아씨가 선택한 건 스케이트였다. 우연히 시작한 스케이트가 선수생활까지 이어졌다. 9살때부터 약 10년간 선수생활을 하면서 국내 대회는 물론 2011 아테네하계올림픽(인라인스케이트 부문)과 2013년 평창 동계 스페셜올림픽(쇼트트랙 부문)에서 우승을 거머쥐었다. 그는 “평창 쇼트트랙 777m 경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경쟁자) 캐나다 선수가 나보다 나이도 많고 체격이 좋아 출발 할 때 긴장이 되었지만 이겨야겠다는 마음으로 끝까지 달렸다”고 말했다.


물론 강도 높은 훈련 덕분이었다. 평창 올림픽을 앞두고는 방학동안 의정부 빙상장에서 하루에 8시간 이상을 보냈다. 학기중에도 새벽에 운동을 하고 학교 수업을 다녀온 뒤 다시 빙상장으로 돌아가 나머지 훈련을 했다. 스쿼트, 코너벨트, 만보달리기 등 쇼트트랙 선수들의 기본 훈련들을 매일 소화했다.
쇼트트랙 선수에서 바리스타로
고등학교 2학년이 되던 해, 그는 또 한 번의 우연을 접했다. 커피를 잘 알지도 못하던 그가 인근 복지관에서 운영하는 바리스타 교육과정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커피를 배울수록 흥미도 커졌다. 2년간 훈련을 받은 뒤 이곳 종로구 신교동에 위치한 행복한베이커리&카페에 입사하게 됐다.

현인아 바리스타는 “선수 시절 매일 힘든 운동을 하는 것이 벅차기도 했고 누군가와 함께 일할 수 있는 직업을 갖고 싶었다”며 “바리스타는 커피라는 매개체를 통해 같이 일하는 동료들뿐만 아니라 고객들이랑 직접 소통할 수 있어 매우 만족한다”고 전했다. 스페셜올림픽은 연금이 없기 때문에 경제적 자립을 빨리 이룰 수 있는 방법이기도 했다.

현인아 씨는 동료들이 인정하는 ‘체력왕’이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5시간 30분 근무한다. 근처에 큰 시위가 있다거나 직장인들이 대거 방문하는 날에는 한 번에 서른 잔의 커피를 만들기도 한다. 아메리카노, 라떼, 스무디 등 종류도 다양하다. 현인아 씨는 “선수 생활은 그만뒀지만 매일 스쿼트를 계속하고 있다”며 “그동안 쌓아온 기초 체력이 오랜 시간 서 있어야 하는 이 일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전혀 접점이 없는 것 같은 두 직업이지만 ‘정석’을 따르는 것만큼은 닮아있다. 바리스타는 맛잇는 커피를 만들기 위해, 쇼트트랙 선수는 ‘경기 1등’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정해진 규칙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현인아 씨는 “경기 규정을 지켜가며 경기에 참가해야 하듯이 바리스타도 커피 제조 순서를 지키는 것뿐만 아니라 커피 머신을 청소하고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무수한 훈련을 거쳐야 한다”며 “처음 커피를 접했을 때에는 과테말라, 케냐, 에티오피아 등 각종 원두를 향만으로 구분하기 위해 눈을 가리고 연습했다”고 말했다.

5년차 바리스타 현인아씨는 넉살도 좋아졌다. 현씨의 어머니는 “매일 고객을 응대해야해서인지 바리스타가 된 뒤 인아가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 변화가 생겼다”며 “누군가를 앞질러 갈 때 ‘실례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등 사회성이 길러졌다”고 말했다.

나중에는 현인아씨만의 카페를 만드는 것이 꿈이다. ‘거북이 카페’라는 이름도 생각해 뒀다. 대표 메뉴는 현인아씨가 가장 좋아하는 카라멜마키아토다. 그는 “거북이처럼 느리지만 여유를 가득 담은 커피를 만들 것”이라며 “많은 사람들이 내가 만든 커피를 맛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소망을 밝혔다.

SPC그룹과 푸르메재단은 장애인의 자립과 고용을 지원하기 위해 2012년 이 카페를 설립했다. SPC가 제빵 교육과 프랜차이즈 운영 노하우를 제공해주고 푸르메재단은 행정적인 운영을 맡는다. 오는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이다.

한경제 기자 hanky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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