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에 3600조 쏟아부었는데 '꼴찌'…일본의 추락 [정영효의 일본산업 분석]

입력 2022-04-26 05:54   수정 2022-04-26 13:16


"일본은 미국이나 유럽보다 코로나19 확진자와 사망자가 극히 적은데도 왜 경제적으로는 더 힘든거죠? 정부가 코로나19 경제대책에 쏟아부은 돈은 어디로 간 건가요?"

최근 도쿄 나카노구의 이자카야에서 만난 사쿠마 히로시 필립모리스재팬 주임은 한숨을 내쉬었다. 고객을 직접 찾아다니며 전자담배를 판매하는 그는 코로나19 이후 얼어붙은 일본의 경기를 누구보다 절실히 느낀다고 했다.
◆코로나 대책에 3600조원..英 4배
일본 정부는 코로나19가 확산한 2020년 이후 4차례 긴급경제대책을 마련했다. 총 사업규모는 372조엔(약 3600조원)으로 2021년 일본 GDP의 68%에 달한다. 경제규모가 4배 이상인 미국(694조엔)보다 액수는 적지만 GDP 대비 비중으로는 주요국 가운데 압도적인 1위다.

미국의 코로나19 경제대책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1%로 일본의 절반에 못미친다. 각각 164조엔과 96조엔을 투입한 독일과 영국의 코로나19 경제대책은 GDP의 40%와 32%다.

그런데도 일본 경제는 코로나19의 충격에서 가장 더디게 회복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 19일 일본의 올해 경제성장률을 2.4%로 전망했다. 올 1월 전망치보다 0.9%포인트 낮췄다. 미국은 3.7%, 유럽연합(EU)과 중국은 각각 2.8%와 4.4%로 모두 일본을 웃돈다.

미국의 국내총생산(GDP)이 이미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회복한 반면 일본은 2019년 3분기의 최대치(557조엔)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일본의 올해 예산은 108조엔이다. 3.4년치 예산을 코로나19 대책에 쏟아부었는데도 효과는 경쟁국들보다 미진했다. 일본 경제 전문가들은 코로나19 피해가 훨씬 경미한 일본이 경제적 충격을 더 크게 받고 회복속도는 더딘 가장 큰 이유를 낮은 노동생산성에서 찾는다.

2020년 일본 근로자 1인당 노동생산성은 7만8655달러(약 9791만원)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가운데 28위다. 선진 7개국(G7) 가운데서는 꼴찌다. 생산성 순위가 20위권 밖으로 처진 지 20년이 넘었다. 2000년까지 세계 1위 였던 일본의 제조업 노동생산성도 18위까지 밀렸다.
◆중소기업이 전체의 99.7% 지만
'일본 기업의 기술력과 근로자의 근면성은 세계 최고 수준인데 일본의 노동생산성은 왜 최저 수준인가'는 일본의 오랜 고민이기도 하다. 일본의 노동생산성이 저조한 원인으로 우선 중소기업의 영세성이 낳은 저(低)생산성이 지적된다.

일본의 중소기업 평균 규모는 미국의 절반, 유럽의 3분의 2수준이다. 미국과 유럽보다 영세한 중소기업이 난립하다보니 규모의 경제를 발휘하지 못한다는 설명이다.

일본 중소기업은 전체 기업 숫자의 99.7%, 전체 고용의 70%를 차지한다. 중소기업의 낮은 생산성이 일본의 저생산성으로 이어지는 이유다. 노동집약적 산업을 중심으로 경제가 급성장한 1956~1973년 고도성장기 일본의 중소기업은 고용의 기반이었다. 오늘날은 사정이 달라졌다.

일본 정부도 인구가 계속 감소하는 일본에서 생산성을 향상시켜 근로자의 소득수준을 높이지 않으면 사회시스템을 유지할 수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문제는 역대 정부가 대기업의 생산성을 높이는 데만 주력했다는 점이다.

'중소기업은 일본의 보배'라는 뿌리깊은 인식 때문에 개혁의 칼날을 대는 것을 주저한 탓이다. 대기업보다 높은 생산성을 달성한 극히 일부 중소기업의 신화가 대다수 중소기업의 사례인 것처럼 과장됐다는 것이다.

중소기업에 대한 두터운 우대정책을 누리기 위해 의도적으로 기업의 규모를 키우지 않는 '피터팬 증후군'은 일본에서도 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리는 문제로 지적된다.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기업의 자체적인 노력도 별다른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이노베이션(혁신)을 통해 상품과 서비스의 경쟁력을 높이는 대신 인력을 줄이는데 급급하기 때문이다. 도쿄상공리서치에 따르면 2021년 희망퇴직을 실시한 상장사는 84곳으로 2년 연속 80곳을 넘었다.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 내각에서 총리 직속 자문기구인 성장전략회의 멤버였던 데이비드 앳킨슨 전 골드만삭스 애널리스트는 "중소기업 재편 및 통폐합을 위한 최고의 수단은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인구가 줄어드는 일본은 '최저임금 인상이 실업을 늘릴 것'이라는 우려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하는 그는 "중소기업 통폐합으로 감소하는 건 사장의 숫자 뿐"이라고 강조했다.
◆재교육 경제효과 700조엔인데
세계 주요국 정부와 기업은 '포스트 코로나'에 대비해 '리스쿨링(재교육)'에 주력하고 있다. 한정된 인재를 디지털과 같은 성장 분야에 재배치하기 위한 전략이다. 코로나19의 충격으로 인해 고용을 유지하는데 집중됐던 기업의 인사 전략이 인재 재배치로 전환한 것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노동력을 성장산업에 재배치해서 산업구조가 진전되면 경제활성화 효과가 세계적으로 700조엔에 달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재교육을 통한 생산성 향상이 국가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지만 일본은 이마저도 뒤처져 있다. 2017년 기준 일본 정부가 직업훈련에 지출한 금액은 GDP의 0.01%로 주요국 최저 수준이다. 미국의 3분의 1, 독일의 18분의 1에 불과하다.

코로나19 경제대책을 통해서도 일본은 근로자를 해고하는 대신 휴직시키는 기업에 현금을 지원하는데 4조엔 이상을 쏟아붓는 등 실업을 줄이는데 집중했다. OECD에 따르면 일본은 성인의 학습기회 점수가 0.1로 평균(0.45)을 크게 밑돌았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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