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나갔던 일본이 왜…"세계 경쟁서 모두 패했다" 탄식 [정영효의 일본산업 분석]

입력 2022-05-08 09:13   수정 2022-05-08 16:17


닛케이225지수가 사상 최고치인 38,915를 기록한 1989년 이후 일본전산과 무라타제작소 등 교토에 본사를 둔 상장기업의 시가총액은 300% 이상 늘었다. 도요타자동차가 있는 아이치현 기업의 시가총액도 100% 이상 늘었다. 반면 일본 기업 본사의 60%가 몰린 도쿄 기업의 시가총액은 33년 전과 거의 같은 수준이다.

교토 기업이 3배 성장하는 동안 도쿄 기업이 성장 정체에 빠진 이유를 니혼게이자이신문의 간판 칼럼리스트 가지와라 마코토는 "가스미가세키 코스트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가스미가세키는 일본 정부조직이 몰려 있는 도쿄의 관청가로 관료 조직을 상징하는 단어다.
연구개발·투자 가장 많이 줄인 나라
가스미가세키에 가까울 수록 정부의 보호와 규제를 받는 기업이 많고, 그런 기업일수록 대관업무의 부담이 크기 때문에 채산성도 나쁘다는게 가지와라의 설명이다. '서류와 도장 문화'로 대표되는 일본 관공서가 기업에 얼마나 부담을 주는 지는 종이 사용량에서도 나타난다. UN식량농업기구(FAO)의 2018년 조사에서 일본 기업의 복사용지 소비량은 1000명당 23t으로 161개국 가운데 6위였다.

정부의 보호를 받는 기업의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사실은 시가총액이 입증한다. 1989년말 이후 대표적인 규제산업인 은행 업종의 시가총액은 90% 급감했다. 전력과 건설은 60% 줄었다. 반면 세계 시장에서 경쟁하는 자동차와 소매업종의 시가총액은 60%와 30% 증가했다.

1980년대 세계 최대 기업이었던 일본 최대 통신회사 NTT의 현재 시가총액은 애플의 25분의 1이다. 당시 세계 10대 기업의 절반을 차지했던 일본 메가뱅크들 역시 오늘날에는 도쿄증시의 시가총액 상위권에 머무르는 '골목대장'으로 전락했다.

일본 정부의 보호에 의지하는 일본 기업들이 관청의 눈치를 살피는데 급급한 나머지 지난 20년간의 엔저(低)와 초저금리의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 일본 기업들은 1990년대 후반 아시아 통화위기 이후 위축된 투자를 되돌리는데 주저했다.

일본 총리관저에 따르면 1985~2009년 연구개발비를 줄인 기업의 비율이 일본은 41.5%로 주요 7개국(G7) 가운데 단연 1위였다. 영국은 33.1%, 미국은 22.5% 수준이었다. 같은 기간 설비투자를 줄인 기업의 비율 역시 일본은 47.1%로 미국(42.7%)과 영국(44.2%)보다 높았다.

투자를 외면한 결과는 수익성 정체로 나타났다. 지난 20년간 미국과 영국 기업의 자본스톡(자본금과 이익잉여금 등 축적한 자금의 총량)이 50% 전후, 독일 기업이 17% 늘어나는 동안 일본 기업은 9% 증가했다.

기업의 부진은 국가 경제의 침체로 이어졌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2019년까지 일본의 GDP는 7% 늘었다. 그 사이 미국과 유럽연합(EU)은 20%, 아시아 국가들은 2배 증가했다.
비제조업 생산성 높이면 GDP 30%↑
코로나19 확산 이후 여지없이 드러난 일본 디지털 부문의 후진성도 이러한 정체의 연장선상이라는 분석이다.

작년 하반기 일본 총무성이 발표한 '2021년 정보통신백서'에 따르면 디지털화를 추진하는 일본 기업의 비율은 13%로 60%의 미국에 크게 뒤처졌다. 일본 총무성은 디지털화를 추진하는 일본 기업의 비율이 미국 수준으로 늘어나면 제조업 매출이 6%(23조엔), 비제조업 매출이 4%(45조엔) 늘어날 것으로 추산했다. 2021년 일본 GDP의 10%를 넘는 수치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에 따르면 2018년 미국의 정보기술(IT) 분야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투자규모는 2000년에 비해 4.18배와 3.07배씩 증가했다. 일본은 1.53배와 1.33배 늘어나는데 그쳤다.

부족한 IT 인재의 편중은 가뜩이나 후진적인 일본의 디지털 개혁을 더욱 늦추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일본 정보처리추진기구의 'IT인재백서 2020년'에 따르면 125만명인 일본 IT 인재의 77%가 후지쓰, NEC 등 IT기업에 소속돼 있다. 미국의 IT 인재는 일본의 4배인데다 60% 이상이 일반 기업에서 활동하고 있다.

일본의 고질병인 낮은 생산성이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 것도 디지털화에서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특히 비제조업 부문의 낮은 생산성은 일본의 부활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지적된다.

1985년까지 일본의 제조업과 비제조업 부문의 생산성은 차이가 없었다. 1985년 미국 등 주요국이 엔화 가치를 인위적으로 낮추기로 결정한 플라자합의 이후 제조업 부문의 생산성이 42% 늘어나는 동안 비제조업의 생산성은 25% 늘어나는데 그쳤다.

일본생산성본부는 비제조업 부문의 생산성이 제조업과 같은 수준으로 높아지면 일본의 GDP가 30%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27,000선에 머무르는 닛케이225지수도 37,000을 웃돌아 1989년말 기록한 사상 최고치 38,915 탈환을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가지와라 칼럼리스트는 "버블(거품)경제 붕괴 이후 일본 기업은 1990년대 후반 IT 혁명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의 재도약 등 세계적인 경쟁에서 2번 모두 패했다"고 지적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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