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 기업' 日 도시바의 추락…'이것' 때문에 매출 반토막 [정영효의 일본산업 분석]

입력 2022-05-11 10:49   수정 2022-06-10 00:03


지난 10일 소니그룹의 2021년 온라인 실적 발표회에 참석한 도토키 히로키 최고재무책임자(CFO) 겸 부사장(사진)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이날 소니그룹은 2021년 영업이익이 1조2023억엔(약 11조7800억원), 매출이 9조9215억엔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일본의 제조업체가 영업이익 1조엔을 넘은 건 도요타자동차에 이어 두번째, 전자기업으로는 처음이다.

잔칫집 분위기여야 할 자리에서 도토키 CFO가 긴장의 끈을 늦추지 못한 건 지난해를 정점으로 소니의 수익성이 꺾이고 있어서다. 소니의 올해 영업이익은 1조1600억엔으로 4% 감소할 전망이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급증했던 '집콕수요'의 퇴조의 영향으로 분석된다. 특히 지난 수 년간 소니의 실적을 지탱한 게임과 영화 사업의 영업익이 12%와 54%씩 급감할 것으로 예상된다.
日 전자업계의 비원 '매출 10조'
영업익은 줄지만 매출은 11조4000억엔으로 1946년 창업 이래 처음 10조엔을 넘을 전망이다. 매출 10조엔 돌파는 일본 전자업계의 오랜 꿈이다. 1918년 창업한 소니의 라이벌 파나소닉은 매해 매출 10조엔을 목표로 내걸었지만 실패했다.

지난해 매출은 약 7조3000억엔으로 30년 전인 1991년보다 오히려 줄었다. 매출이 7조엔대까지 쪼그라든 2016년 파나소닉은 매출 10조엔 목표를 철회했다.

히타치제작소가 2015년 10조343억엔을 기록한 적이 있지만 전자기업 매출로 보기는 어렵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매출의 52%가 원전, 화력발전, 상하수도 등 인프라 사업과 비(非)전자 자회사인 히타치건설기계, 히타치금속, 히타치화성에서 나온 탓이다.

삼성전자는 2008년 매출 100조원, 2012년 매출 200조원을 넘어섰다. 1994년 창업한 아마존은 21년 만인 2015년 엔화 기준으로 매출 10조엔을 돌파했다.



아마존이 21년 만에 달성한 매출 10조엔의 벽을 일본 전자기업들이 100년 넘게 못넘는 이유를 와카바야시 히데키 도쿄이과대학 교수는 "안정적으로 수익을 내는 사업에 안주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도시바 매출 반토막 난 까닭
JP모간 등 외국계 증권사에서 오랫 동안 전자 애널리스트로 활동한 와카바야시 교수는 일본 기업의 경영전략을 '스트라이크 존 경영'으로 묘사한다. 일본 기업들이 제품 수명은 5~10년, 판매수량은 수천만에서 1억개인 분야에서 강점을 보이는 반면 스트라이크 존을 벗어나는 분야에서는 약하다는 것이다. 워크맨과 플레이스테이션, 각종 가전제품 등 한때 일본 기업들이 석권한 제품은 모두 스트라이크 존의 사업영역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스트라이크 존 경영의 대표적인 사례가 도시바다. 1960년 일본 최초의 컬러TV, 1985년 세계 최초의 노트북 등을 개발한 혁신 기업이었지만 스트라이크 존 밖의 사업에는 취약했다. 제품 수명이 40년인 원자력 발전, 반대로 제품 수명이 1년 미만인 반도체 사업부를 차례로 줄이거나 팔았다. 그 결과 오늘날 도시바의 매출은 3조엔대로 10년 전의 절반으로 줄었다.

스트라이크 존 경영은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하는 대신 기업 환경의 변화에 둔감한 약점을 갖고 있다. 일본 전자 대기업들은 디지털과 스마트폰 시대를 외면했다가 2010년대들어 삼성전자에 주도권을 뺏긴 경험이 있다. 2020년대에는 플랫폼 시대로의 전환에 뒤처지고 있다고 와카바야시 교수는 우려한다.

제품을 개발하고, 판매하는 제조업의 기업과 고객 관계는 1대 1로 단선적이다. 반면 기업과 고객의 관계가 1대 다수인 플랫폼 사업은 시장이 급속히 커지는 네트워크 효과가 특징이다. 아마존의 매출이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한 것도 네트워크 효과가 발생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지난 20여년간 아마존과 소니의 매출은 연 평균 28%과 13%씩 늘었다. 스트라이크 존을 벗어나지 못난 파나소닉의 성장률은 0%였다. 현 상태대로라면 30년 후 아마존, 소니와 파나소닉의 매출 격차가 각각 1645배와 39배까지 벌어질 것으로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내다봤다.

와카바야시 교수는 "소니가 매출 10조엔 돌파를 앞둔 것은 비주력사업을 팔아 신성장동력에 투자하는 단순 포트폴리오 교체방식의 사업재편에서 벗어나 미국 빅테크식 플랫폼화에 성공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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