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을 푸는 데는 감두탕(甘豆湯)에 '000'이 최고!

입력 2022-05-19 17:45   수정 2022-05-19 17:46




옛날 한 산골 마을에 장이 열렸다. 산골이라서 그런지 장터에 내다 놓고 파는 것은 고작 말린 산나물들이 주를 이루었지만, 간혹 고기가 팔리는 날이면 많은 사람이 시장에 몰려든다. 고기를 쉽게 접하지 못하는 시절이라 더더욱 사람들은 시장의 고기 한 점에 애절함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장이 서늘 날 밤에 산골 마을의 약방문을 두드리는 젊은이가 있었다. “의원님 제 부모님과 누이를 살려주세요. 곧 숨이 끊어질 듯하옵니다” 의원은 자초지종을 물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냐?” 젊은이는 “제가 오늘 시장에서 돼지고기를 사다가 삶아서 노부모님과 누이에게 요리해서 주었습니다. 그런데 삶은 돼지고기를 한참 먹더니 갑자기 토를 하면서 설사하고 이제는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몸져누워있습니다. 곧 숨이 끊어질 듯합니다.”

의원은 젊은이를 앞장세워 달음질을 했다. 젊은이의 집에 도착해서 진찰해 보니 노부모는 벌써 입술이 파래지고 있었고, 손목의 촌구맥은 실처럼 가늘었고, 목의 인영맥은 그나마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 줄 정도였다. 깃털을 코끝에 대어 보니 미세한 움직임만 있을 뿐이지 죽은 것이나 다름 아닌 몸이었다. 누이는 그래도 신음소리를 내면서 의식이 있었지만, 헛구역질하면서 혈색을 띠는 콧물 같은 혈변을 보는 것을 보면 벌써 장에도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방안을 보니 이미 여러 차례 토한 것이 확인되었다.

‘이것은 분명 독(毒)으로 인한 것이다.’ 의원은 전에도 독약에 중독된 환자를 여럿 진찰해 본 바 있어 분명한 확신이 들었다.

의원은 의아했다. 필시 아들놈이 돼지고기에 독을 넣어 가족에서 먹인 후 자신은 먹는 것을 기피한 것은 아닐까 의심이 들었다. “그런데 너는 왜 멀쩡한 것이냐?” 젊은이는 “저희 가족은 고기를 먹어본 적이 작년 추석이니 벌써 6개월이나 지났습니다. 그러나 오늘 시장에서 돼지고기를 팔기에 제가 장가가려고 모아 놓은 돈을 가지고 판에 깔린 돼지고기를 모두 사서 연로하신 부모님과 연약해진 누이에게만 먹게 한 것입니다.” 젊은이가 의원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하는 말이 거짓은 아닌 듯했다. 독은 아들에 의한 소행이 아니다.

의원은 “그 돼지고기를 누구에게 샀느냐?”고 물었다. 젊은이는 “우리 마을에 사냥꾼이 한명 있는데, 그 사냥꾼이 오늘 갑자기 시장에서 돼지고기를 팔길래 샀습니다.”라고 답했다. ‘사냥꾼이라. 아하~ 그럼 이 돼지고기는 집돼지가 아니라 멧돼지이겠군. 멧돼지도 독이 있지만 이렇게 사람을 사경에 헤매게 하지 않을 터...’ “그럼 그 사냥꾼을 이 집으로 당장 데려오거라”

사냥꾼이 어이가 없는 듯 도착했다. 이미 젊은이에게 자초지종을 듣고서 오는 터라 자신에게 어떤 덜미를 씌울까 내심 걱정하는 눈치였다. 의원은 사냥꾼에게 “오늘 시장에서 내다 판 멧돼지는 어떻게 잡은 것이요?”하고 물었다. 사냥꾼은 “활을 쏴서 잡았소이다. 나는 이 마을의 제일가는 선사(善射, 활을 잘 쏘는 사람)요. 지금까지 내가 산에서 잡은 멧돼지를 먹고서 아무런 문제가 없었는데, 갑자기 나에게 이 무슨 다그침이요?” 의원은 사냥꾼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그런데도 ‘독(毒)’이란 단어는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의원은 사냥꾼에게 “미안하지만, 오늘 멧돼지를 잡은 화살을 좀 보여 줄 수 있겠소?”하고 요청했다. 사냥꾼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마지못해 화살들을 보여주었다. 의원은 화살촉을 살펴보았다. 여느 화살촉과 다를 바 없었다. 그리고 화살촉을 혀에 가져다 대 보았다. 아릿함이 느껴졌다.

‘아~~~! 초오독(草烏毒)이구나. 바로 헛구역질이 나는 것을 보면 또한 비상독(砒霜毒)도! 독화살을 사용한 것이었어.’ 그러면서 “초오독이면 반나절이면 사람을 죽이고 비상독은 즉사시킬 수 있는 독인데... 사약(賜藥)으로도 사용되는...”라고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사냥꾼은 사실대로 실토했다. “사실 지금까지 멧돼지를 맨 화살로 쏘아 맞혀도 도망가기 일쑤여서 오늘은 어쩔 수 없이 독화살을 사용했소. 미안하오.”

의원은 사냥꾼의 말이 끝나자마자, 젊은이에게 부랴부랴 물을 끓이게 하고 검은콩 두 주먹을 구해오라고 했다. 그리고 자신은 약방에서 감초를 두 주먹을 가지고 와서 검은콩과 감초를 함께 넣어 끓였다. “이것은 감두탕(甘豆湯)이라는 것이요. 해독에 제일이요.”

감두탕이 모두 다려지고 젊은이가 허겁지겁 부모에게 먹이려고 하자 “잠깐, 감두탕이 해독 효과를 내게 하려면 반드시 식혀서 먹여야 하오. 그리고 지금 의식이 명료하지 않으니 억지로 먹이면 안 되고 반드시 상체를 일으켜 세워 스스로 꿀꺽하고 삼키게 해야 하오. 그렇지 않으면 탕약이 기도로 흘러 들어가 폐렴을 일으킬 것이니 그 또한 죽음을 재촉하는 무모한 짓이요. 요즘 중풍으로 쓰러져 인사불성이 되면 각 집에 한두 개씩 있는 우황청심환을 물에 개어 입안에 억지로 밀어 넣는데, 이 또한 마찬가지로 절대 금해야 할 것이요.”

젊은이는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노부모와 누이에게 차가워진 감두탕을 모두 나눠 마시게 했다. 약 30분 정도 지나자 노부모의 콧잔등에 땀이 맺히고 입술의 색이 홍조를 띠기 시작했다. 누이는 헛구역을 멈추었다. 그러나 여전히 맥은 미약하고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의원은 난감했다. 침을 한번 써 볼까 하는 생각을 하던 차 바로 그때, “모시대 뿌리를 먹여 보시오!”하고 사냥꾼이 거들었다. 젊은이는 “그 옷을 지을 때 쓰는 모시말이요? 잎은 떡으로도 만들어 먹지 않소?”라고 되물었다. 그러나 사냥꾼이 말한 모시대는 그 모시가 아니고, 과거부터 어린 순을 나물로도 해 먹었던 약초였다. 단지 모시대의 잎 모양이 모시와 비슷해서 붙여진 것이다. 모시대뿌리는 제니(薺?)라는 이름의 약초로도 사용된다.

의원은 “갑자기 모시대라니 무슨 말이요? 이 감두탕이면 충분할 것이요”하고 무시했다. 사냥꾼은 아랑곳하지 않고 “사실 내 가족도 오늘 독화살로 잡은 멧돼지고기를 모두 먹었소. 그런데 갑자기 토하고 인사불성이 되길래 내가 급히 모시대 뿌리를 달여서 먹이자 모두 멀쩡해졌단 말이요.”라고 했다.

이어서 “내가 독화살로 멧돼지를 쏘아 맞힌 것이 오늘이 처음이 아닌데, 전에 어느 날 내 독화살을 맞은 멧돼지가 피를 흘리면 도망가길래 쫓아간 적이 있었소. 그런데 그 멧돼지가 깊은 산 중턱까지 이리저리 도망가더니 무슨 풀뿌리를 캐 먹는 것이 아니겠소. 어느 날 다시 산에 올랐는데, 화살을 몸통에 달고 다니는 그 멧돼지를 발견했소. 그런데 그 멧돼지는 멀쩡하게 살아 돌아다니는 것이었소. 그래서 신기해서 혹시나 하고 그 풀뿌리에 연유가 있을까 하고 그곳까지 다시 가서 확인해 본바 바로 모시대였소. 그래서 그 뿌리를 캐서 집에 가져다 놓았던 것이요.”

의원은 못마땅해하면서도 그 모시대뿌리를 감두탕에 넣어 다시 달여서 먹여 보도록 했다. 아니나 다를까 노부모는 정신을 차리고 촌구맥도 유력하게 뛰기 시작했다. 손발은 따뜻해지고 얼굴에는 혈색이 돌았다. 처자 또한 구역감과 혈변이 진정되었다. 의원도 놀랐다. 이처럼 빠르게 해독이 될지는 몰랐던 것이다.

의원은 약방에 도착했다. 의원은 의서를 펼쳐 모시대를 찾아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모시대가 제니(薺?)라는 약초명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그 뿌리는 길경(桔梗, 도라지)이나 사삼(沙蔘, 잔대)과 비슷하게 생긴 약초로 그 자체로 해독제였던 것이다. 시중에서는 제니 대신 사삼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원래는 서로 다른 약초이다. 무엇보다 ‘감두탕에 제니를 넣어 쓰면 더 효과가 좋다’라는 문구를 발견했다.

의원은 ‘의서만 읽으면서 경험이 미천한 나보다 실생활에서 해독제를 발견해서 활용한 사냥꾼의 지혜가 사람을 살리는 일에 더 값진 일이 되었구나’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한동하 한동하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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