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거대 유통 기업들이 시장 예상에 못 미치는 실적을 냈다. 인플레이션 때문에 각종 비용이 급증했고, 소비자들의 지갑이 얇아질 것(가처분소득 감소)이라는 우려도 컸다. 해당 기업들의 주가는 폭락했으며 뉴욕증시의 주요 지수도 2년 만에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인플레이션이 미국 경제의 70%를 차지하는 소비를 죽이고 실물경제를 뒤흔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미국 양대 유통기업인 월마트와 타깃이 ‘어닝 쇼크’를 기록한 게 대형 악재로 작용했다. 타깃의 올 1분기 매출은 지난해 동기 대비 3.3% 증가했지만 수익성은 악화했다. 주당순이익(EPS)은 2.19달러로 월가 전망치인 3.07달러를 밑돌았다. 1분기 영업이익률도 5.3%에 그쳐 1년 전(9.8%)보다 크게 낮아졌다. 브라이언 코넬 타깃 최고경영자(CEO)는 “유류비와 물류비, 직원 보상비용 등이 치솟아 예상한 것보다 수익성이 떨어졌다”고 설명했다. 코넬 CEO는 최소 8%였던 타깃의 영업이익률 전망치를 6%로 낮췄다.
전날 실적을 발표한 월마트도 유가와 인건비 상승으로 올해 순이익 전망치를 -1%로 대폭 하향 조정했다. 이날 미국 내 휘발유 평균 가격은 갤런(1갤런=3.8L)당 4.57달러로 사상 최고가를 경신했다. 1년 전보다 50%가량 상승했다.
인플레이션의 직격탄을 맞은 두 회사 주가는 급락했다. 타깃 주가는 하루 동안 24.9% 폭락했다. 월마트는 전날 1987년 10월 후 최대폭인 11.4% 떨어진 데 이어 이날 6.8% 추가 하락했다.
전날 발표된 4월 소매판매가 0.9% 증가한 것과 달리 현장에서는 이미 소비 감소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수요 파괴’가 확인되면서 아마존(-7.2%) 베스트바이(-10.5%) 메이시스(-10.7%) 달러트리(-14.4%) 등 다른 유통주 주가도 이날 일제히 급락했다.
주식 등 위험자산 회피 심리가 확산하면서 채권 가격이 상승했다. 장 초반 연 3%를 넘은 미 국채 10년물 금리는 내림세로 돌아서 전날보다 7.9bp(1bp=0.01%포인트) 하락한 연 2.891%로 마감했다.
이날 뱅크오브아메리카(BoA)가 발표한 이달 조사에서도 펀드매니저의 72%가 12개월 안에 세계 경제가 침체에 빠질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 투자은행(IB) 모건스탠리도 미국 경제가 향후 12개월 안에 경기 후퇴에 빠질 확률을 종전 5%에서 27%로 크게 올렸다. 비영리 경제조사업체 콘퍼런스보드에 따르면 미국 기업의 CEO 중 57%가 경기 침체를 예상했다.
전설적인 투자자로 불리는 제러미 그랜섬은 이날 CNBC와의 인터뷰에서 “심각한 경기 침체가 오고 있다”며 “S&P500지수가 전고점에서 20%가량 빠졌는데 최소한 두 배 이상 더 빠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랜섬은 2000년 닷컴 버블과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예측한 것으로 유명하다.
다만 블룸버그통신은 “유통기업들의 부진은 소비가 상품에서 서비스로 옮겨가고 있다는 신호”라며 “상품 가격의 상승 압력이 줄어들면 인플레이션을 잡아야 하는 Fed에 희소식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워싱턴=정인설/뉴욕=김현석 특파원 surisur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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